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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2' 가장 빛나는 보석 가수 알리




이 글을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에겐 사과드립니다. 글은 살아 있으나 글자색을 바탕색과 동일하게 설정했기에 내용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바꾼 것은 동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다른 가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언급한 글을 등록한 후였습니다. 물론 다른 가수들과 비교했다거나 특별히 문제 삼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래의 뜻이 왜곡될 여지도 있고 본문에 언급한 가수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렇게 선택한 것입니다. 차후에 글을 원래대로 되돌릴 생각이었으나 금일 본문에 언급된 가수와 관련한 불쾌한 뉴스(나영이 아버지 "알리 노래, 매우 불쾌" http://bit.ly/vQoBdi)를 보았기에 이 글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리가 누구야, 가수야?' 임정희의 무대가 끝나고 알리가 소개되었을 때만 해도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였고 임정희가 무난히 1승을 거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알리의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몰입되었고 끝났을 때는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임정희의 무대를 기대하고 시청했었던 거지만 아마 현장에 있었다고 해도 나는 주저없이 알리의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그렇게 알리는 가수로서의 예명 두 글자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그런데 이건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작곡가 특집에서 다시 등장한 알리는 그녀에게 가졌던 기대치가 무색할 정도로 쇼킹한 무대를 보여주었으며 '불후의 명곡2'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라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것 같다.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같은 카리스마와 포스를 내뿜으며 화려하게 얼굴을 알린 알리, 그녀가 앞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며 초대형 가수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노래 실력은 주류로서 손색이 없고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가수들을 실력으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넌센스이고 다만 시청자로서 굉장히 인상 깊었던 무대가 대략 세 번 정도가 있었다. 첫번째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불렀던 효린의 무대였고 두번째는 구준엽과 함께 클론의 '난'을 불렀던 전지윤의 무대였으며 세번째는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가왕(歌王)인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던 알리의 무대였다.

 

효린의 '그때 그 사람'은 효린의 색깔에 가장 잘 맞추어진 편곡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것을 잘 소화하고 표현해낸 효린이란 가수가 있었기에 편곡도 돋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효린은 첫 무대에서와는 달리 그 이후부터는 바쁜 스케줄 탓인지 곡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고 기교로써 치장하는 듯한 느낌이었고 원곡의 질감은 물론 편곡의 의도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점차 퍼포먼스 쪽으로 치우쳤던 것도 아쉬웠는데 왠지 효린은 자신의 매력을 다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전지윤이 파워풀하게 무대를 압도하며 클론의 '난'은 불렀던 무대는 클론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 전지윤의 파워가 놀라웠고 여자가 클론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클론의 노래를 이렇게 멋지게 소화해내는 여자 가수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전지윤이 그룹에서 메인 보컬이 아니라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순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무대를 선보인 그녀의 열정이 아름답다.

한데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놀라움을 넘어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녀가 가면을 쓸 때만 해도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정도의 호기심이었으나 가면을 벗어던지고 노래를 시작하던 장면에서부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무대가 끝났을 때는 저절로 박수와 탄성이 나올 만큼 치명적인 충격이었다. 그녀의 무대는 말 그대로 쇼킹했고 프로그램이 끝나고서도 상당한 시간 동안 그 치명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당분간은 그녀의 쇼킹한 무대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재해석의 정석을 보여주다

요즘 방송에서 재해석이라는 말을 자주 보게 된다. 누군가가 원곡을 그저 적당히 바꿔서 부르면 재해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극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방송을 보면 재해석이라기보다는 재조립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원곡에 대한 이해는 커녕 원곡 자체를 알지도 못하는 가수가 일단 원곡과는 다른 장르로 만들 생각으로 이리저리 바꿔보기부터 하는 것은 재조립이지 재해석이라 할 수 없다.

원곡을 재해석했다고 말하려면 원곡의 질감과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감성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또한 그 노래가 히트했던 당시의 시대정신과 대중들의 감성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현대적 감성과 부르는 가수의 음악적 철학과 감성을 노래에 담아내서 대중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랬을 때에야 현대 대중들을 감동시키는 것의 여부를 떠나서 재해석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편곡, 퍼포먼스, 노래 등 모든 면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완벽하게 재해석해냈고 '재해석이란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알리에 의해 정열적인 탱고의 춤사위와 리듬으로 훌륭하게 재탄생했고 무대를 통해 알리는 그녀만의 음악세계와 음악에 대한 집념과 열정을 아주 멋지게 표현해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원곡을 부른 가수의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곡의 경우는 다른 가수가 부르는 것이 부담스럽게 여길 것 같기도 한데 부른다고 하더라도 쉽게 청중들을 감동시키기도 어렵다. 대중들이 원곡의 질감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데 알리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완벽하게 재해석해냈고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한마디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현대 버전으로 자리매김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훌륭했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짧지 않은 동안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었던 듯한 치명적인 충격이었다.

조용필 음악의 소비자인 나는 그가 발표한 모든 노래의 호흡 하나하나까지 캐치할 수 있고 노래에 담긴 조용필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철학을 읽어낼 수 있다. 격랑의 시기에 조용필의 음악은 내게 안식처이자 도피처였기에 조용필의 음악세계를 왠만한 사람보다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해서 조용필의 음악을 다른 가수가 부르는 경우 몹시 인색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알리라는 가수가 불현듯이 나타나 조용필의 노래로 굉장한 충격을 주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가왕의 자리에 올라선 가수의 외로움과 현실에 타협하려는 또 다른 자신에 대해 끝없이 채찍질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지켜내려는 고집과 다짐이다. 그래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객관적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성찰하고 관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이제 막 발을 내딛는 가수의 선배를 향한 존경심과 도도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알리가 발현한 가수의 길에 대한 열망은 너무도 강렬하기에 그녀의 몸짓과 목소리는 오히려 경건하다.

 

'알리'라는 예명은 권투선수 알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 맞다며 언짢아하기보다는 쿨하게 "Why not?"이라고 주저없이 말하는 그녀의 자신감이 아름답다. 무대 위에 선 알리는 시청자를 미혹시키는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알리, 그녀가 대중들의 감성을 유혹할 수 있는 좋은 노래를 만나 주류로 올라서서 대형 가수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덧) 작곡가 특집에서 마지막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평가대에 올라선 알리는 상당히 긴장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우승을 못했다고 해서 알리의 근사했던 무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에게 프로그램에서 누가 우승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스포트 라이트가 온오프되는 그 순간이 긴장되는 것도 아니다. 청중평가단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데 평가단은 가수의 실력을 평가하는게 아니라 그 순간에 감동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일 뿐이다. 感動(감동)이란 말 그대로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으로서 수시로 움직이고 언제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는게 사람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