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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 멘토들의 아집인가, 각본인가




'위대한 탄생'이 최종적으로 생방송에 진출할 12인을 가려냈다. 그런데 그 면면을 보면 대부분은 예선을 거치면서 이미 각각의 멘토마다 각자의 멘티를 결정해두고 있었고 그들의 고집 또는 오기로 최초와 대동소이한 결정을 했던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보면 2박 3일간의 위대한 캠프는 경쟁자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과정이었다기보다는 멘토들의 고집이나 오기를 좀 더 구체화하고 공고히 하기 위한 과정으로 활용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은미가 멘티로 선발해 생방송에까지 진출시킨 김혜리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캠프에서 멘토들은 여타 경쟁자들과의 형평성마저 아예 무시하면서까지 이은미의 아집을 도와 김혜리에게 여러번의 기회를 준 끝에 이은미의 멘티로 만들었다.

중간중간에 진행되었던 패자부활전은 멘토들이 미리 낙점해 두고 있던 멘티를 구해내는 고집 또는 오기의 도구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멘토들이 낙점해 둔 누군가가 탈락위기에 처했을 때는 어김없이 패자부활전이 있었고 그때마다 각각의 멘토들이 나서서 오뚜기처럼 살려내 왔으니 말이다. 이은미가 패자부활전에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미리 낙점해 둔 멘티 중에는 탈락위기에 처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고집 또는 오기로 멘티를 선택해 최선의 결과물을 내놓으며 자존심까지 지켜낸 것이 김윤아였다면 최악의 결과물을 내놓으며 실망시켰던 이은미는 아집을 부렸다고 할 수 있다. 김태원은 박칼린을 만나면서 고집을 꺾고 손진영을 탈락시켰었으나 최종 패자부활전을 통해 살아났다. 내내 고집을 내보이지 않아 누구를 낙점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던 신승훈은 내심 조형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주변의 평가를 받아들여 도박을 해보겠다는 이유로 셰인을 선택하고 조형우를 탈락시켰었으나 조형우도 역시 최종 패자부활전을 통해 살아났다.



특정 멘토가 강력하게 미리 누군가를 낙점해 두면 다른 멘토는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지금의 방식은 오디션을 근간으로 하는 시스템하에서는 썩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멘토링 시스템과 오디션 시스템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든가 각각의 선발 방식을 바꾸든가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선발에 있어서의 공정성 시비는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으로 잔존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종 패자부활전이 또 치러졌다는 것과 높은 점수를 받은 3인이 김태원, 신승훈, 이은미의 멘토 중에 하나였다는 것으로 보면 이것도 역시 멘토들의 고집 또는 오기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으로 활용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또는 생방송 무대를 앞두고 마지막 감동 또는 반전의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견인할 목적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각본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소에서 시작해 김정인으로 끝난 순서는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왠지 잘 기획된 한편의 각본을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김태원의 멘티인 손진영이 1위를 하고 노래를 보여주지 못한 이은미의 멘티 박원미와 하덕규의 노래를 썩 잘 소화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 신승훈의 멘티 조형우가 공동 2위였다. 우연의 일치라 보기엔 참 묘한 데가 있고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방시혁이었다. 노래를 들려주지 못한 박원미에게는 느닷없이 최고점을 주더니 신승훈의 말 한마디에 조형우에게 평가했던 처음의 점수보다 높여서 동점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조형우와 박원미 둘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조형우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고 그 상황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김윤아였다.

최종 패자부활전은 명백히 멘티를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옥석을 가리는 오디션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야 했다고 보는데 방시혁이 갈팡질팡하며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냈고 김윤아가 최종적으로 그 상황을 끝막음해 버렸던 것이다. 이게 각본이라면 치밀하다기보다는 치졸한 것이고 방시혁의 돌출행동이었다면 방시혁은 이전에 왜 지원자들에게 혹평을 서슴지 않았었는지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어버린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고 우스갯거리가 되버렸다. 방시혁은 오디션 심사를 하면서 기분 내키는대로 갈팡질팡하며 점수를 매기면서 지원자들에게는 혹평이나 해대는 건 어쭙잖은 짓이란 걸 알아야 할 것이다.



무슨 감동 드라마를 찍는 것도 아니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이 사람들 감동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들러붙었는지 그리들 감동 타령을 해대고 충동질을 해대는지 참으로 가관이다. 매번 감동, 반전 뭐 이런 걸로 포장해내는 자들이나 앞장서 충동질을 해대는 자들이나 좀 지겨울 법도 한데. 굳이 그렇게 애써 포장해내지 않더라도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거나 탈락했어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감동일텐데 말이다. 이젠 제대로 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계속되는 감동 타령과 충동질은 식상함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하나쯤은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공중파 방송을 통해 온 나라를 오디션 열풍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문득 회의가 생긴다. '위대한 탄생' 생방송 첫 미션이 8090 히트곡 부르기라고 하며 최종 패자부활전에서도 대중가요는 과거로 되돌려졌고 음악 장르는 획일화되어 버렸다. 한편으로는 가요의 다양성을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과거로 되돌려진 획일화가 이루어져 버린 셈인 것이다. 조형우가 별로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하덕규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한국 대중가요를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지 가수를 비롯한 가요계 종사자들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