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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5년간 Love in Asia를 넘는 이상한 반향




'1박2일 - 외국인근로자' 특집 방송에 대한 반향이 대단하다. 너도 나도 폭풍감동이나 폭풍눈물 따위의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방송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형국이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길래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서 방송을 보게 되었다.

글쎄, 이 방송이 폭풍눈물이고 폭풍감동이라며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만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이게 시청률 높은 방송만이 가질 수 있는 위력인지도 모르겠다. 시청률 낮은 방송에 대한 글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데스크에서 까이고 포털에서는 조회수 보장이 되지 않는 위치로 밀어낸다. 그러나 시청률 높은 방송에 대한 글은 별다른 내용도 없이 고만고만한 유사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에게 정반대의 혜택이 주어진다.

'1박2일 - 외국인근로자' 특집 방송은 침체된 시청률 만회를 목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별히 기획된 일회용이었고 제작진의 이러한 의도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방송에 그렇게까지 감동하고 눈물을 흘렸다면 그건 아마도 낯선 것이 주는 의외성과 잘 포장되고 조작된 감동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회용으로 잘 포장해서 써먹을 수 있는 그 정도의 감동이다.

수많은 TV 프로그램 중에서 내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그것은 KBS1 TV에서 방송되고 있는 'Love in Asia'다. 2005년 11월 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빼먹은 몇 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시청해오고 있다.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시청률 경쟁의 사각 시간대인 토요일 오후 시간에 편성되었으나 그 후 평일 저녁 시간대로 변경되었다.



방송의 내용 또한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결혼이민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나 차츰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결혼이민자들의 이야기 위주로 바뀌었다. 또한 결혼이민자들의 경우도 처음에는 주로 동남아에 편중되었던데서 벗어나 국제결혼이민자들로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국제결혼이민자들의 명과 암을 골고루 다루던데서 벗어나 결혼이민자들이 처한 어두운 실상보다는 점차 이상적인 경우를 선별해서 방송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질환을 앓는 외국인 신부에서부터 수십년의 나이차가 나는 자식뻘보다 더 어린 외국인 신부 그리고 장애가 있어 결혼하지 못하는 한국남성과 살고 있는 어린 외국인 신부 등 초반에는 결혼이민자들의 실상을 꽤 다루었다. 그러나 요즘의 방송 취지를 상징하는 것은 출연자들의 나이도 쉽게 알아볼 수 없게 방송을 제작한다는 것이다.

'예티'라는 아주 명랑하고 쾌활하고 예쁜 한 소녀가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일을 하던 예티는 그만 불의의 화재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 사고로 인해 예티는 얼굴과 온몸에 화상을 입고 예전의 어여뻤던 소녀의 모습 대신에 흉칙한 얼굴로 변해버렸다. 몸에 난 상처야 옷으로 가릴수나 있겠지만 얼굴에 난 상처는 아무리 애써도 가려지지 않는다.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애써 명랑함을 잃지 않던 예티를 보며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화마로 인해 비록 예뻤던 얼굴은 일그러졌지만 순수했던 소녀의 마음까지 다치지 않기를 바랬다. 예티는 그 후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는데 한국으로 다시 올 기회를 찾기 위해 늦은 나이에 한국어학과에 입학해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은 알려줬으나 그 후의 소식은 알 수 없다.

예티의 이야기가 나간 방송은 그나마 반향이 일었으나 예티보다는 오히려 예티가 일했던 회사의 사장이 더 주목을 받았었다. 이 회사 사장이 화상을 입은 예티가 완치할 때까지의 수술비와 치료비를 모두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하면서도 아예 월급까지도 떼어먹는 악덕 업주가 허다했던 때였다. 그렇기에 단순히 방송용으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기업주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예티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던 그 사장은 존경받을 만하다. 그러나 화염 속에 코리안 드림과 예쁜 얼굴을 잃어버린 예티도 잊으면 안된다.



상기한 예티의 경우 외에도 남편이 암으로 사망했지만 어린 삼남매와 시어머니를 위해 한국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녹록치 않은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필리핀 며느리도 있고, 한국여자들이 그렇게도 하기 싫다는 제사일을 혼자서 척척 해내는 아프리카 며느리도 있고, 한국에서의 형편이 어려워 역으로 자식을 자기가 떠나온 고향에 남아 계신 부모님에게 보내놓고 날마다 눈물 짓는 며느리도 있고 'Love in Asia'에 감동적인 이야기는 많다.

'Love in Asia'를 보면서 감동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 중에서도 정말 펑펑 울면서 보았던 것은 미얀마 신부 마야민트엔의 사연이 나온 방송을 보면서였다. 마야민트엔 부부의 결혼은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인연이었다. 한국인 남편인 박동천은 어머니가 임종하자 불상을 만들기 위해 미얀마로 갔는데 한국에 있을때도 그랬듯이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랬던 박동천 앞에 나타난 마야민트엔을 보고는 결혼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박동천이 마야민트엔을 만난 날이 바로 그의 어머니 백일재를 지내던 날이었고 이들이 결혼한 두 달 후에 미얀마에서는 법적으로 외국인과 결혼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한국으로 와서 살게 된 지 7년 만에 마야민트엔 부부는 마야민트엔의 부모님을 찾아 뵙기 위해 고향 미얀마로 간다. 꿈같이 행복한 며칠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전날 밤에 마야민트엔 부부는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린다.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리다가 마야민트엔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부모님에게 넋두리처럼 이렇게 얘기한다.

"죄송해요. 잘 해주지 못해서 죄송해요. 저로 인해 마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를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를 잊어주세요. 생각나면 마음만 아프니까요."

한국말로 부모님에게 얘기하는 미얀마 신부의 그 절절한 넋두리가 내 가슴을 후벼 파 나도 눈물을 펑펑 쏟으며 봐야만 했었다. 언제 또 이런 꿈 같은 날이 올 지 기약할 수도 없고 또 다시 기나긴 이별의 시간을 참아내야 하지만 부모님만은 똑같은 그리움과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기에 아예 '저를 잊어주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그 심정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부모는 늘 가슴에 자식을 품고 살아가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야민트엔의 눈물이 더 애달펐다.



'Love in Asia'에는 일회용으로 잘 편집해서 포장된 '1박2일 - 외국인근로자' 특집 방송보다 더 절절한 감동과 눈물이 있다. 그런데 단지 몇십 분의 방송으로 생긴 반향이 5년을 넘게 사연을 전해왔던 방송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이 나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현실은 외면한 채 잘 포장된 감동을 얘기하는거나 러브인아시아의 변질된 방송 취지 등은 마치 작은 빛으로 커다란 그림자를 가리는 격으로 보여 마음이 편치는 않다. 농촌 총각에게는 죽어도 시집가지 않겠다는 한국 여자들 때문에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가난한 나라의 어린 여인들을 수입해오는 것이었다. 수십년 나이차가 나는 것은 다반사고 정신지체를 포함한 장애인도 돈으로 무분별하게 가난한 나라의 여인을 사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가난한 친정집을 먹여살리기 위해 한국으로 온 어린 여인들이 그나마 잘 살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하면서도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주도 많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는 각종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사는 한국의 서민들은 공포에 떨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니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반감을 넘어 증오하는 한국인들도 많다.

시청률 수위의 방송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잘 포장된 감동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외국인 근로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대책없는 훈계를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의문이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란 자들은 틈만 나면 다문화 가정을 포용해야 된다고 그럴싸하게 말들을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들 중에 다문화 가정을 받아들인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수십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글이 있길래 보게 되었는데 내용 중에 부끄러움을 준다는 부분이 있었는데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니다. 시청률 수위 방송이 그리고 수십만의 조회수를 보장해주거나 보장받는 자들이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실태와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없이 잘 포장된 방송의 편집에 편승하려 했다는 그 사실이다.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고 장밋빛 시선으로 포장해서 왜곡된다면 상응한 대책이 나오기는 어렵다. '1박2일' 제작진이 시청률 반등이라는 결과물에 취해 의기양양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방송국 PD라는 자격으로서는 수치스러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