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시크릿가든' 의미를 찾아보는 세가지 장면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종영되었는데 방영중인 거개의 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시청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해피엔딩인가 새드엔딩인가에 있었다. 비례적인 관계라 할 수 있는 시청률과 엔딩 논란에 드라마의 내용적인 면은 관심 밖이거나 아예 왜곡되어 버리기도 한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종영 후에도 유사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수시로 '사회지도층이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에게 베푸는 적선'이라는 독설을 내뱉었던 재벌 후계자인 김주원을 보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들먹이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길라임과의 달콤한 연애 이야기로 포장되어 '까도남'이니 '차도남' 등으로 순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주원이 소속된 로엘가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찾을 수는 없다.

또한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은 채 스토리를 끌고 왔던 김주원의 엘리베이터 사고로 생긴 트라우마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트라우마가 깊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문분홍이었다. 그 외에 재벌가의 사랑방정식을 살짝 언급한 부분도 나온다. 이하에서는 이 세가지를 언급하려고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여준 박봉희

박봉호가 로엘 백화점 VVIP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여직원을 위해 김주원(영혼은 길라임)이 성추행한 VVIP를 폭행해서 유치장에 있다는 사실을 문창수에게 보고하러 온 자리에서다. 무슨 이유로 고객을 팼느냐는 문창수의 질문에 박봉호는 '고객와 여직원 사이에 신체 접촉이 있었는데 여직원이 과민반응을'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박봉희는 '백번 생각해도 김주원이 잘한 일이라며 말 같지 않은 소리할 거면 가'라며 문창수와 동생인 박봉호의 말을 일거에 막아버린다.



문창수는 박봉희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 박봉희와 백화점에 들렀다가 김주원이 백화점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내며 김주원을 호출한다. 이 자리에서 박봉호는 백화점 사장 자리를 넌즈시 가리키며 야망을 나타낸다. 그것을 본 박봉희는 분수를 알라며 박봉호를 나무라고 김주원을 격려해주며 화난 문창수를 다독여서 되돌아가게 된다.

김주원은 길라임과 결혼식을 하지 않고 먼저 혼인신고를 한 후 문창수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허락해 달라고 한다. 문창수는 버럭 화를 내며 '내 허락 받고 싶으면 니 엄마 허락부터 받고 와 그 전엔 어림도 없어'라고 호통친다. 그러자 박봉희는 '이 아이들 이미 부부이니 목소리 낮추라'고 문창수를 다독이며 김주원에게 말한다. '김사장 자네 어머니 불쌍한 사람이야. 이복 자매네 나같은 새엄마에 마음 둘 곳이 어디가 있어, 김사장밖에.' 그리고 길라임을 돌아보며 '어렵더라도 야속하더라도 참고 자네가 잘 해줘야 한다'며 충고해준다.

박봉희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상의 세가지이다. 박봉희는 왜 연예인과의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는 호색한인 문창수의 네 번째 부인이 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로 신중하고 현명한 캐릭터이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찾아야 한다면 그건 박봉희이다.

또한 고졸 출신으로 상무에까지 오른 박봉호에게서도 의미를 찾을 수는 있다. 물론 누나인 박봉희가 문창수와 혼인을 하자 그 후광으로 능력에 부치는 야심을 위해 무리수를 썼던 잘못은 있다. 고졸 출신으로 대기업 임원이 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 경제가 성장일변도에 있던 과거에는 간혹 그런 경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졸 출신이라면 대졸 사원과 동급 사원이 되는데에만도 빨라야 10년은 걸린다. 좀 더 상부구조로 올라가려면 학벌과 인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박봉호처럼 고졸 출신으로 대기업 상무에까지 오른 인물이 있다면 말 그대로 입지전적이라고 할 것이다.

문창수의 연애와 결혼

문창수는 네 번 결혼을 했으나 늘 외도나 연예인과의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는 호색한이다. 네 번째 부인인 박봉희와 결혼해서는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지나가는 일분 일초가 아까울 정도라며 박봉희를 아끼고 위해준다.



문창수는 김주원이 길라임과 혼인신고를 마치고 찾아와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하자 이렇게 호통친다. '야 임마 나는 정략결혼 세 번 끝에 이사람 만났어. 넌 뭐가 그렇게 잘났냐. 요즘 것들 그냥 아주 저들 밖에 몰라. 아주 이기적이야.' 문창수의 말에 따르면 세 번의 결혼은 사랑의 감정도 없으나 이기적으로 집안의 반대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문창수가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녔던 이유도 정략결혼에서 생기는 폐해였다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성상납을 했다가 자살을 선택했던 한 연예인이 있었다. 어느덧 세인의 관심사에서 멀어졌지만 나약한 어린 연예인의 꿈은 여러 재벌가 사람들의 말초적인 욕구충족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정작 죄 지은 자들은 여전히 호의호식하는 사회지도층으로 잘 살고 있다. 드라마 '자이언트'에 살아남는 자가 천벌을 주는 거라는 대사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천벌이란 타인을 착취하는 사람들에겐 자기합리화하는 수단이 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겐 도피처가 된다.

김주원의 트라우마는 없었고 문분홍의 트라우마만 있었다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김주원이 21살에 당했던 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김주원은 무의식으로 기억을 밀어내야 했을 정도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을까가 궁금했었는데 기억을 밀어내야 할 정도의 특별한 일은 없었다.

사고로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을 때 길익선이 구출하러 왔고 길익선이 김주원을 먼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내보내고 뒤따라 나오려는데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조짐이 감지되었다. 그러자 길익선은 밖에서 잡고 있던 김주원의 손을 놓으며 김주원을 대피시키고 추락해서 사망하게 된다. 여기서 길익선이 김주원에게 했던 부탁도 별 게 없고 '얼른 나가 나가서 우리 딸한테 일찍 못가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아빠가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줘'였다.



사회지도층의 도덕성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김주원이 그 사고로 인해 폐소공포증에 시달릴 수는 있겠으나 애써 무의식으로라도 기억을 밀어내고 여전히 그 장면만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트라우마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길익선의 빈소에 찾아가 길라임과 나란히 누웠으면서 길익선의 마지막 말을 전하지 못한 이유도 불분명하다. 또한 13년 동안이나 홀로 남은 길라임을 돌보지 않았다. 김주원에게 사회지도층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얘기하는 것은 넌센스다.

트라우마가 깊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김주원이 아니라 오히려 문분홍으로 보인다. 문분홍은 길라임에게서 김주원을 떼어내기 위해 김주원에게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한다. 길라임이 김주원을 구해 준 '아버지의 목숨을 빌미로 접근했고 발목 잡으려고 고인이 된 아버지까지 이용하고 죄책감을 자극한 아이였으니 지금이라도 옳은 판단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돌아온 김주원은 거짓말을 했던 문분홍을 찾아가 '이번 일로 자존심도 잃고 저도 잃으셨으니 이제 엄마 아들로 안 살고 남은 생은 길라임의 남편으로 살겠다'고 통보한다. 문분홍은 '지금 느끼는 건 행복이 아니라 낯선 것들이 주는 찰나의 미혹에 잠시 홀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니 아빠를 만난 것처럼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그런 순간이 오는데 결국 먼저 지쳐 떠나가는 건 우리가 아니라 저 쪽이야'라고 한다. 문분홍의 남편은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죽어서 떠나갔는지 아니면 재벌가의 사고방식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떠나간건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문분홍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겼고 확고한 고정관념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문분홍은 아들이 자기와 같은 전철을 밟을까 두려웠던 것이라 하겠다.




문분홍은 일관적으로 '사회지도층이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에게 베푸는 적선'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김주원이 길라임과 혼인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하면서 김주원과 사회지도층다운 협상을 한다. 부모 버리고 갔으니 절대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말하고 가족도 아닌 남한테 초췌한 꼴 보이기 싫다며 비서에게 거울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문분홍은 손자 셋은 반갑게 맞아들이면서도 김주원과 길라임은 끝까지 집 안에 들이지 않는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는 기적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기적이란 3층 건물에서 엘리베이터 사고로 소방관이 사망했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던 김주원이 일어설 수조차 없는 상태로 발목을 다쳤다면 1층으로 엘리베이터가 추락했다고 가정한다면 가능한 일일까?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거기서 더 추락해서 타고 있던 소방관이 매몰되었다고 한다. 지하 10층 정도는 되는 건물이었다는 얘기가 아니라면 이 스토리야말로 기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