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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시크릿가든' 마법 속에 숨겨둔 작가의 재능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끝났다. 감각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으나 내용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심취해서 볼만한 드라마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마법이나 선몽 같은 감각적인 것들로 시청률을 높이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다룰 만큼의 깊이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깊이는 없으나 대신에 작가는 액션 감독처럼 특정인에 대한 인터뷰 능력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드라마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주요한 소재로 마법을 등장시켰는데 작가는 시종일관 이 마법 속에 자신의 재능을 숨겨두고 있었던 것 같다.

오스카의 엄마인 문연홍은 윤슬과 오스카의 스캔들이 터지자 찻집으로 윤슬을 불러내 선은 주원이랑 보고 결혼은 오스카랑 하려는 저의가 뭐냐고 따진다. 윤슬은 술 한잔 하자며 문연홍을 데리고 가는데 문연홍은 사촌동생이랑 결혼 얘기 오간 애를 어떻게 며느리로 받을 수 있겠냐고 한다. 윤슬이 스물한 살부터 이러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느냐고 하자 문연홍은 '피부 건조해 질까봐 술 끊었는데 아 어떡해'라며 미스트를 뿌린다. 그러자 윤슬도 '저랑 같은 취향이시네요 저도 건조함과 항상 싸우거든요'라며 같은 미스트를 꺼내 뿌리는데 문연홍이 '어머 너 미적 기준은 나랑 같구나'라며 윤슬과 문연홍은 단순하고 유치하게 의기투합해버린다.



문연홍은 윤슬을 다그치는 것을 만류하는 오스카에게 '늘 하던건데 뭐가 그렇게 놀라워'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런 재벌가 사모님께서 건조함과 싸우기 위해 동일한 미스트를 사용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130만원어치의 술을 마시고도 부족해 2차를 갈 정도로 윤슬과 의기투합한 것이다. 뭐 윤슬이야 집안, 학벌, 직업, 외모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십년 동안이나 오매불망 오스카만 바라보고 살아왔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모든 것을 기억해낸 김주원은 문분홍의 허락을 얻을 수 없게 되자 결혼식은 하지 않고 오스카와 윤슬을 증인으로 세워 혼인신고부터 먼저 한다. 김주원과 길라임 그리고 오스카가 혼인신고서에 사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치찬란한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김주원은 길라임에게 '이제 나같은 남자를 독점소유하게 됐으니까 귀엽게 '꺄~' 해보라'고 시키고 길라임이 실행한다. 그리고 오스카와 윤슬은 김주원과 길라임의 결혼을 축하해준다며 그들의 신혼방으로 올라가 알록달록 요란스럽고 유치하게 장식해준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김주원은 길라임에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책을 보라고 건네준다. 이 책에는 뇌사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던 길라임과 영혼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고 주변 정리를 하던 김주원이 추가로 써 넣었던 부분이 있다. 김주원은 그것을 읽어보다가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게 되었기에 그 부분을 길라임에게 보여주려던 것이었다.

이 책에는 원래 끼워져 있었던 인어공주에다가 김주원이 내용을 추가해 두었던 것이 있는데 이 내용을 읽은 길라임은 '인어공주 엔딩이 우리가 알고 있던 엔딩이랑 다른 완전 구린 내용이라고 말한다. 김주원은 '무슨 소리야? 그게 최선이야'라고 말하며 책을 빼앗는다. 그리고 김주원은 '니가 사랑을 알아'하고 말하고 길라임은 '그러는 그쪽은 아세요'라고 한다.

새드 엔딩을 추론해내는 데는 빠짐없이 인용되곤 했었던 인어공주에 담긴 의미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꽤나 천박하고 유치한 것이었다.

드라마에 따르면 인어공주는 '인류 최초의 세컨드 동화'이고, 백설공주는 '사회지도층인 여자가 소외계층인 일곱난장이 어장관리하다 사회지도층 키스 한방에 난장이들 버리고 냅다 튄 얘기'이고,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사회지도층인 여자가 잠만 자다 사회적 이슈가 되서 사회지도층 만난 얘기'이다. 여기에 더해진 '역시 사람은 뭐 하나만 꾸준히 하면 된다는 교훈을 얻지'라는 작가의 뜬금없는 발상은 가히 안드로메다급으로서 손색이 없다.



길라임에게 '그러고 보면 걔들은 공주고 이쁘니까 왕자가 반했다 치지만 그쪽은 그 얼굴로 날 어떻게 만났냐'고 말하던 김주원은 길라임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낯뜨거운 애정행각을 벌인 끝에 5년 후 식구가 많이 늘어 아들 셋의 아버지가 된다. 김주원에 따르면 '출산 장려 정책의 모범을 보인 사회지도층의 금슬'이라고 한다.

이상은 몇 장면을 뽑아본 것이고 김주원의 내레이션으로 이런 게 나온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얼마나 유치해질 수 있는지 끝을 볼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지만 난 유치에 재능이 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마법과 기적 그리고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었던 인어공주를 통해 작가는 시종일관 드라마의 내용이 얼마나 천박하고 유치해질 수 있는지 끝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소재들 안에 작가는 자신의 유치(幼稚)라는 대단한 재능을 숨겨두었던 것이다.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자본이 만들어낸 논리하에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재능 중에 하나가 천박함과 유치함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