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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SPORTS

아시안게임 감동 혹은 안습 장면들 BEST

   
   
   
제16회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이 났다. 한국 선수단은 목표했던 65개를 넘는 76개의 금메달을 따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고 한다. 북한의 연평도에 포격을 퍼붓는 사건으로 관심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선수들의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

아시안게임 중계를 보면서 감동적이었거나 혹은 안습이었던 장면들을 몇 개 골라서 기록해 본다. 대부분 경기 중계를 실시간으로 시청한 경우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본문에 언급하는 장면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가정하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첨부된 이미지들은 거의 연합뉴스에서 보도한 이미지 중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 안타까웠던 장면들 ◇

Ⅲ, 수영 박태환



대부분의 종목에 출전했던 박태환은 연이은 경기와 시상식에 지쳐보였다. 남자 자유형 1500m에서는 은메달을 땄는데 그 후 약 20여분 후에는 400m 혼계영에 출전했다. 400m 혼계영 앵커로 출전해 3위로 골인했는데 1위를 했던 중국팀이 실격패하는 바람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Ⅱ, 인라인롤러 우효숙



인라인롤러 여자 EP 10,000m에서 금메달을 따고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에게 금메달을 빨리 걸어드리고 싶다며 들떠 있던 우효숙은 경기가 끝난 후 할머니가 지난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시상대 위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Ⅰ, 사이클 나아름



여자 20㎞(80바퀴) 포인트 레이스 결승에서 2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나아름은 38바퀴째에서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바로 앞에서 달리던 홍콩 선수가 넘어지면서 바퀴를 부딪쳐 함께 트랙에서 굴러 떨어진 나아름은 뒤에서 달려오던 중국 선수의 앞바퀴에 등이 밟히기도 했다. 다행히 부상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기를 마치지 못한 아쉬움에 눈물을 쏟으며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나아름은 며칠 후 개인 도로에 출전했지만 외국 선수들의 집중 견제에 막혀 메달을 따는 데 실패했기에 벨로드롬에서의 사고가 더 안타까웠다.

◇ 놀라웠던 장면들 ◇

Ⅲ, 사격 여자 권총 10m 개인 김윤미
사격 여자 권총 10m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윤미는 임신 7개월 된 만삭의 몸이었다. 태아를 생각해 대표로 선발되었던 25m, 10m 공기권총 두 종목 중에서 10m 공기권총만 출전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지만 김윤미의 글메달은 사실 놀라웠다기보다는 안쓰러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운동 선수들에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의 메달이 그만큼 대단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임신한 상태에서 "함께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방해가 되고, 뒤쳐질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며 놀라운 임신 투혼을 보여준 김윤미는 마치 강인한 한국 어머니들의 상징인 것 같다.

Ⅱ, 수영 여자 평영 200m 정다래



"아 이게 왠일입니까?"
수영 여자 평영 200m 결승에서 정다래가 1위로 골인하자 내가 시청하고 있던 방송의 아나운서가 내지른 일성이었다.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여자 수영에서 12년만에 나온 굉장한 금메달이었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깜짝 금메달이었기에 더 놀라웠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그 후에 일어난다. 펑펑 울면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에서부터 엉뚱한 발언으로 매번 화제를 몰고 다니며 '4차원 얼짱'으로 불렸다.

정다래 본인이 판단할 문제겠지만 개인적으로 정다래는 언론 특히 방송과의 인터뷰는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이야 좋은 성적을 거둔 상태여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향후 높아진 기대치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지금의 관심은 모두 비난으로 돌아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정다래에게서 기삿거리를 쥐어짜내던 언론이나 방송들은 외면할 것이고 오히려 대중들의 비난에 편승해서 인터뷰 내용 하나하나까지 걸고 넘어질 것이다.

Ⅰ, 수영 자유형 100m 박태환



"어, 어, 어, 어, 이야!"
박태환이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자유형 100m 결승 경기를 시청할 때 내가 이랬다. 박태환은 스타트에서부터 선두가 아니었고 '박태환은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50m 반환점을 돌고 나면 폭발적인 스퍼트를 시작할 거'라는 아나운서의 말도 들렸지만 50m반환점을 돌고 나서도 줄곧 선두로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 역시 100m는 어려운 모양이라고 기대를 접으려고 했는데 골인지점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순간에 박태환의 놀라운 스퍼트가 시작되었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보는 금메달 ◇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멤버여야 할 최강 멤버로 구성한 한국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것에서는 별다른 의미와 감동을 찾을 수 없다. 배트 하나를 돌려 쓰는 팀, 바지를 걷으면 안 된다는 룰조차도 모르는 팀 등 이런 팀들을 상대로 우승한 게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프로선수들에게 확실한 병역 브로커 역할을 한다는 의미밖에 없는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선발은 재고되어야 한다. 아마추어 선수만으로 그것도 아마추어의 큰 대회 2개와 시기가 겹쳤다는 이유로 베스트 멤버가 아니었던 일본의 경우를 한국도 따라가야 한다. 병역 혜택의 기회는 이미 프로에서 자리잡은 선수들이 아니라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높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또한 그들에게 국제경기 경험을 쌓게 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 의미가 크다고 생각되는 금메달 ◇

여자 허들 100m에서 금메달을 딴 이연경의 금메달이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강국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메달밭이라고 불리는 트랙과 필드에서 메달이 많이 쏟아져야 한다. 이연경은 세계 수준에는 아직 많이 못 미치는데다 벌써 서른을 넘긴 나이여서 뒤를 이을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한국 육상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 선수들에게 가장 큰 당근이라고 할 수 있는 병역 혜택의 기회를 육상선수들에게 더 늘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1년도 남지 않았는데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 육상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 멀리뛰기 정순옥, 남자 멀리뛰기 김덕현, 여자 100m허들 이연경, 남자 마라톤 지영준의 금메달과 은 3, 동 3개를 수확한 육상의 성과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여자 100m 허들에서 이연경이 딴 금메달이 가장 의미가 컸다.

◇ '안습'이었던 장면들 ◇

Ⅲ, 축구
한국축구의 고질병인 뻥축구는 여전히 해법이 안 보인다. UAE와의 4강전은 한국축구의 현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기였다. 소속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와일드카드로 합류했던 박주영은 팀의 승리를 견인하지도 못했고 상대선수의 유니폼 교환 제의를 노골적으로 거절하는 사진까지 찍히며 체면을 구겼다. 홍명보 감독의 승부차기를 대비한 선수교체 전략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승부차기를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비긴 상태로 경기가 끝났을 때의 얘기고 그 전에 승부를 종결시킬 전략이 우선되었어야 했었다.



선수 교체 카드를 승부차기를 대비해 골키퍼 교체로 활용한 것은 안일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속터지게 하는 전략이었다. 총체적으로 답답한 경기였기에 연장 후반에는 차라리 UAE를 응원했고 UAE가 결승골을 넣자 UAE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에 이란과의 경기에서 겨우 체면치레를 했고 그것이 극적인 승부였기에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 많이 묻히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경기능력과 전술로 한국 축구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Ⅱ, 태권도
태권도 종주국이라거나 메달수의 문제가 아니라 출전 선수들이 과연 국가 대표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의 경기를 했다. 전자 호구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마치 한국선수들만의 문제라도 되는 듯한 변명이 더 불편하게 한다.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아시안게임이었다. 전자 호구 시스템은 태권도를 무도(武道)가 아니라 '똑딱이 스포츠'로 격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보인다. 태권도를 이렇게 똑딱이 스포츠로 만들고 미숙한 경기운영과 판정이 반복된다면 결국 태권도가 갖는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마저 떨어뜨리고 말 것이다.

Ⅰ, 양수쥔(楊淑君)
최고의 안습 장면은 여자 49㎏급 대만 선수인 양수쥔의 실격패 판정을 둘러 싼 대만인들의 반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불법장비를 사용했다가 실격패를 당해놓고는 '한국의 음모' 때문이었다며 한국의 국기를 불태우고 소녀시대가 와서 사과해도 소용없다는 황당무계한 주장까지 나왔었다. 일부 대만인들은 타이베이(臺北) 한국학교에 달걀을 투척하기도 했고 태권도 판정 시비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했던 대만 의원도 있었다니 참 유구무언인 사건이었다.



대만인들은 "금메달을 돌려달라"고 하는데 양수쥔과 해당 체급에서 금메달을 딴 우징위의 경기력을 직접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만약 양수쥔이 올라갔다면 과연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까하는 회의감마저도 생긴다. 무엇보다 양수쥔은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양수쥔은 영웅대접을 받으며 귀국했는데 공항에는 부총리까지 나와서 영접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디나 사실관계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누군가의 선동에 편승해서 무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정치권 인사들이고 언론계 인사들이고 모두 나서서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그렇게 황당무계한 근거를 들어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출해 주변국들을 모두 적국으로 돌려세운다고 양안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텐데 양수쥔의 실격패 판정을 둘러 싼 대만인들의 비이성적인 반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