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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광화문', 무가치한 정치적 접근이 문제

   
   
   
광화문을 복원한다고 하자 광화문 현판 교체와 관련해 '광화문'이라는 글씨를 한글로 해야 한다, 한자로 해야 한다며 말들이 많았다. 결국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광화문 현판을 쓴 이가 경복궁 훈련대장이던 무관 임태영임을 알려주는 공사일지 '경복궁영건일기'의 기록이 발견돼 임태영의 글씨를 '쌍구모본' 방식으로 기존 글씨에 최대한 근접되게 디지털 복원하는 것으로 결정났다.

그런데 광화문 현판이 복원 3개월도 되지 않아 균열이 발생하자 현판을 한글로 하느냐 한자로 하느냐의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고 현판 재료가 금강송이 맞다 아니다의 논쟁까지 더해지고 있다. 숭례문이 불에 타면서 관악산의 화기가 더욱 흥해졌는지 저 동네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고 시끄럽기만 하다. 관악산에 물동이를 더 묻어서라도 관악산의 화기를 쇠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광화문 현판은 대표적인 예이고 문화재 하나를 놓고도 정치세력들끼리 기싸움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금이 간 광화문 현판은 틈만 나면 정치적, 이념적으로 편갈라 싸우는 한국의 자화상을 상징적으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해야 한다, 한자로 해야 한다'는 논쟁의 중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광화문을 콘크리트로 보수할 때 설치했던 박정희 친필 현판을 '철거해야 한다, 그대로 두어야 한다'가 자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광화문을 보수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사료 검토 없이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중심축도 다르게 보수했던 임시방편이었다. 거기에 걸렸던 박정희 친필 현판을 새롭게 복원한 광화문에 설치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고집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전 국회의장이었던 김형오씨는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에 불과했던 사람이 쓴 현판 글씨를 복원할 이유가 있느냐는 좀 희한한 논거를 들이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훈련대장 따위가 감히 고결하신 국회의원과 고관대작 나리들의 놀음에 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광화문 복원 전 현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휘호였다는 이유로 굳이 새 현판에 한자를 썼다면 역사의식이 모자란 것'이라고도 했는데 역사의식이 모자란 것은 오히려 김형오씨가 아닐까 싶다.

경복궁 중건 당시에 흥선대원군과 조정 대신들은 광화문 현판을 쓰는 이로 당대 명필가들을 제쳐두고 왜 하필이면 당시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에게 맡겼을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영건도감(營建都監)에는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光化門),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서문인 영추문(迎秋門)의 현판을 쓴 사람들이 모두 무관이었다. 임태영이 '훈련대장에 불과했던' 사람이어서 광화문 현판을 썼던 것이 아니라 그가 '훈련대장이었기 때문에' 광화문 현판을 썼다는 말이다.

전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씨는 다른 곳에 남아 있는 정조대왕의 글씨를 집자해 광화문 현판을 바꾸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별다른 근거가 없어 보이고 다분히 위정자들이 정조대왕의 이미지를 활용하겠다는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도 보인다. 정조가 집권 당시에 주로 거처했던 곳은 경복궁이 아니었고 주로 창덕궁과 창경궁이었다. 그 이유는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소실되어 고종대에 가서야 복구되었기 때문이다. 광화문 현판 글씨에 정조를 끌어들이는 것은 좀 뜬금없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하느냐 한자로 하느냐의 문제는 박정희 친필 현판을 걷어냄으로써 박정희 시대를 지운다거나 남겨둠으로써 박정희 시대를 계승해야 한다는 식의 정치적인 접근을 배제하지 않으면 난장판 싸움은 기회만 되면 재현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친필 현판도 그 자체로는 하나의 문화재적인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복원된 광화문으로 옮겨 설치해서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또한 광화문을 복원한다고 해서 굳이 한자를 고집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된다. 당시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의 글씨를 쌍구모본 방식으로 디지털 복원했다고 하는데 쌍구모본이라는 게 글씨를 쓴다기보다는 그림을 베껴서 그리듯이 글씨를 그려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어차피 임태영이 썼던 광화문이란 글자를 원형대로 복원해낼 수 없다면 차제에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검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광화문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은 세종대였는데 세종의 명령을 받은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 광화문이라고 한다. 바로 이 집현전에서 한국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인 한글이 창제되었다고 본다면 광화문 현판은 최초의 훈민정음체의 한글로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현재의 세종대왕 동상과도 어울리고, 무가치하고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도 피할 수 있고, 역사적 문화적으로 봤을 때도 상징성이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세종이 직접 지었다는 월인천강지곡(위 삽입 이미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글자체가 상당히 멋드러지고 운치가 있어 예술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민주당에서 현판의 재질을 문제삼고 나서는 속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누구든 이 문제를 계속해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쟁점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숭례문이 불에 탔지만 민주당 집권 때에는 낙산사가 불에 타버렸다. 숭례문 방화범의 방화 동기가 개인적인 불만을 표출했다는 꽤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는데 그 방화범의 불만은 바로 민주당 집권시에 가졌던 불만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수년 전 흥례문 복원에 참여한 목수들에게 흥례문 낙성식 초청장조차 전달하지 않을 정도로 푸대접했던 민주당이 도편수의 잘못인 양 문제삼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나무라는게 말리다 보면 비틀리기도 하고 트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이번의 경우는 아무래도 정부가 8.15 기념행사에 맞추려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겼던 원인도 크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문제가 바로 위정자들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기 위한 보여주기식의 졸속적인 밀어붙이기에 있다. 충분히 공사가 완공되면 그에 맞추어 기념행사를 해야지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기 위한 날짜에 맞추어서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겉은 그럴싸하나 어딘가 금이 가고 틈이 벌어지는 곳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