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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미디어와 언론

조선일보는 이명박과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게 아니야

고재열의 독설닷컴에 있는 '조선일보 vs 이명박,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되었다'라는 제목의 글은 좀 의아하다. '조명박(조선일보+이명박)의 난'을 소개한다는데 어떤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했는지 모르겠으나 약간은 생뚱맞다. 어떤 분이 "고재열의 소설닷컴이 더 낫다..."는 댓글을 달아뒀지만 고재열의 개인적인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이라는 정도의 의미는 있다.

조선일보가 이명박을 까고 날을 세우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차기 대권을 위한 당내 계파간 화합을 주문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가지고 조선일보가 이명박 정권을 깐다고 할 수 없고 조선일보가 이명박과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연관지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는 이명박에 대해서 비판하는게 아니라 한나라당내 계파갈등 세력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고 그 해법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즘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일련의 기사들은 '이명박 까기'가 아니라 모두가 '이명박 이후'에 그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무도한 국정운영을 했어도 야당이 마땅한 대안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들러리에 불과했다. 오죽하면 보수쪽 사람들이 공공연히 "민주당이 고맙다"느니 "야당 덕에 산다"느니하는 말을 했을까. 상황이 이러하니 여권이나 보수쪽에서는 차기에 대해 심각하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게 아닌가하는 분위기였다. 조선일보 역시 이와 연장선상에서 이명박에게 '좌파와의 싸움 한 가지라도 분명히 이뤄내야 한다'고 주문했었다.

그런데 4.29 재보선 결과는 그 의미가 좀 다르다. 한나라당 참패라고들 하지만 시흥시장 선거를 빼면 한나라당에게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라 본다. 하나 경주의 재보선 결과는 한나라당에게 꽤 심각하다. 한나라당 실세중의 실세인 이상득의 지역구에서 차로 20여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경주에서 친이계와 친박계가 동시에 출마자를 냈고 친박계 출마자가 당선됐다.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가 말하는 '민심'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친이계와 친박계가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다면 차기 대선에서는 당이 쪼개질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차기 대권은 장담할 수 없다.

조선일보가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와 거리를 두려고 했었고 작년에는 박근혜를 맹비난하면서 그 지지자들의 분노를 샀다. '엉뚱한 곳에서 격 낮은 싸움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느니 '불만, 불평 공주, 심통 공주'라느니 '박근혜가 말하는 것들은 흥정'이라느니 '딴살림 차릴 요량이 아니라면 이명박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으라'느니 원색적인 표현들을 동원했다.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비난하고 거리를 둠으로써 박근혜 지지자들의 조선일보에 대한 불만도 컸었고 그들은 촛불집회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지금 조선일보로서는 차기 정권에서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수 있고 조선일보에 비판적으로 돌아섰던 독자들까지도 한꺼번에 끌어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고재열이 '조선일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견제 세력으로 나섰다'느니 '조선일보가 상업적 판단을 했다'느니 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조선일보에겐 대단히 바람직하다. 조선일보에게 득이 되는 상황을 고재열이 나서서 홍보해주고 있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조선일보는 헤게모니를 원하는게 아니라 헤게모니를 가진 자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원한다. 현재 조선일보의 가장 큰 목표는 '방송 진출'이다. 이번 정권에서 최대한 밀어붙이기를 해보겠지만 만약에 여의치않게 된다면 다음 정권에서라도 그들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애를 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권력과 차기의 권력 모두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조선일보의 방송진출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조선일보는 대중의 지지도 얻어야 한다. 조선일보로서는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기회를 찾아야하는데 요즘 이명박 정권에게 비판적인 것은 지금도 그 기회중의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