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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디지털, 세대간 오해 여지

   
   
   
'남자의 자격 - 디지털의 습격' 편은 어느새 실생활에서 모르면 불편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디지털에 대해 맛보기나 해보자는 취지의 방송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송은 디지털에 대한 세대간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도 있는 방송이었던 것 같다.

또한 현재 스마트폰 사용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는데 마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디지털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식으로 프로그램의 포맷을 가져간 것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제작진들이 디지털을 대하는 관념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는 인상도 받게 된다.

방송 내용 중에 김국진이 난생 처음으로 이메일을 만드는 장면은 좀 충격적이었다. 이경규 세대 정도라면 BASIC, COBOL, FORTRAN 등을 사용해 프로그래밍을 직접 해야만 했었기에 컴퓨터는 상당히 어렵게 받아들여졌던 시대였으므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386 세대는 XT부터 PC를 사용하기 시작한 어찌 보면 PC의 역사와 함께 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방송 제작용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라면 김국진이 여태껏 이메일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다.

요즘은 HWP, EXCEL 등에 대해 흔히 프로그램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엄밀하게는 이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패키지(package)라고 해야 한다. HWP, LOTUS 123, QUATTRO PRO 등을 사용하기 시작하던 때에는 프로그램과 구분하기 위해 패키지라는 용어를 사용했었으나 일반화되지는 못하고 점점 프로그램이라는 용어가 자리잡은 것 같다. LOTUS 123와 QUATTRO PRO는 사용자들의 기호에 따라 선택해 사용했는데 여기서 여담 한가지를 보태자면 'LOTUS 123'에서 LOTUS 뒤에 123이 붙여진 이유는 스프레드시트인 LOTUS는 문서편집, 계산, 그래픽 이 세가지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급여계산, 재고관리, 회계 등은 요즘은 패키지로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90년대 중반까지는 전산실에서 직접 프로그래밍을 했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활성화되어서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다운로드가 가능해서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네트워크화가 시작되었던 90년대 초중반에도 지극히 제한된 경우였지만 실시간으로 문서를 다운로드하는 것이 가능은 했었다. 가령 서울 전산실 호스트 컴퓨터에 파일을 올려 놓으면 포항에서 실시간으로 다운로드해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기능이었는데 이러한 작업이 전산실 직원들의 본연의 업무는 아니었기에 이것을 이용하려면 전산실 직원들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둬야 했고 그렇다고 자주 사용하기보다는 아주 급할 때 가끔 요긴하게 사용했다.

이런 다양한 욕구와 무엇보다 여러 사람과 동시에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현실화되어 인터넷이란 것으로 발달하게 되었고 이 인터넷이 워낙 강력한 도구였기에 어느새 현실에서 인터넷을 모르면 불편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젠 인터넷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인터넷이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많이 바꾸어 놓았지만 필름 카메라를 다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디지털을 모르면 불편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자의 자격 - 디지털의 습격' 편이 디지털을 모른다고 갑갑하다거나 한심하다거나 마치 바보라도 되는듯한 식으로 방송의 포맷을 결정한 것은 잘못이다. 디지털이란 가 보지 않은 길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 매일 다니는 길이라 익숙해진 사람이 처음으로 그 길을 가느라 허둥대는 사람에게 답답하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예를 들자면 지하철 이용이 일상화되어 있는 서울 사람들이 서울에 처음 올라와 지하철을 타게 된 사람이 쩔쩔매는 것을 보고 비웃는다면 대단히 한심한 짓일텐데 '남자의 자격 - 디지털의 습격' 편의 포맷이 바로 이와 유사했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은 상기한 바와 같이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에도 문서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와 같이 직접 경험해 봤는가 아닌가의 간단한 문제이지 복잡하다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Yes 아니면 No 둘 중에 하나인 것처럼 간단한 것이 바로 디지털인데 기성 세대들이 이런 디지털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살아온 세월 만큼 겁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PC를 켜서 작업을 하다가 끄고 나오면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조카는 그대로 따라하지만 부모님들은 혹시 뭐가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겁이 나서 시도를 하지 않는다. 디지털이란 이런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방송에서 김국진이 난생 처음으로 이메일을 만들면서 쩔쩔 매고 외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장면은 좀 충격적이고 실제상황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마저도 생긴다. 물론 연예인이 자유로운 직업이고 이메일이 없어도 불편함이 전혀 없었을 정도로 PC의 필요성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김국진이 마치 40대 아저씨들의 대부분이 컴맹 수준에 가깝다는 것을 대표하는 듯한 오해의 소지를 주었던 것은 잘못이다. 김국진이 난생 처음으로 이메일을 만든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김국진 세대에서도 김국진은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로 보인다.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밤 새던 원조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 김국진 세대가 지독한 컴맹으로 비쳐진 것은 유감이다.

디지털이 무서운 것은 사실은 휴대전화가 없으면 전화번호 하나도 못 외우는 디지털 치매다. 만약에 디지털이 사라진다면 삶에 일대 혼란을 겪는 것이 디지털 세대라면 디지털이 사라진다 해도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非디지털 세대다. 요즘 세대들은 디지털 기기에 대해서 좀 더 경험했다고 디지털을 경험해보지 않아 잘 모르는 기성 세대를 무시하고 의사소통이 안된다고 투덜대는데 이는 잘못이다. 기성 세대들과 의사소통을 원한다면 그들이 어려워하는 디지털을 쉽게 가르쳐 주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서울의 남산 팔각정 가는 길을 꿰고 있는 사람이 한번도 가 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리저리 가라고 말로만 해주고는 말이 안통한다고 답답해하고 무시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방법만 알면 되게 쉬워요." 김성민의 이 말이 디지털을 대하는 바른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방송에 참여하지 못하는 멤버를 계속 놔둬야 되는가이다. 모처럼 이정진이 녹화에 참여했는데 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면 프로그램을 떠나는 게 맞는 것이지 그때그때 땜질하듯이 참여했다가 열심히 하겠다고 해명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현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납득하기는 어려운데 이정진이 연기에 전념할 생각이라면 장기 프로젝트가 계속되는 '남자의 자격'에 계속 남아 있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물론 합창단 때처럼 바쁜 스케줄을 쪼개 별도로 연습을 하는 등 이정진이 프로그램을 대하는 태도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지만 프로그램에 전념할 여건이 안된다면 차라리 연기에 매진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생각된다.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경영만이 문제가 아니라 소위 떴다 하는 연예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못하면서도 문어발식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이젠 지양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