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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 가장 감동적이었던 강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이제 단 2강만을 남겨놓았는데 18강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강의 중에서 가장 의미가 크고 감동적인 강의였던 것 같다. 이 드라마의 유일한 일관성이라 할 수 있는 뜬금없는 전개가 감동과 의미의 상당부분을 감쇄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 드라마에 몰입되어 있는 시청자가 느낀 감동은 더 크지 않았을까하는 추정을 해볼 수 있겠다. 사건이나 캐릭터에 당위성과 개연성을 높이는 스토리 전개였다면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을 냈을 것 같은데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18강이 가장 의미가 크고 감동적이었다고 보는 이유는 소위 잘금 4인방이라 불리는 문재신, 김윤희, 이선준, 구용하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해나가는 장면들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변화해 나가는 데에 대한 당위성이나 개연성을 부여하는 설명이 상당부분 부족했었기에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이 드라마가 일관되게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18강은 가장 훌륭한 강의였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전 강의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장면들을 생략하고 18강에서 부족했다고 생각되는 장면들로 대체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한다.

정조에게서 금등지사를 찾으라는 밀명을 받은 잘금 4인방은 금등지사가 숨겨져 있다는 김승헌의 사직상소문에 담긴 암호해독을 위해 서로 협력하며 진실에 다가갈수록 조금씩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걸오는 김윤희와 이선준에게 암호를 풀라고 하고는 여림과 함께 금등지사를 없애기 위해 김승헌과 문영신을 살해한 배후를 캐며 그 배후에 좌상이 있다는 사실에 접근해가던 걸오는 김윤희와 이선준의 관계를 눈치 채고는 돌연 배후를 캐는 일을 덮으려고 한다. 진실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며 끔찍이 경멸했던 걸오가 이 일을 덮으려고 하는 건 김윤희가 마음을 다칠까봐서이다.



모든 사건의 배후가 좌상이라는 말을 듣고 존경각에서 서책을 뒤적이며 힘들어하는 김윤희를 본 걸오는 '잠 안 자고 책만 보면 키 안 큰다'고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하자고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자라며 김윤희를 혼자 방으로 들여보낸다. 땅문서의 주인이 좌상이라는 사실을 김윤희가 알고 마음을 다치게 될까봐 고민하던 걸오는 이선준이 돌아오는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김윤희보다 먼저 이선준을 만난다. 그리고 이선준에게 사람들이 비겁해지는 건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인데 김윤희가 이선준에게 그런 사람 아니었냐고 에둘러 말을 하며 땅문서는 상관도 없는 모르는 일이라고만 말하고 배후를 캐는 일은 그만 두자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선준은 금등지사의 행방을 알아낼 유일한 단서인데 왜 그만둬야 하냐고 돌아서려는데 걸오가 붙잡으며 김윤희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 그렇지만 이선준은 용서를 말하기 전에 죄를 진 사람이 진심으로 속죄하는 일이 먼저라 알고 있다며 무엇보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김윤희 혼자가 아니질 않냐고 걸오에게 되묻는다. 걸오의 마음을 짐작하는 이선준은 걸오에게 김윤희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김윤희를 찾아가 땅문서는 좌상의 것이 맞다고 말하며 그 말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걸오가 사람들이 비겁해지는 건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 말하는 것은 그렇게도 증오해왔던 그 아비인 대사헌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아비인 대사헌이 자식을 잃고도 그렇게 비겁하게 살아냈던 이유는 결국 하나 남은 자식인 걸오를 지키기 위해서였음을 이제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비겁하게 배후를 숨기더라도 김윤희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지켜내라는 말임을 알지만 김윤희 뿐만 아니라 걸오에게도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이선준으로서는 김윤희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안심시키며 배후를 캐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이선준은 땅문서를 들고 아비인 좌상을 찾아가 진실을 듣고자 했으나 정도를 세우기 위해 아비와 아들이 정적이 되는 일이 흔한 일이라면 이제부터 좌상의 정적이 되고자 한다며 돌아온다. 그리고는 김윤희에게 땅문서는 좌상의 것이 맞다고 말하며 말을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 엄청난 사실이 혼란스럽고 견디기 힘든 김윤희는 밖으로 나가는데 이선준이 뒤따라와 김윤희를 붙잡고 할 수만 있다면 대신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용서해 줄 수 없다면 그것도 받아들이겠으나 허락해 준다면 금등지사를 찾아 이 일을 바로잡는 일에 끝까지 함께 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윤희는 금등지사를 찾는다고 이제 와서 뭘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고 뭐가 달라지냐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돌아선다.

사실 이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김윤희도 아니고 걸오도 아니며 바로 이선준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을 준 연인 김윤희의 아비와 사형 걸오의 형을 살해한 배후에 그토록 존경해왔던 아비 좌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그 아비와 정적이 되면서까지 죽기살기로 배후를 캐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그런 황망한 와중에서도 연인인 김윤희의 마음이 다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런데 김윤희는 나누어 끼었던 반지도 빼버리고 회피하려고만 하고 있다. 그런 이선준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여림은 걸오와 함께 술친구는 아니라도 친구는 필요할거라며 이선준을 데리고 간다.

자기 삶의 무게만 생각하고 타인은 돌아볼 줄 모른 채 배부른 투정만 부리는 김윤희의 이율배반적인 유아기적 언행이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고 끝나는가 했었다. 그런데 김윤희도 집에 가서 동생 김윤식으로부터 아비 김승헌의 속마음을 듣게 되는 것을 계기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글공부를 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생각했던 아비가 사실은 문 밖에 서 있는 김윤희가 잘 들을 수 있게 언제나 문 앞에서 목청껏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는 사실을 김윤식으로부터 듣는다.



그리고 명륜일지에 있는 아비 김승헌의 일기를 읽으며 김윤희는 비로소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딸아이의 학문이 느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스승이라면 아이의 재주가  탐났을 것이다. 하나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없는 딸자식에게 열망을 가르치는 일은 옳은 일인가. 재주 많은 자식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 못난 아비는 딸 자식의 글 읽는 소리에 숨 죽여 오늘도 가슴으로 울 뿐이다." 딸 자식에게 글 공부를 가르치는 것은 독이나 다름없던 시대에 재주 많은 딸 자식에게 글을 가르치고 그 실력이 느는 것을 보며 괴로워하는 아비 김승헌의 장면은 18강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다.

이선준은 존경각에서 만난 김윤희의 손에 반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김윤희는 아버지에 대한 회한을 얘기하며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르니까 금등지사를 꼭 찾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런 김윤희가 안쓰럽기만한 이선준은 다 알아들었으니까 그만 애써도 된다며 무슨 무슨 수를 쓰든 금등지사를 꼭 찾게 될거라고 약속한다고 말한다. 그 길로 이선준은 직접 윤참군을 찾기 위해서 윤참군의 용모파기를 들고 주막으로 노름판으로 전전하며 묻고 다니다가 패거리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게 된다.

생각보다 몸이 앞서 나간 것은 이선준답지 않은 일이지만 김윤희를 만나고부터는 늘 이선준답지 않은 언행을 일삼아 왔으니 사실은 이번 일이 그리 새롭지도 않다. 이 꼴이 되도록 윤참군을 찾아 헤맨 이유가 금등지사를 찾기 위해서나 아비인 좌상의 결백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10년 전 그 날 밤의 진실이라는 것만이 여전히 이선준다울 뿐이다. 금등지사를 찾게 되면 더 이상은 지금처럼 좌상댁 도련님으로 살 수 없을지라도 마음을 준 벗들의 아비와 형을 빼앗아간 죄인의 아들로 사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것 또한 이선준답다.



그런 이선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김윤희는 밖으로 나가고 따라온 이선준에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을 저버리는 일도 이렇게 가슴에 사무치는데 이선준에겐 그 이상일테니까 이젠 더는 못보겠으니 그만 두라고 말한다. 이선준은 뒤에서 김윤희를 껴안으며 진심을 담아 얘기한다. "용서 받고 싶었다. 아비의 빈 자리를 대신하러 이렇게 사내의 복색으로 장터를 헤매며 아픈 동생의 약값을 구하려 했던 시간들,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던 그 시간들마다 내가 머리숙여 사죄하고 싶었다. 그 시간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따뜻한 방안에서 책이나 읽고 있었던 내가 나 역시 용서가 안된다고 미안하다고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내가 누렸던 모든걸 되갚아주고 싶다고 그러니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갓으로 인해 이선준의 백허그가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했던 이 장면은 김윤희가 비로소 생각의 폭을 한단계 넓히며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게 된 의미가 큰 장면이었다. 이젠 초선의 처지를 제대로 헤아릴 줄도 알고 장의 하인수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라도 어미의 약값을 대야만 하는 임병춘의 어려운 처지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이선준은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사는 일이 지옥이나 다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존경하던 아버지 좌상과 등을 돌리더라도 죽을 힘을 다해서 금등지사를 찾아나서고 있다. 아마 이선준은 설사 아버지와 등을 돌리고 증오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마음을 준 벗들의 아비와 형을 빼앗아간 죄인의 아들로 사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선준은 드디어 윤참군을 찾게 되는데 가짜 홍벽서인 초선이 나타나서 윤참군을 죽이려 하고 이젠 이선준이 윤참군을 초선에게서 살리려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아무래도 이선준이 초선을 당할 수는 없고 위험에 처하는 순간 이선준을 뒤쫓아왔던 걸오가 나타나서 초선을 제압한다. 그리고는 윤참군으로부터 김승헌과 문영신을 인도하라고 명한 것은 좌상이었으나 그들을 살해하라고 명한 것은 병판이었으며 땅문서는 뒤늦게 눈치 챈 좌상이 윤참군의 입을 막기 위해서 던져 준 먹이였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 시각 여림도 돈으로 관원을 매수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걸오와 이선준은 성균관으로 돌아오는데 김윤희가 보이지 않자 안절부절하는 이선준에게 걸오는 나가서 찾지 않고 뭐하냐고 한다. 걸오는 병판이 진짜 배후였다는 사실 제일 먼저 김윤희에게 알려주고 싶을거라며 '너같은 놈을 죄인취급하며 일평생 증오하는건 아주 피곤했을테니까 널 위해서도 날 위해서도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비로소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그 때 여림이 뛰어들어와 김윤희가 종묘로 갔는데 하인수가 병조의 군사들을 데리고 뒤쫓는데 발각되면 위험하다고 알려준다. 걸오는 이선준과 종묘로 달려가 병조의 군사들을 보고 걸오는 이선준에게 김윤희를 다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관군들은 어떻게든 해볼테니 들어가서 김윤희를 구해내라고 얘기한다. 이선준이 종묘 안으로 들어가 김윤희를 발견하고는 꼭 끌어안는 그 순간에 홍벽서 복색을 하고 관군들을 유인하던 걸오가 칼에 맞고 쓰러진다. 드라마가 현재까지 밝게 진행되어 왔던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걸오가 죽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도 같은데 어떻게 살아날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잘금 4인방은 금등지사를 찾는 일에 서로의 힘을 보태고 협력해 나가면서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해지게 되었다. 걸오, 대물, 가랑, 여림 이 넷은 이제서야 비로소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아끼며 신뢰할 수 있게 된 명실공히 '잘금 4인방'이 된 것이다.



18강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걸오가 초선의 가면을 벗기는 장면이었다. 걸오가 가면을 벗기고 초선임을 확인하지만 초선은 도망을 치게 되는데 그런 초선을 바라보면서 걸오가 대수롭지 않은듯 혼잣말을 한다. "초선이가... 맞았군." 걸오는 애초부터 초선을 붙잡거나 해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걸오, "센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거 자주 하면 습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