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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 나쁜여자 & 구미호 김윤희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악역을 꼽으라면 그건 김윤희다. 자기 삶의 무게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돌아볼 줄 모르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김윤희는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기도 하고 악한으로 만들기도 한다. 특히 걸오에게는 '나쁜여자'요 선준에게는 '구미호'로서 둘을 장중에 넣고 쥐락펴락한다.

김윤희는 월출산 모꼬지를 갔다가 만났던 이선준의 속마음을 확인하고서는 대답을 듣고 가라고 했으나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는 바람에 여인임을 이선준에게 들키게 된다. 이미 김윤희에게 속마음을 모두 고백해버린 이선준은 김윤희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라 틈만 나면 그 대답을 듣고자 애를 쓰지만 김윤희는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이선준이 머무는 서원에 따라 간 김윤희는 이선준의 시종인 순돌이가 밖에서 문을 잠그는 바람에 한방에 단 둘이 남게 되자 이선준에게 불을 끄고 자자고 하지만 이선준은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며 불을 끄지 못한다. 이선준은 김윤희에게 아까 계곡에서 물에 빠지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중요한 말인듯 싶어서 잊기 전에 해두는게 좋을 거 같아서라는 구차한 변명을 하면서까지 물어본다. 그런데 구용하가 이선준에게 주었던 음란 서적을 뒤적이던 김윤희가 이선준을 노려보며 주로 이런 책을 읽는거냐고 묻는 바람에 산통이 깨진다. 이선준을 노려보는 김윤희는 흡사 바가지 긁는 마누라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선준은 그래도 장부의 몸이라며 이불을 김윤희에게 양보하고 맨바닥에 누웠는데 김윤희는 지난번 물 속에 살짝만 담갔다가 밤새 열감기를 앓았던 장부가 누구더라고 이기죽거리며 이불을 이선준에게 준다. 그리고는 요를 몸에 돌돌 말고 자면 된다며 이선준을 쳐다보고 환하게 웃는다.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여인을 어떤 사내가 싫어하겠나. 이 때 이선준은 진짜 이름이 김윤희라는 것과 그간 사내의 복색으로 살아 온 대강의 정황을 알게 된다.

다음 날 이선준은 김윤희에게 다칠 수도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라며 성균관을 그만 두라고 권유하나 김윤희는 여인이기 때문이냐며 거절한다. 성균관을 나간다 해도 여전히 사내의 복색으로 필사일을 한다고 운종가를 누벼야 할 테고 그것도 안되면 없는 집 살림에 부담을 덜기 위해 누구라도 상관없이 혼인을 하게 되니까 그렇게 애를 써가며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내일 같은 건 없으니 다시는 허락되지 않을 시간들인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악착같이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는 김윤희의 말에 이선준은 말문이 막힌다.

결국 이선준은 성균관으로 돌아와 황감제 준비를 하는 김윤희에게 성균관 유생으로 만든 장본인이니 누구도 모르게 성균관에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테니 황감제 준비는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선준의 속마음은 맘에 둔 여인을 사내들만 가득한 성균관에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김윤희가 무슨 자격으로 그러냐고 하자 이선준은 다치지 않길 바라고 지켜줄 의무가 있는데 무슨 자격이 더 필요하냐고 대답하지만 김윤희는 끝까지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지 않냐며 이 성균관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 유생이라는걸 보여주면 되겠냐고 한다.



김윤희는 황감제 장원이면 되겠냐고 하고 이선준은 황감제는 제술과 강경 모두 보는 시험이고 무엇보다 사부학당 시절부터 단 한번도 장원을 놓쳐본 적이 없는 자기를 이겨야 할텐데 포기하라고 한다. 그러나 김윤희는 그러니 내가 이기면 그 땐 더 말하기 없기라고 하고 이선준도 해 보자고 함으로써 둘은 김윤희가 성균관을 그만두느냐의 여부를 놓고 황감제에서 승부를 건다. 여자들의 말은 늘 이렇게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는데 도무지 말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걸오가 초선의 뒤를 쫓다가 아비인 대사헌이 보낸 군졸들에게 소환되어 집에서 묵게 되자 김윤희와 둘이서만 밤을 보내야 하는 이선준은 이불을 말아 금을 긋고는 김윤희에게 금 넘어오지 말라고 한다. 이선준은 넘어오라고 사정해도 안 넘어갈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김윤희에게 잠버릇이 어떤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모르는 모양이라고 말하는데 김윤희의 잠버릇이 어느 정도인가하면 온 방안을 헤집고 다니는 건 기본이요 입마저 헤벌리고 잔다.

어색해진 이선준은 하필 오늘같은 날 걸오사형이 자릴 비웠냐고 하자 김윤희는 걸오 사형이 없으니 방이 참 휑하다며 염장지르는 소릴 한다. 이선준은 이래서 내가 더는 성균관에 둘 수 없다는 얘기라고 하지만 김윤희는 내일 황감재에서 이선준을 아주아주 가볍게 제치고 장원을 할 테니 오늘이 마지막이 될 그 잔소리도 즐겁게 들어주겠고 딴소리를 한다. 결국 기가 막인 이선준은 '잡시다 자'라고 자리에 눕는다. 자리에 누운 이선준은 또 다시 월출산 계곡에서 김윤희가 하려고 했던 말을 듣고자 물어본다. '내가 뭐 꼭 궁금해서라기보단 아니 진실을 알고자 하는건 모든 선비의 마음 아니겠냐'는 구차한 변명까지 댔지만 김윤희는 자는 척하면서 대답을 회피한다.



그러나 황감제 결승에서 김윤희는 이선준에게 지게 된다. 존경각으로 가서 책을 뒤져보며 후회하고 있는 김윤희를 찾아 온 이선준이 그럴 시간이 있느냐고 하자 김윤희는 한번만 기회를 주면 안되겠냐며 이선준 앞으로 바싹 다가선다. 이렇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여인의 청을 거절할만한 사내가 과연 얼마나 될까. 황감제 결승에서 지고 풀 죽은 모습으로 나가는 김윤희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던 이선준은 결국 김윤희에게 성균관에 있어도 좋다는 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한다.

이선준은 살았다는 표정으로 돌아서는 김윤희를 불러 세워 나도 듣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이선준은 김윤희에게 월출산 계곡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정말 아무 기억이 안나는 건지 묻는데 김윤희는 뭘 말이냐고 회피하려 한다. 이선준은 '분명 내게 대답을 듣고 가라하지 않았냐'고 재차 묻지만 김윤희는 '글쎄 뭐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라며 짐짓 딴청을 피운다. 답답함이 극에 다다른 이선준은 "잘 생각해 보시오. 좀 성의껏"이라며 '성의껏'에 힘주어 말한다. '그걸 꼭 말로 해야지 알겠소', '말로 하지 않고 그걸 어찌 안단 말이오', '정말 모르겠소?', '이젠 정말 답답해 죽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실랑이는 김윤희가 이선준에게 입을 맞춤으로써 끝난다.

그런데 '꼭 말로 해도 모르는' 정말 답답한 건 바로 김윤희다. 한결같이 바라보고 말을 해도 걸오의 순정은 알아보지 못하니 말이다. 김윤희는 늘 자기를 바라보는 걸오에게 이선준을 향한 자기의 마음을 상담하기까지 한다. 모꼬지를 떠나면서도 자기만 바라보는 걸오를 눈치채지 못하고 구용하가 대신 '대물 웃는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천하의 걸오가 난생 처음으로 모꼬지를 따라나서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니 인상 좀 펴라'고 말을 해줘도 알아채지 못한다. 모꼬지를 가서는 걸오가 감자를 구워서 뜨거울까봐 입으로 불고 부채질을 해서 식혀줘도 '사형은 분명 좋은 남편이 되실 거라'는 애먼 소리를 한다.



걸오는 이선준과 하룻밤을 보내고 온 김윤희에게 '걱정하는 사람도 좀 생각하면서 행동하라'고 해도 김윤희는 몰라준다. 걸오가 모란각 밖에서 기다렸다가 김윤희에게 초선이와 거리를 두는게 좋겠다고 걱정해주지만 김윤희는 이선준과 밤을 새고 온 일로 아직도 화가 났느냐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너니까 걱정하는 거'라고 말을 해도 천하의 걸오가 김윤희의 짐보따리를 들어줘도 김윤희는 걸오의 속마음을 몰라준다. 걸오가 아무리 말로 행동으로 보여줘도 모르는 김윤희가 이선준에게 꼭 말로 해야지 알겠냐고 되묻는 것은 굉장히 이율배반적이다.

이처럼 김윤희는 걸오에게는 '나쁜여자'이지만 이선준에게는 적절한 '밀당'으로 이선준의 마음을 붙잡아두는 연애박사다. 김윤희는 이선준이 정혼하러 부용화의 집에 갈 때 나타나서 부용화와 파혼하게 만들었고 뒤쫓아 온 이선준으로부터 좋아한다는 고백을 들었다. 그리고 이선준이 묵고 있는 서원에 따라 갔던 김윤희는 거기서 이선준의 시종인 순돌이로부터 자기 때문에 이선준이 상사병으로 시름시름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랬으면서도 성균관으로 돌아 온 이선준에게 '이제 성균관으로 돌아왔으니 대과도 곧 볼테고 정혼한 그 처자와 혼인도 곧 하겠다'고 돌려 물으며 '그 날 정혼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일은 없다'는 이선준의 답을 받아낸다. 결국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은 다 받아내고는 이선준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해주지 않으면서 애를 태우고 꼭 말로 해야지 알겠냐고 답답하게 만들더니 종국에는 입맞춤까지 해버린다. 가히 연애박사로서의 대단한 포스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걸오와 이선준이 김윤희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을 벌이고 서로 자기 옆에 눕히려고 하자 김윤희는 자기가 잠자리를 결정하겠다며 두 남자를 아연 긴장시키고 서로가 선택을 받으려고 눈치싸움을 벌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정도면 거의 신의 경지라 불러야 될 듯하다. 그 때 구용하가 뛰어들어오며 "소리 저 소리 못 들었나? 허, 구미호일세 구미호"라며 중간 자릴 차지하고 누워버림으로써 사태는 무마되었다. "나 구용하야"라던 구용하가 김윤희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김윤희는 구미호다, 구미호. 두 사내의 마음을 홀려서 장중에 넣고 쥐락펴락하는 구미호.

그런데 이선준 이 녀석은 "손만 잡고 잘게"라고 말하고는 정말 손만 잡고 잘 천연기념물같은 녀석일세. 이불로 금 그어놓고는 절대로 안 넘어갔던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