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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엔터테인먼트

'1박2일' 안 보면 된다는 발상의 천박함

   
   
   
'1박2일'이 작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를 알 수는 없겠으나 지금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기기에는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은 편법이든 눈속임이든 어떻게든 문제를 봉합하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를 방치하는 상태에서 미봉책을 고집할 경우 만약에 어느 하나가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때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다.

지금 제작진들이 시청률이라는 당장의 결과물에 취해서 시청자들의 정당한 비판은 적당히 무시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그것이 정말로 위험한 징조일 것이다.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시청자들을 눈속임하려는 방송을 제작 방송하는 것도 모자라 시청자들의 정당한 비판들 마저도 시청자들의 잣대가 옳지 않다는 듯한 말들을 흘리는 그 오만함이 때가 되면 치명적인 독이 되어 되돌아갈 것이다.

'1박2일' 지리산 편이 왜 김종민 죽이기였는지를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 방송 서두에서 김종민은 '8개월째 묵언 수행중'이라고 했고 어떤 멤버는 '말이 없어서 불편할 지경'이라고까지 언급할 정도였다. 그동안 김종민에 대한 비판 의견들이 많았고 방송 태도가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김종민을 비판하지 않고 지켜봐 왔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 이유는 김종민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편집되었다고 생각했고 빨리 프로그램에 적응해 나가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방송은 그러한 기대를 완전히 배신해버렸고 이후부터는 김종민에 대해 어떤 비판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 되버렸다. 제작진들은 그렇게 과거와 단절하고 향후부터는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김종민이 무엇을 해도 비호감만 커지는 계기를 제공했을 뿐이었다.



멤버들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실수라면 이런 경우는 비판을 하기보다는 지켜봐주는게 맞다. 물론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거나 간과하기 어려운 중대한 실수인 경우는 예외여야 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에 참여할 의욕조차도 없으면서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고 고액의 출연료를 받아 챙겨가며 공중파 방송의 전파를 낭비하고 있다면 격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시청자들의 비판이 왜 '보수적인 잣대'라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시청자들은 그냥 제작진들의 방송을 무조건 지켜봐줘야만 보수적인 잣대가 아니라는 말인가? 놀고 먹듯 하는 특정인에게 함부로 방송제작비를 지불하고 있어 왔다면 이는 제작진들의 명백한 직무유기이기도 하다. 잘못은 온통 제작진들이 다 해놓고 이제 와서 시청자들의 탓으로 돌리려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인지 웃기는 일 아닌가?

더 웃기는 건 위에 언급한 시청자들의 모든 비판은 이미 제작진들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정했던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종민 '사태'라고까지 언급했고 '보면 짜증나고 안 보면'이라는 자막을 덧입히면서까지 김종민에 대해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며 프로그램의 메인 MC가 고개를 조아리기까지 했던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 자들이 망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시청자가 그만큼 우습게 보였기 때문일 거다.

"모든 시청자분들이 김씨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김씨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주겠다." 이것은 지리산 편에서 나왔던 제작진의 의견으로서 '1박2일' 제작진이 얼마나 안일하게 지금의 사태를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제작진들의 인식 수준이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니 계속해서 말 바꾸기와 편법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이젠 마땅히 할 말이 없으니 안 보면 된다는 터무니없는 말들을 하는 자들도 있다. 제작진들 중에서도 이런 천박한 인식을 하고 있는 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공중파 방송의 경우는 안 보면 된다는 말을 할 만큼의 상황이 아니다. 특히나 공영방송인 KBS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프로그램의 소비자로서 시청자는 왕이나 공영방송 KBS의 경우는 시청자가 주인이기도 하다. 시청자의 비판이 싫다면 제작진들이 공영방송에서 공중파를 이용할 게 아니라 시청자가 안 봐도 되는 곳으로 옮겨가는 게 맞는 것이지 시청자더러 안 보면 된다고 강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시청자들 중에서도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이 많은데 이게 얼마나 한심한 말인지 정말 몰라서 그러고들 다니는지 모르겠다. 프로그램 중에서 멤버들은 '당일치기를 편법으로 섬 가서 못 나오고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도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섬에서 피디치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시청자를 상대로 온갖 편법이 동원된 방송을 했음에도 이를 보고도 불쾌하지 않다는 반응은 이해하겠지만 방송 내용에 대해 비판하는 글들을 모두 찾아다니면서까지 온갖 욕설을 섞어 안 보면 된다는 한심한 댓글을 남기고 가는 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방송의 화려한 편집기술에 길들여져서 방송 제작자들에게 휘둘리는 것은 어차피 방송의 속성이고 역기능이므로 개개인인 시청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열성적으로 시청자로서 응당 할 말을 하는 의견들에까지 일일이 쫓아다니며 제작자들의 선동에 매몰되어 극구 그들을 비호할 만한 일인지 의문이다. 안 보면 된다는 말이 얼마나 한심한 말인지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공중파 방송을 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더 적절한지 인터넷에 수많은 글들 중에서 비판 의견을 찾아다니며 보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이 더 적절한지만 생각해봐도 명백하다. 또한 방송에서는 상호를 가리지만 홈페이지에서는 약도까지 상세히 올려놓는 것도 충분한 비유가 될 것이다.

이전 글들에서 나는 '1박2일'이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의 중요함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근자에 보이는 것처럼 시청자를 속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살리는 아이디어를 내야 할 것이다. '1박2일'의 편집에 잘 길들여진 시청자들만을 상대로 하는 편법 방송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러한 발상이 결국엔 프로그램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