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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제빵왕 김탁구' 구마준이 김탁구를 구하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29부는 예상대로 빠르게 전개되었다. 한승재의 덜미를 확실하게 낚아 챈 구일중은 한승재에게 검찰청 전화번호와 비행기 티켓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하는데 비행기 티켓을 선택한다면 무사히 국외로 나갈 수 있겠지만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러자 한승재는 추방하겠다는 뜻이냐며 오히려 역으로 구일중에게 거성과 김탁구 둘 중에서 선택하라고 맞선다.

그 시각 한승재의 명령을 받은 회장 비서실 남비서가 김탁구를 차에 태워서 한승재가 지시한 장소로 데려가고 있다. 남비서는 구일중 회장이 깨어났다는 기별을 받았는데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고 데려오라 했다며 김탁구를 속여 차에 태웠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로써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마지막회까지도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다.



김탁구야 어차피 살아나는게 필연일테지만 과연 누가 마지막으로 김탁구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예상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구일중이 이미 손을 써놨을 수도 있고, 조진구가 손을 써놨을수도 있고, 일정 기간 김탁구의 비서로 일하면서 동화된 남비서가 결정적인 순간에 변심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왠지 구마준이 김탁구를 구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구마준, 이 드라마에서 참 비극적이고 불행한 인물이다. 자기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구일중의 유전자가 아닌 한승재의 유전자를 이어 받았고, 겨우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그런 추잡한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렸고, 할머니의 죽음에 인정하기조차 싫은 친부모가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엄청난 비밀을 구마준은 14년 동안이나 가슴에 안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냈다.

구마준은 할머니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친부에 대한 수치스러움에 친부를 부정하고 구일중의 인정을 받고자 했으나 구일중은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그런 구일중이 어느 날 불쑥 나타난 김탁구에게는 단 한 번도 구마준에게 대해 준 적이 없었던 태도를 보인다. 구일중의 전혀 의외의 태도에 구마준은 김탁구가 아무런 이유 없이 무조건 미워졌고 어떻게든 김탁구를 쓰러뜨려버리고 싶어졌다.



29부 방송은 구마준이 14년 동안이나 남몰래 가두어 놓고 괴로워했던 묵은 감정이 온전히 해소되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한마디로 구마준을 위한 방송이었던 셈이다. 구마준은 한승재의 완력으로 서재 바닥에 넘어져 있는 구일중을 부축해서 방으로 옮기고 14년 전의 얘기를 한다. 그 때 조금만 더 기운이 있었어도, 조금만 더 상황판단이 빨랐어도 할머니는 어쩌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 때 할 수 있는 건 아버지의 서재 문을 두드리는 것 밖에 없었다고.

여기까지의 방송을 보면 구일중은 어느 순간부터는 구마준이 한승재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구마준이 구일중에게 '저 같은 게 태어나버려서 죄송합니다, 아버지'라고 말하자 구일중은 심정이 복잡해진다. 구일중은 구마준이 한승재의 핏줄이라는 심증은 있었으나 확증이 없었기에 차마 구마준을 내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들로서 인정하고 믿어주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구마준이 어릴 때부터 그 엄청난 비밀을 혼자서 간직하고 살아 왔고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외면하지 않고 곁에서 아버지라 부르며 용서를 빌고 있다. "내 두 아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승재에게 강조하는 것으로 보면 뒤늦게나마 구마준을 온전히 아들로 인정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구일중으로서는 이 기막힌 엄청난 사실이 두고 두고 회한으로 남을 것이다.



구마준이 계속해서 클럽을 전전하면서 회사일에도 소홀하다는 것을 알게 된 김탁구는 클럽으로 찾아 가 구마준을 팔봉제빵집으로 끌고 온다. 김탁구는 구마준에게 이렇게 못나게 구느니 차라리 좀 더 잘난 척하면서 좀 더 날 무시하면서 그렇게 살라고 한다.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못나게 구느냐는 김탁구의 말에 구마준은 모든 건 다 소용없는 껍데기일 뿐이라 절규하는데 이 말엔 구마준의 지난 14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탁구는 팔봉이 남긴 과제를 보여주며 팔봉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평생 동무하며 살라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구마준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통곡한다.

다음 날 아침 팔봉제빵집에서 잠이 깬 구마준은 간밤에 김탁구와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한다. 구마준은 엄마도 아버지도 신유경도 다 뺏기고 거성에서도 쫓겨났는데 어떻게 그렇게 계속 웃을 수 있냐고 묻는데 김탁구는 분하고 억울하고 가슴아프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조금 잘 됐다거나 조금 잘못됐다거나 해도 아무것도 끝나는 게 아니니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결국 다 지나가는 거니까 살아야 하니까 참는 거라고 한다. 김탁구의 이 말은 팔봉이 마지막 가던 때 김탁구에게 했던 '어차피 인생이란 견디는 것'이란 말과 다르지 않다.

구마준은 곤히 자고 있는 김탁구를 바라보면서 "백만 년을 살아도 난 너 같은 녀석 절대로 이해 못할 거야"라고 한다. 이 때 구마준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던 구마준을 떨쳐내고 팔봉의 유지를 이어 받으려는 빵쟁이 서태조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구마준은 그 길로 신제품을 개발할 예산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한승재를 찾아가는데 한승재의 방으로 들어서려던 구마준은 마침 한승재의 방에서 나오던 조진구와 마주치고는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한편 김탁구는 구자경으로부터 우리 쌀로 빵을 개발해보라는 기획안을 받아 들고 팔봉제빵집 식구들과 함께 우리쌀빵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미출로 인한 위약금을 요구하는 사장들을 설득하고 청산 공장 직원들에게 근무여건과 수당지급 개선을 약속하며 우리쌀빵을 생산해서 출하하기 시작한다. 판매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매출이 두 배 이상 뛰어오르고 청산 공장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이를 보고받은 한승재는 위기를 느끼고 제품개발실로 구마준을 찾아 가 신제품 개발을 독촉한다. 구마준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거 같다고 둘러대는데 한승재는 이사회까지 채 열흘도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달라고 한다. 그러자 구마준은 나도 명색이 제빵인이고 제빵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는데 아무 빵이나 만들어 낼 수는 없다고 한다. 사실 구마준은 이미 신제품을 개발했으나 그 빵은 한승재를 위해 만든 빵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구마준이 개발한 빵은 아마도 팔봉이 마지막으로 남긴 3차 경합을 위한 것으로서 김탁구와 선의의 경쟁을 하려는 것이라 짐작된다.

그 전에 한승재는 개발 팀장인 구마준이 개발실에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구마준을 찾아 와 아무리 내가 뒤에서 움직인다고 해도 김탁구를 이기려면 구마준이 신제품 개발은 주축이 되서 해달라고 한다. 구마준이 잘 되기만 바랄 뿐이라는 한승재의 말에 구마준은 '내가 아저씨한테 뭐고 아저씨가 나한테 뭔데 잘 되기만 바라느냐'고 한다. 그리고는 '난 구마준이고 거성식품 구일중 회장의 단 하나뿐인 아들이니 착각하지 말라'며 40년 지기였던 아버지를 한순간에 배신한 사람은 나한테도 배신자'라고 쏘아붙인다. 아비를 무너뜨리기 위해 아비의 목을 조이고 신유경으로 하여금 어미의 목을 조이는 구마준의 비극적인 선택이다.



이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구마준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위에 언급한 '껍데기'이고, 구마준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은 죽고 이 세상에 없는 할머니 홍여사와 스승 팔봉의 영정 사진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장면이다. 할머니 홍여사는 끝내 구마준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스승 팔봉은 유언을 통해 김탁구를 통해 구마준을 따뜻하게 끌어 안았다.

구마준이 홍여사와 팔봉의 영정사진을 죄책감이나 수치심 없이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김탁구와 평생의 동무이자 경쟁자로서 지내는 것이다. 이제 김탁구를 카운터파트로 인정한 것으로 보이는 구마준은 김탁구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진구가 한승재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구마준이 김탁구를 위험에서 구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구마준이 김탁구에게 빚졌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짐을 덜고 비극을 끝내는 길이고 한승재가 결자해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