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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제빵왕 김탁구' 무의미한 해피엔딩 논쟁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이제 겨우 2회만 남겨 놓은 상황임에도 내용의 전개는 이제서야 겨우 태풍의 눈에 접근해 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의 결말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결말을 예상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 보면 새드엔딩이냐 해피엔딩이냐의 차이는 그렇다 쳐도 해피엔딩을 예상하는 사람들 간에도 약간의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김탁구가 거성의 경영자가 되어야만 해피엔딩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거성의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팔봉제빵집으로 돌아가는 게 해피엔딩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드라마의 결말이 어떤 내용일지는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결말을 둘러싸고 벌이는 논쟁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드라마의 결말이 서둘러 갈등을 봉합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로가 화해하고 상생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만 아니라면 그 결말이 어떤 것이든 다 해피엔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점입가경의 극적인 상황을 연출해 놓고는 위와 같은 뻔한 결말을 내는 것은 시퍼렇게 날 선 칼을 빼 들었다고 해 놓고는 그것이 장난감 칼이었다고 눙치는 것과 똑같이 가치가 없는 것이다.



워낙 판을 키워 놓았기에 이젠 어떤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각각의 시청자들이 원하던 결말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므로 아마도 다대수의 시청자들이 예상하는 결과물을 내놓지 않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설령 그 결말이 각각의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던 것이라 하더라도 그 결말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따져 봐야지 단순히 해피엔딩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적으로만 받아 들일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해피엔딩 논쟁에 의미가 없다고 보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작가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갈등 해결의 마지막 순간에 꺼내 들었던 해법이 결자해지(結者解之)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마지막 결말 또한 이 결자해지의 연장선상에서 해결될 것이라 예상한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는 이미 결자해지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던 경우가 몇 번 있었고, 앞으로 그렇게 해결하려 한다는 장치들이 몇 개 보인다.

봉빵과 관련해서 불만을 품고 팔봉과 갈라 섰던 춘배가 팔봉에게 다시 돌아와서 결자해지하고 갔고, 제빵실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 사건과 밀가루에 소다를 섞었던 사건의 범인인 고재복이 결자해지하고 있고, 신유경으로 하여금 아비를 감방에 보내고 가출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신씨가 신유경을 찾아 와 결자해지하고 갔고, 김미순을 납치하려다 우발적인 사고를 당하게 했던 조진구는 김미순과 김탁구 모자가 상봉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결자해지했다.



그런데 이러한 결자해지 과정에는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한 가지 사실이 존재한다는 게 꽤 흥미롭다. 그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김탁구가 이 과정에서 모두 매개체(媒介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서로가 충돌하는 거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처럼 전속력으로 마주 보고 달렸었는데 김탁구가 끼어들면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 싶게 이미 서로가 화해했다. 아마도 김탁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은 빵쟁이보다는 중매쟁이나 중재인(仲裁人) 같은 직종이 더 어울릴 법하다.

신유경이 아비인 신씨와의 감정을 정리하고 구마준과의 행복을 꿈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음을 깨달았으면서도 구마준이 원하는 끝을 보겠다고 결심한 거나, 구일중이 구자경에게 어른들의 일은 알아서도 안되니까 뒤돌아보지 말고 동생 탁구를 잘 보살펴주라고 하고 결국 자기 손으로 모든 걸 정리할 수 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끈질기게 누워 있었던 것은 결자해지를 통한 해결을 염두에 둔 장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뜻하지 않게 구마준이 끼어들게 되는데 이는 아직도 결자해지할 생각을 못하고 있는 서인숙과 한승재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려는 것이라 추정된다. 악 대 악의 충돌에 한 쪽 악의 씨인 구마준이 끼어들게 되었고 악의 본색을 감추지 않기로 결심한 신유경까지 가세한 형국이 되었다. 이제 각각의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할 지 불투명한데 여기에 김탁구가 매개체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난망한 일이고 서로간에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할 것이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면 김탁구는 거성을 경영하는 회장실이 아니라 제빵실로 돌아가는 게 맞을 것 같다. 해피엔딩이라고 하려면 그 결말이 시청자를 위한 행복이어서는 곤란하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행복한 것이어야 한다. 빵쟁이인 김탁구가 행복해지는 길은 아무래도 회장실보다는 역시 제빵실에서 빵을 만드는 것일 거다.

김탁구는 스승인 팔봉의 유지와 뼈속부터 빵쟁이인 구일중이 30년 넘는 세월동안 지켜 온 자존심과 자부심인 빵의 맛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거성의 경영자가 아닌 제빵실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제빵실로 돌아가는 것이 거성의 경영자가 되는 것보다 덜 행복하다는 발상은 꽤나 천박해 보인다. 비록 몇백 원짜리 빵을 만들지만 그 빵의 맛을 내기 위해서 평생을 바쳐 온 장인, 빵이 곧 인생이고 신념이고 자부심이기에 인생을 걸 만큼 가치있는 일이라고 믿는 빵쟁이로 사는 게 김탁구가 가장 행복해지는 길이다.

드라마를 보면 김탁구는 구일중의 대리인 노릇을 시작하면서 구자경과 김미순 그리고 양미순에게 구일중이 깨어날 때까지만 거성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일단 구일중이 깨어난다면 김탁구가 제빵실로 돌아가는 것은 확실한데 구일중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불명확하다. 만약에 구일중이 변을 당해 불귀의 혼이 된다 해도 김탁구는 빵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거성 고유의 빵맛을 지켜내겠다는 이유를 들어 제빵실로 돌아가려고 할 것 같다. 오필승이가 자갈치 시장으로 되돌아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