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生의 한가운데

성추행당하는 딸을 괜찮다며 달래던 엄마

   
   
   
지금으로부터 약 15년여 전의 어느 여름날에 겪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탈 수 있는 기착지로 가기 위해 계룡산 자락 어느 동네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알 수 없는데다가 육체적으로 워낙 지쳐있었기에 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계속해서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왜 아이를 달래지 않고 계속해서 울리는가 싶어서 힐끗 뒤돌아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어떤 여인이 서 있었다. 등에는 갓난아이를 업었고, 한쪽 손에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쪽 손엔 장바구니를 든 채 서 있는 것으로 보면 그 여인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여인의 모습은 그 당시만 해도 고단한 서민들의 익숙한 풍경이었기에 별로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뒤돌아 앉았는데 어린 여자아이가 지속적으로 칭얼대는 것이었다. 워낙 피곤한 상태였던 나는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홈페이지 캡쳐)

한데 조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영감 하나가 그 여자아이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그 영감의 행동이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 영감은 여자아이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여자아이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아이가 지속적으로 칭얼댔던 이유는 바로 그 영감이 더듬는 손길이 싫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여자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그 여인은 아이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며 달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여인은 그 영감의 행위가 불쾌하지만 버스가 빨리 와서 그 자리를 벗어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 영감은 여자아이와 그 여인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뻐서 그러는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가관이었다. 여자아이가 이쁘면 그냥 이쁜 것이지 꼭 어딜 쓰다듬어야 이뻐하는 것이라니, 게다가 치마를 들추고 그 안으로 손을 넣어서 쓰다듬는 짓거리를 하고 있으면서도 여자아이가 이뻐서 그러는 것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그 영감은 어린 여자아이의 엉덩이를 만지며 추잡한 음심(淫心)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 영감의 행위는 명백히 아동 성추행 현행범에 해당한다. 백주대낮에 그것도 대로 한복판에서 길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여자아이를 성추행하고 있었던 그 영감의 행위는 지금 생각해도 과감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


(아동안전 지킴이집 로고)

여자아이가 계속 칭얼댔기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뒤돌아보기 시작했고 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그 영감은 그제서야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했는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때마침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해서 나는 그 자리를 떴는데 그 사태가 해결되었다고 판단하기는 했지만 그 여자아이가 안전하게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던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찜찜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여자아이의 엄마로 보이던 그 여인은 아마도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가치와 딸을 지켜야 한다는 가치가 충돌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일단 버스가 와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면 된다는 약간은 절충적인 태도를 취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이라면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가치는 당연히 후순위로 밀어내고 그 영감의 멱살을 잡든 따귀를 후려치든 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알려서 그 상황을 모면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성추행이라는 것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요즘처럼 높지 않았던 때였고 그 곳이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그 여인의 태도가 부적절했었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그렇게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이가 있다면 비난받아야 할 것이라고 보는데 물론 요즘에야 그렇게 대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성폭력에 대한 통계를 보면 성폭력 피해자 중에 30%가 13세 미만의 어린이고 20% 정도가 13~19세의 미성년자라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절반이 아직 신체 발육이 덜 된 미성년자들이라는 얘기다. 성에 대한 관념조차 아직 정립되기 전의 어린아이를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이 훨씬 더 강력해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홈페이지 캡쳐)

성추행 특히 아동 성추행의 경우는 낯선 이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경우보다 면식범(面識犯)인 경우가 훨씬 높다고 하는데 통계에 의하면 면식범인 경우가 70%에 이른다고 할 정도다. 또한 아동 성추행범의 경우는 흉악하게 생긴 흉악범의 소행이라기 보다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평범하게 생긴 자들에 의해서 저질러진다고 한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박두만(송강호)이 살인현장을 들여다볼 때 한 여자아이가 나타나서 어제도 누가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박두만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어보자 여자아이가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고 대답한다. 이 장면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가장 의미가 큰 장면이었는데 유영철과 강호순이 검거되고 난 지금에도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해서 선입견을 갖는 경우는 많은 것 같다. 비록 거지라도 일단 잘 생겨야 '꽃거지'라 불리며 대접받는다는 기사도 보일 정도니 말이다.

어린 여자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자기 아이의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생각보다는 이 정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까다로운 기준을 세워놓지 않는다면 미리 막을 수도 있었던 화가 현실로 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자녀의 안전을 단순히 사회적 안전망에만 기대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성폭력 범죄가 잦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또한 많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 지금에 다소 오래된 에피소드를 끄집어내 보는 이유다.


덧 1) 마땅히 발행할만한 카테고리를 찾을 수 없기에 일상다반사 카테고리로 발행합니다. 일상을 끄집어낸 것이기도 하고 이 카테고리에서 전에 유사한 주제의 글을 읽었던 적도 있었던 같기에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다음 관계자가 혹 보게 된다면 다음의 기준에 맞는 카테고리로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덧 2) 주로 TV 연예 부문의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 글을 추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