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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정치

노회찬 비난 좀 심하지 않나?

지방선거가 끝나자 한나라당은 박근혜를 원망하고 민주당과 야당들은 노회찬을 비난하고 있다. 이 원망과 비난은 모두 'IF'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대단히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설명할 수 없고 만약이라는 가정이 성립되는 상황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현재 희망하는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 'IF'를 사용해 언급하자면 만약 선거결과가 반대로 나왔다면 지금 박근혜와 노회찬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예상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나라당은 워낙 치명타를 맞은 상태라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존재하고 박근혜의 위상을 축소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이 세종시 문제 등에서 대립각을 세워왔던 박근혜에 대한 비난이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고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으로서는 박근혜의 역할이 필요하므로 박근혜에 대한 비난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 같고 오히려 원망이나 안타까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박근혜가 이번 선거에서 지원에 나섰다고 하더라도 이기기는 결코 어려웠을 정도로 정부 여당의 국정 운영에 환멸을 가진 국민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향후에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간다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도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한명숙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지 못한 이유가 노회찬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고 비난의 강도도 심한 것 같다. 물론 서울시장을 한나라당이 가져갔기 때문에 현 정부 여당을 심판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에 0.6%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명숙이 서울시장이 되지 못한 것은 노회찬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오히려 0.6%의 민심을 읽어내지 못한 민주당과 한명숙의 책임이 더 크다.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민주당은 반드시 서울시장을 찾아야겠다는 치열함과 절박함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서울시장 후보 선정과정이 이를 대표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0.6%의 민심을 읽어내고 야권단일화를 위해 당력을 모았던 민노당의 치열함과 절박함이 민주당에게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노회찬과의 후보단일화를 추진했어야 했다. 물론 처음부터 노회찬은 민주당과의 연대는 불가하다고 못을 박았지만 그래도 서울시장을 가져가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다면 노회찬을 끌어 안았어야 했는데 그런 노력은 하지도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가정을 전제로 노회찬을 비난하며 궁지로 몰아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의 승리자라고 착오하는 모양인데 이번 선거의 승리는 현 정부 여당을 심판하겠다는 국민의 열망을 야권연대로 발전시킨 범 야권의 승리이지 민주당만의 승리는 아니다. 0.6%의 민심을 읽어내지 못한 민주당이 이번 선거의 결과에 나타난 민심을 제대로 읽어낼거라 기대하기는 난망하지만 지금처럼 기고만장하는듯한 현상이 계속된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어려워질 것이다.

노회찬에 대한 비난글을 몇 개 읽다보니 고대출신, 조선일보 90주년 기념식 참석 등을 끄집어내서 싸잡아 비난하고 있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노회찬이 현 대통령과 동문이라는 이유로 현 정부 여당의 정책에 어떤 식의 동의를 했다든가 언론사 기념식에 참석한 의도가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에 따라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만약 여기에 어떤 비난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선거의 결과와 관련해서 싸잡아 비난할 대상은 아니다. "노회찬은 '삼고초려'라는 말을 모른다"는 문장이 사용된 어떤 블로그의 글도 보았던 것 같은데 삼고초려라는 말을 모르는 건 노회찬이 아니라 그 블로거로 보인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후보단일화를 추진해야 했던 것은 한명숙이지 노회찬이 아니다.


(노회찬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무단도용 ; 게재를 원하지 않을시 삭제할 예정임)

노회찬도 말을 아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언론 보도를 보면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힘이 더 있는 쪽의 책임이 크지 않겠나"라고 밝혔다고 하는데 나름대로의 계산에 의해서 할 말을 한 것이겠지만 시점과 표현이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 지지자들은 대부분 '이번 선거만큼은 미안하지만 저 쪽(한명숙 쪽) 찍겠다'고 내놓고 얘기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으로 본다면 "한 후보 쪽도 단일화를 위해 협상하자는 제안이 일체 없었다"고 할 게 아니라 차라리 노회찬이 먼저 한명숙에게 손을 내밀었어야 했을 상황이었던 것 같다.

노회찬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막판까지 완주한 것을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 정부 여당 심판이라는 서울시민들의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노회찬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진보신당도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0.6%의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방증이고 이것이 두고두고 진보신당을 옭아매는 족쇄가 될 수도 있겠다.

노회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비난은 수용해야겠지만 그 정도를 넘어 막다른 곳으로 몰아 넣으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한나라당과 '잠재 대선주자군'으로 꼽히는 오세훈에게 기회를 줄 뿐이다. 이런 냄새를 맡는 것은 역시 조선일보가 발군인 것 같다. "한나라당 소속 '잠재 대선주자군'으로 꼽히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재선(再選)을 허락하면서 향후 정치 활로를 넓혀줬다"고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