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정치

한나라당의 희한한 전(前)정권심판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10일 당회의에서 '전(前)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이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이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자 이에 맞서 거론한 것이다.

한나라당 이 사람들 뇌구조엔 개념과 원칙이란 건 아예 없는 모양이다. 일전엔 조전혁 의원이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소속의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며 아예 기본원칙마저 무시하더니 조전혁 의원에게 부과된 이행강제금을 모금을 통해 납부하겠다고 했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받아 비웃음을 샀다.

더 재미있는 건 진수희 의원이다. 진 의원에 따르면 다수의 의원들이 릴레이 방식으로 명단 공개에 동참하기로 했는데 명단을 공개했다가 만약 법원에서 어떤 조치가 있으면 내리고, 다른 의원이 바통을 이어받아 명단을 공개했다가 내리는 식으로 하겠다고 했단다. 이게 도대체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의 언행이 맞는지 할 말을 잃게 한다.

이렇게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했거나 동참 의사를 밝힌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30여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기본원칙이란게 있는지 의문이다. 내가 하면 합법, 내가 아닌 남이 하면 불법, 내가 하는 게 불법이라면 법을 바꿔버리면 되고, 기본원칙 따위는 언제든지 무시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식으로 보이니 말이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들고 나온 전(前) 정권 심판론은 지난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내세웠어야 할 표어다. 전(前) 정권에 대한 심판은 지난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국민들이 현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 주었던 것은 전(前)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前) 정권 심판론'이 말이 된다고 한다면 '전전(前前) 정권 심판론' 등 계속 과거로 거슬러 올라 가야 되는데 그럼 정말로 심판받아야 할 대상은 여전히 한나라당이 될 것이다.

'전(前) 정권이 국민들이 고통을 겪게 하고 경제를 어렵게 만든 무능한 정부였다'는 현 정권의 주장을 국민들이 받아들였다면 현 정권은 그것을 제대로 밝혀내고 바로잡으려고 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 정권과 한나라당은 오히려 졸속적인 한미 쇠고기 협정을 체결하고, 안 한다던 대운하는 슬그머니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둔갑해서 강바닥 헤집어대느라 여념이 없고, 세종시는 합의되어 있는 원안을 뒤집고 수정안을 들이미는 등 하는 일마다 말을 바꾸어가며 온 나라를 분열과 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 / 조선닷컴 이미지 인용)

전(前) 정권에 공과(功過)는 분명히 존재할 것인데 현 정권과 한나라당이 맨날 허튼 짓만 하고 있으니 전(前) 정권의 과(過)는 없고 공(功)만 부각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잘못이 드러나면 내세우는 논리 중에 하나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것인데 그 주장은 똥 묻은 개에게나 통하는 말이지 양쪽을 다 주시하고 있는 다대수의 국민들에게까지 통할 말은 아니다. 똥이든 겨든 부정한 것이라면 모두 밝혀내서 바로잡는게 올바른 것이고 발전해나가는 과정이다.

정 대표의 말 중엔 뭐 맞는 말도 있다. 민주당이 "지난 정부의 실정에 책임이 있는 고위 인사들을 주요 후보로 다시 내세우는 것은 국민들을 무시하는 오만스러운 태도"이고 "민주당은 이번 선거가 과거 경력을 세탁하는 기회로 착각하지 말라"는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지난 정부의 실정이 무엇인지 거기에 책임 있는 고위 인사는 누구인지를 밝혀내는게 먼저다.

한편 "지난 정부는 국민들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었던 정부였다"고 하는데 국민들에게 갈등을 조장하고 편가르기를 강요하며 분열시켜 온 나라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은 바로 현 정부다. 과거 어느 정부가 이보다 더 심했을까 싶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후 좌우로 분열되어 싸우던 혼란했던 때가 아마 지금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조전혁 의원이 법원의 결정마저 무시하면서까지 전교조 명단 공개를 강행한 것도 바로 갈등과 분열을 부추겨 편가르기를 시도하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김문수 한나라당 경기지사 후보는 "어떤 이들이 한나라당을 심판하고자 하는데, 누가 누구를 심판하나 어이가 없다"며 "10년간 그렇게 해먹은 사람들이 2년 밖에 안 된 사람들을 보고,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것인가"라고 했다고 하는데 참 할 말이 없다. 10년간 해먹은 사람들은 2년 밖에 못해먹은 사람들을 심판하면 안 되고, 2년 밖에 못해먹은 사람들이 10년을 꽉 채워야 심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따지면 한나라당이 해먹은 건 대체 몇 년이나 되는지 계산이 안 되는가?

한나라당 이 사람들 도대체 심판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한나라당을 심판하는 건 민주당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민주당을 심판하는 건 한나라당이 아니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심판하는 건 국민들이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민들의 심판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국민들의 표를 얻어야 행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째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듯이 말하고 행동하는지 기막힌 일이다.

정몽준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는 미래를 향한 선택이 되야 한다. 결코 과거의 인물들이 새로운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장이 돼선 안된다"고 했다. 이 말을 써 준 참모가 누군지는 몰라도 선거의 정의로 써도 될만한 대단한 표현이다. 그런데 국민들이 정치꾼들의 편가르기와 흑색선전에 현혹되지 않고 오로지 저 표현에 충실해서 선택한다면 한나라당에서는 과연 몇 명이나 살아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