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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금메달 박탈당했던 김연아, 여신되어 나타나네

'김연아가 1등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곧이어 김연아의 금메달을 박탈한다는 소식이다. 김연아가 2등을 한 선수와의 점수차도 상당히 적은데 금메달을 박탈한다는 이유가 참 어이없다. 김연아가 경기 후 말을 잘못했는데 오셔 코치와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란다.'

참 뜬금없는 얘기지만 지난 24일 밤에 이런 황당한 꿈을 꾸었다. 밤새 이런 말도 안되는 흉몽을 꾸느라 나는 선잠을 잤다.

난 피겨 스케이팅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다. 그러니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봐도 별로 재미를 모르고 그래서 피겨 스케이팅 방송을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동계 올림픽을 일일이 챙겨보거나 김연아의 열렬한 팬이라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주기를 애타게 응원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이번 대회에서 누가 금메달을 땄는지 현재 한국 순위가 몇 등인지 정도만 인터넷으로 챙겨 볼 정도로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도 황당하다.

물론 나도 김연아와 같은 한국인인데 이왕이면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기를 바랬던 것은 사실이고, 김연아의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데는 아직 하루가 남았기에 봄날 개꿈이겠거니 혼자서 웃어 넘겼다. 그런데 한국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1위로 골인하고도 실격을 당해 금메달을 놓쳤다는 뉴스를 접했고 그 실격사유가 꿈속에서 만큼이나 어이 없었다. 결국 그 꿈이 이 소식과 관련있는 것이었나 싶었고,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실격을 당한게 아쉽기는 했지만 김연아가 금메달을 박탈당하는 꿈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했고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으며 25일밤은 아무 생각없이 잤다.


( cnn 캡쳐)

어제(김연아가 경기하는 날)는 생방송으로 김연아의 경기를 보지는 못했다. 이미 다 결정된 후에 시상식이 진행되는 때에야 방송을 볼 수 있었고,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에 방송된 김연아의 경기 장면이 내가 처음으로 본 김연아가 금메달을 확정지은 경기 모습이었다. 아무런 긴장감도 새로울 것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경기를 마치고 눈물 흘리는 김연아를 보고 같이 눈물 흘렸고 역대 최고점을 받는데에서는 같이 환호했다.

나는 워낙 좋아하는 운동인 축구 외에는 한국인이 치르는 중요한 경기를 날방송으로 지켜보지 못하는 편이다. 야구의 경우도 꽤 좋아하지만 경기가 팽팽하게 진행되는 경우라면 우리 팀이 공격하는 이닝만 시청하고 수비할 때는 채널을 돌려 다른 방송을 보기를 반복한다. 너무 조마조마해서 차라리 안 보는게 낫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에 김연아의 경우처럼 다대수의 사람들이 큰 기대를 걸고 금메달을 당연시하는 경우에는 혹시라도 해당 선수가 그 압박감에 눌려 실수라도 할까봐 겁나기도 한다. 괜히 내가 시청해서 그 선수가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할까.

시상식 중계는 시종여일 새로운 여왕, 새로운 여신을 세심하게 배려했던 것 같다. 마치 시청하는 나까지도 새롭게 탄생한 신화속의 여신을 알현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또한 곽민정 선수를 두 번이나 단독 샷으로 잡기도 하고 관중석의 태극기를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세 메달리스트들의 옆으로 배치하는 등 여왕의 나라에 대해서도 배려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 중계진들이 곽민정 선수가 단독 풀샷으로 화면에 잡혀도 이를 캐치하지 못했고 두 번째에야 인식했다는 점이 옥의 티였다.


(ESPN 캡쳐)

피겨가 왜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는지 실감할 정도로 김연아의 금메달에 대한 반응은 정말로 뜨겁다. NYTimes, ESPN, CNN 등등 어느 사이트엘 들어가도 김연아가 자랑스럽게 메인에 걸려 있으니 내가 메달을 딴 것도 아닌데 단지 김연아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김연아의 매력은 무엇일까? 빼어난 외모에 뛰어난 실력까지 겸비했으며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말솜씨면 말솜씨 어느 것 하나 부족한게 없다. 그러면서도 늘 겸손함을 잃지 않으며, 자선 아이스쇼를 벌여 올린 수익금을 전액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거나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교복과 장학금을 선뜻 쾌척하는 등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씨까지 지녔다. 스타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다 갖추었으며 도무지 안티가 될 여지가 없다. 피겨 스케이팅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조차도 김연아의 경기를 보고 팬이 되게 만드는 그게 바로 김연아의 매력이 아닐까?

한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연아의 금메달을 당연시하고 있는 상태였으니 김연아로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한다는 부담감이 엄청났을 것이다. 경기를 앞두고 안도 미키는 '그동안 역대 올림픽에서 당시 세계 랭킹 1위가 금메달을 차지한 적이 거의 없다'는 올림픽 징크스를 들먹이며 일본 언론도 가세해서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며 김연아 흔들기에 나서며 김연아의 부담감을 부추겼다.


(FOX sports 캡쳐)

그럼에도 김연아는 침착함과 담대함 그리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이런 외부적인 요인들에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쇼트 경기때에는 김연아에 석연찮은 감점 판정을 몇차례 줘 편파판정 논란을 일으켰던 마리암 심판이 앉아 있었고, 아사다가 상당히 우수한 연기로 높은 점수를 받아 경기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으며 이를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김연아가 이에 동요하지 않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무결점에 가까운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이번 올림픽에서 챔피언이 되더라도 꼭 클린프로그램을 하면서 우승하고 싶었다. 시니어 데뷔 후 처음으로 쇼트와 프리 모두 클린 프로그램을 했다. 그것을 올림픽에서 해냈다는 게 기쁘다. 많은 분이 올림픽 사상 가장 좋은 연기였다고 해주는데 나도 후회없고 좋았다."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김연아는 이런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김연아의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을 때 김연아는 클린 경기로 올림픽 챔피언이 되고 싶어했다고 한다. 김연아가 왜 여왕, 여신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한 단면이 아닐까 한다. 압도적인 실력과 정신력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게 스스로를 만들어낸 'untouchable Kim Yu-na'다.


(NYTimes 캡쳐)

다시 꿈 얘기로 돌아가 보자. 위의 NYTimes 캡쳐 이미지에서 1번과 2번은 김연아의 사진이고 그 후부터는 순위별로 한 번호당 한 명의 사진이 배치되었는데 5번이 미라이 나가수(Mirai Nagasu)다. 미라이 나가수는 미국을 대표해서 참가한 선수로서 지난달 25일 끝난 2010년 US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부문에서 레이첼 플랫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는데 당시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연아를 날려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선수다. 이번 대회에서는 4위를 했다.

나가수 얘기를 왜 하냐면 이번 대회 피겨 여자 싱글에서 3위는 캐나다 4위는 미국인데 공교롭게도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도 캐나다가 3위 미국이 4위였는데 한국팀이 석연찮은 실격을 당해 캐나다가 은메달, 미국이 동메달을 차지했다. 나가수의 사진을 클릭해서 4위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꿈이 오버랩되면서 섬뜩했다. 나가수는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사실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내가 꾼 꿈은 분명 개꿈일 것인데 꿈 해몽하는 사람의 해몽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꿈 속에서 금메달을 박탈당했던 김연아가 현실에서는 여왕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났고 그 여왕의 대관식을 지켜볼 수 있었던 참 행복한 하루였다. 새롭게 탄생한 신화의 여신이 대한국인 김연아라는게 자랑스럽고 그런 여신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게 행복했던 하루였다. 김연아의 경기장면을 계속해서 재방송으로 틀어도 기분 좋아지는 하루였다. 누가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더라도 누가 발을 밟더라도 다 이해해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고 여유로워지는 하루였다.

The coronation is complete. Long live the qu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