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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SPORTS

김연아와 박태환 그리고 폭탄발언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는 김연아가 지난 6일 도쿄 요요기 제1체육관에서 열린 2009-2010 국제빙상연맹(ISU)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갈라쇼를 마치고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 자리에서 했던 발언이 화제에 올랐다. 일부 언론에서 기사화했는데 기자들은 이를 '폭탄발언'이라 이름 붙였다.

국민 남동생이라 불리는 박태환은 지난 7월 로마에서 열린 2009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남자 자유형 400m에 이어 200m에서도 결선 진출에 실패하고 나서 인터뷰를 했다. 이 당시에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폭탄 발언'이라 이름 붙여 기사화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김연아의 경우와 박태환의 경우는 같은 폭탄이긴 하지만 파장은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번 김연아의 발언은 폭탄이기는 한데 기사를 보도한 기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일부만 터져버린 불발탄으로 보인다. 기사를 내면서 기자들은 내심 트래픽 폭탄이라도 기대했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폭탄발언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했다고 기자들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스포츠 스타의 일거수 일투족이 경우에 따라서는 폭탄이 되어야 할 정도인 한국의 현실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지금까지 방송과 언론은 왜 피겨에 대한 한국 관중의 응원 방식에 대해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는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한국 관중의 열정적인 응원이라는 식으로 오히려 부추기는 보도를 하지는 않았던가. 경기하는 선수가 이를 참다못해 어렵게 입을 열 때까지 수수방관하던 방송 언론 기자들이 그 선수를 방패막이로 삼아 한국의 응원문화를 문제 삼고 나서는건 대단히 기회주의적인 행태다. 그들은 한국 관중의 응원문화를 문제 삼기 보다는 그들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반성해보는게 더 나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힘들어 경기를 포기할 생각까지 할 정도로 경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면 거기에 상당 부분의 책임을 느껴야 할 장본인들은 바로 스포츠 전문 취재 기자들이다. 그런데 피겨를 관람하는 관중들은 앞으로 응원하는 방식을 변경해나가겠지만 문제를 알면서도 침묵했던 기자들은 앞으로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스포츠 전문 취재 기자들이 김연아의 발언에 슬그머니 편승해서 응원문화를 문제 삼으려 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하고 비겁한 일이라 본다.



김연아가 이번에 끝난 대회에서 역전 우승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발언을 했었다면 아마도 말 그대로 폭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쯤은 김연아 한국 입국 금지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우승이라도 한다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 '김연아짱'으로 돌아서겠지만 말이다.

물론 김연아의 이번 발언은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 분수령이 바로 올림픽이 될 것이다. 김연아가 여기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면 어마어마한 후폭풍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 터지지 못한 폭탄들은 올림픽을 예의주시하면서 헐뜯고 물고 늘어질 꼬뚜리만 찾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박태환은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가 뭔가 말할 기회를 만들려고 했다"고 했을까. 좋은 성적을 내고 하는 말은 괜찮고 그 반대라면 옳은 말을 해도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굉장히 이상하게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진실이고 정의다. 왜 '옳지 않은 것'이 결과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인지 이해는 안되지만 그게 현실이다.

김연아나 박태환은 출전만 하면 당연히 우승이 결정되는게 아니다. 언제든 실수할 수도 있고 어떤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생겨서 메달을 못 딸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연아를 아낀다면 메달의 색깔로만 평가하며 부담을 줄게 아니라 김연아의 연기를 평가하고 더 나은 연기를 할 수 있게 응원해 주는게 맞다.

사람들은 유명세를 치르는 사람이 누군가의 공격을 받으면 그를 지키려는 수호자가 되려고 하든가 또는 유명세를 치르는 누군가를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든 어떻게든 깎아 내리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 정도가 좀 심하고 그것이 늘 성적지상주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결과만 좋다면, 인기만 좋다면 누구도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상한 사회현상의 원인이 여기에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