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엔터테인먼트

'지붕 뚫고 하이킥' 조금은 불편한 시선

12월 4일 방송된 '하이킥'은 시청하기가 꽤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볼 때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오길 바랄 수는 없는 것이고, 이 날의 얘기를 앞으로 어떻게 정리해 나갈 생각인지 모르니 대놓고 비판을 하기도 껄끄럽다. 그렇지만 이 날의 방송에 등장한 보석과 세경의 관계 설정은 뭔가 헛발질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보석이 간단한 날짜 세기도 못한다는 설정은 시트콤이라는 한계 내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세경이 옆에서 그 간단한 답을 알려 주자 보석은 이게 불만이라는 것인데 도대체 보석이 왜 여기에 대해 다짜고짜 불만을 가져야 하는건지 이해가 안 된다.

예전에 보았던 에피소드에서는 보석이 계산기를 들고도 30 퍼센트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3 퍼센트를 공제하고 송금을 하려고 하자 세경이 옆에서 이를 바로 잡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순재가 보석 대신에 세경을 불러 계산을 시키고 보석에게는 세경이 해야 할 집안 일을 하라고 시킨다. 그러자 보석은 사소한 트집을 잡으면서 세경을 경계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헛된 망상이긴 했으나 보석이 세경에게 부사장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라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12월 4일자 방송분에서는 보석이 왜 세경에게 불만을 가져야 하는지, 더 나아가 복수하겠다고 소리 지르며 다짐해야 한다는건지 상당히 황당하다.

그 때부터 보석이 세경에게 일종의 피해망상증을 갖게 되었고 아예 세경의 모습조차도 보기 싫을 정도로 세경이 눈엣 가시같은 존재로 변했다는 상황 변화가 있어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변화가 있었다면 해리 때문에 허리를 다쳤어도, 세경이 일을 하느라 자리를 비운 것이긴 하지만 세경이 해야 할 일인 장인의 양복을 다리고 현경의 심부름을 해야 했고, 그렇게 좋아하는 전복을 먹으러 가면서 하늘이 열 두 쪽이 나도 깨우지 말라고 했다고 정말로 깨우지 않은 세경에게 무조건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보석과 세경의 대립 구도를 만들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보석이 집에서 살림하는 남자라서 세경과 자주 부닥치는 상황이라면 이 둘의 대립관계는 그런대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둘을 대립하게 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고 되려 안 좋은 결과만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이킥'에서 제일 약자는 세경과 신애다. 그리고 그 다음이 보석이다. 이 두 약자를 서로 대립하게 만드는 구도는 오히려 역시너지 효과만 생길 뿐이고 얻을 게 없다. 순재와 현경은 쥐꼬리만큼의 댓가만 지불하고 세경을 너무 심하게 부려 먹고 해리는 심심하면 세경과 신애를 구박하고 괴롭힌다. 그런데 그 다음의 약자인 보석마저 세경에게 불만을 갖고 사사건건 트집 잡으며 괴롭히는데 가세시켜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설정은 이 날의 방송에서도 나타났듯이 감동이나 웃음은 커녕 보는 사람의 짜증만 돋구게 할 뿐이고 '하이킥' 전체의 가치를 추락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둘은 서로 대립이나 갈등을 갖게 연결하는 것 보다는 분리하는게 좋고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시키는 게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인용하기에 적정하지는 않지만 옛 속담에 '과부 사정 홀애비가 안다'는 말이 있다. 이 날 방송을 보면서 보석이 세경과 신애가 기거하는 옷방에서 허리를 지지고, 세경이 자릴 비운 사이에 세경의 일을 대신하면서, 세경이 참 열악한 환경에서 많은 일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보석이 세경에게 연민을 갖는 쪽으로 얘기가 전개되는건가 예상을 했었다.


(다소 황당하기는 하지만 이 오프닝을 둘러 싼 상상도 그럴듯해 보인다.)

앞으로 이렇게 정리해 나가기 위한 사전 공작일 수도 있겠는데 보석이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보면 당분간은 보석의 안티를 늘리기 위한 네거티브 전략이 아닌가 하는 추정도 해 보게 된다. 그러나 보석과 세경을 대립시키는 설정은 물론 작가의 역량에 달린 것이겠지만 과연 득이 될 지 독이 될 지는 재고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석에게 다음의 질문을 대신 던져보는 것으로 힌트를 제공해 보고자 한다.

"여우나 토끼나 어차피 다 비슷비슷한 약자, 토끼보다 좀 더 센 여우라 한들, 순재는 사자요 현경은 호랑이인데 세경씨를 구박해서 내쫓는다고 보석씨는 홀로 편안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狐死兎悲, 세경氏滅, 보석氏寧獨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