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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 누가 신애 좀 말려줘요

지붕뚫고 하이킥 12일 방송에서 세경과 신애가 드디어 아버지(정석용)를 만났다. 이 날 방송은 재촬영까지 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상당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세경과 신애의 아버지인 달호는 이 시트콤에서 상당히 뒷부분에 등장하든가 아니면 드라마 선덕여왕의 문노처럼 가끔씩 등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트콤에서 맡은 배역도 신달호로서 신세경의 성을 쓰고 있다는 것에서도 이렇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지붕뚫고 하이킥이 예상보다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다면 정석용을 등장시키기 위한 설정은 더 앞당길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시트콤의 설정을 상당부분 바꿔야되는 부담이 따를 것이고 쉬운 선택은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재는 이 시트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정석용의 등장은 이 시트콤 전체로 본다면 무리수가 될 수도 있기에 역시 문노처럼 가끔씩 등장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12일 방송을 보면서 달호의 등장은 너무 섣부른 선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고 아마도 어렵게 서울에 온 달호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세경과 신애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정리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달호가 돈을 벌기 위해 오랫동안 배를 탄다는 설정으로 시트콤에 등장시켰고 세경과 신애가 아버지와 만나는 에피소드까지 잘 엮어냈다.

세경과 신애가 아버지와 만나는 과정은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태웠다. 세경과 신애가 혹시 아버지가 와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남산에 남겨 놓은 전화번호로 누가 장난전화를 걸고, 세경은 만약에 그 누군가가 아버지일수도 있다는 아주 희박은 가능성을 위해서 장난전화인줄 알면서도 일일이 전화를 받는다.

달호는 열차 출발 시간이 남자 딸들과 만나기로 했던 남산으로 향하게 되고 거기서 만취꾼의 주정을 듣고 세경과 신애의 전화번호를 발견한다. 그리고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 전화를 건다.

한편 세경은 잠시 식탁에 전화기를 올려 놓았는데 해리가 '다 내 거야'라고 전화를 들고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 이 때 달호에게서 전화가 오는데 해리는 '자꾸 장난전화 하지 마. 이 빵꾸똥꾸야'라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세경이 전화기를 찾아 해리의 방에 오고 아버지로부터 다시 전화가 오지만 해리에게서 전화기를 뺏으려다가 바닥에 떨어져 배터리가 분리되는 바람에 전화를 못받는다. 세경은 배터리를 끼워보지만 잘못 끼웠고 설상가상으로 고장났다고 생각하고 신애와 잠자리에 든다.

'전원이 꺼져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음이 나오지만 달호는 전화 거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이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이 아니던가. 그 전화번호가 세경과 신애의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일까. 천륜(天倫)의 이끌림이었던 것일까. 열차 시간은 다가오지만 달호는 전화를 붙잡고 계속해서 세경의 전화번호를 눌러댄다.


달호의 절박함이 하늘을 감동시켰던 것인지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지훈이 밤늦게 장례식장에 입고 갈 검은 양복을 찾으러 세경과 신애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온다. 자고 있는 세경과 신애가 혹시라도 깰까봐 불을 켜지 않고 휴대전화 빛에 의지해서 옷을 찾으려는 지훈의 배려가 세심하다. 하지만 이 순간 지훈의 배려가 달갑지만은 않다.

어두운데서 더듬거리던 지훈이 결국 세경의 발을 밟게 되고 깨어난 세경의 전화 배터리를 바로 끼워준다. 마침내 세경은 아버지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고 자고 있는 신애를 깨워 무작정 남산으로 달려간다.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해 백점짜리 시험지를 신애의 책가방으로 사용되는 보석에게서 받은 서류가방에 넣어서 챙겨들고 남산으로 달려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아버지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달호는 신애가 그토록 먹고 싶어하던 자장면을 사주기 위해 돌아다녀보지만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고 편의점에서 컵자장면을 사서 먹는다. 세경은 아버지와 또 이별을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눈물을 삼킨다. 술래잡기를 가장해서 신애를 술래로 세워두고 아버지는 세경에게 신애를 부탁하며 떠나간다.

세경은 신애의 백점짜리 시험지에 돈을 싸서 아버지의 가방에 몰래 넣어주고, 아버지는 그동안 일하면서 모은 돈을 세경과 신애를 위해 신애의 가방에 몰래 넣어둔다. 아버지와 세경은 이것을 각각 확인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 순간 술래인 신애는 50을 다 세고 돌아서서 너무도 해맑게 웃는다.

시청자인 나는 신애의 해맑은 웃음만큼이나 눈물을 흘려야했다.



서신애, 2년전 출연했던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보여줬던 감성적인 표정연기와 눈빛을 보고 '지붕뚫고 하이킥' 김병욱 PD가 일찌감치 신애역으로 '찜'해 뒀었다는 아역 배우 서신애. 너무도 귀엽게 생겼지만 바라만봐도 가슴 시리게하는 눈빛, 목이 길어 슬픈 사슴의 눈빛을 닮았다. 서신애가 가만히 웃고만 있어도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난다. 이 어린 아이가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서신애가 이 시트콤에서는 연기를 조금 못했으면 좋겠다.

"누가 신애 좀 말려줘요."

이 날의 방송 에피소드는 과거의 가족을 현실에 투영해 가족의 의미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서로가 말은 하지 않아도 아버지를 염려하고,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잘 안다. 서로가 어려운 형편이지만 아버지 몰래, 딸들 몰래 돈을 챙겨넣는 그것이 부모와 자식의 마음이다. 서로에게 큰 것을 바라지 않고, 학교에 다니고 백점짜리 시험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행복하고, 경제적으로 무능력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곁에만 있어도 딸들은 행복하다. 아버지가 볼 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로 남산에 전화번호를 남기고 그것을 본 아버지는 끝없이 그 번호로 전화를 건다. 이 모든 것은 천륜으로 이어진 부모 자식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세경, 자기가 처한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여전히 천진난만한 어린 신애. 그런 그들이 가슴 아프고, 그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이 서글프다. 작가가 이 자매를 어떻게 성장시켜갈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을 너무 구박하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