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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선덕여왕'식 웃음을 준 화랑 유신

살다보면 가끔 엉뚱한 생각이 떠오를때가 있다. 그것이 때로는 기발한 창조물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말 그대로 엉뚱한데 그치기도 한다. 이 글도 문득 떠오른 엉뚱한 생각을 정리해 본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 화랑 유신이 무예를 수련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었다. 주로 목검을 들고 나무나 바위를 내려치는데 화랑 유신은 '백만스물둘, 백만스물셋'하고 숫자를 세면서 목검을 휘두른다. 내 기억으론 모두 백만스물둘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저 정도를 내려치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인가하는 엉뚱한 궁금증이 생겼다. 계산기를 띄워놓고 계산을 해보니 꽤 재밌는 결과나 나온다.

화랑 유신이 드라마속에서처럼 목검을 휘두른다면 대략 1분에 10회 정도를 휘두를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계산의 편의를 위해서 적정한 수치로 조정한 것이다. 1분에 10회면 1시간엔 600회가 가능하고 1일엔 14,400회가 되며 백만스물두번을 휘두르려면 총 69.445일이 소요된다.

그런데 이 수치는 화랑 유신이 식음을 전폐하고 수면도 취하지 않은채 오로지 목검만 죽어라하고 휘둘렀을때 가능하다. 즉 화랑 유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 달이 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오로지 목검만 휘두르고 살았었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1초에 1회를 휘두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때는 총 11.574일을 단 1초도 쉬지 않고 휘둘렀을 때에야 가능해진다. 만약에 화랑 유신이 이렇게 했다면 정말 목숨 내놓고 휘둘러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가능한 시간을 찾아 보기로 했다. 화랑 유신이 자고 먹고 뒷간 가는 등 목검을 휘두르는 이외에 소비하는 시간을 총 10시간 정도로 정형화했고 하루 14시간 동안을 목검을 휘둘렀다고 가정해 보았다. 그럴 경우 위의 기준대로 산출해보면 1분에 10회, 1시간에 600회, 1일에 8,400회가 되며 백만스물두번을 휘두르려면 총 119.050일이 소요된다. 거의 넉 달을 역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오로지 목검만 휘두르고 살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1초에 1회를 휘둘렀다고 가정한다면 19.841일 동안 목검을 휘둘렀어야 한다.

단 이 때 변수가 두가지 있다.

첫째는 바로 목검의 상태다. 목검이 쉬 부러지지 않아야 되고 누군가가 끊임없이 상태가 좋은 목검을 공급해 주었어야 한다. 24시간 동안을 식음을 전폐하고 1초에 1회를 휘둘렀다는 가정에서는 목검을 공급하는 누군가도 정말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숫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잘 세어야 한다. 백만스물둘은 차라리 나은데 팔십이만칠천오백서른하나와 같은 숫자를 연속해서 제대로 세기란 녹록치 않은 일이다. 머릿속에 어떠한 잡념이 생겨나도 공주님이 찾아와서 말을 걸어도 정확하게 세어 나갔어야 한다. 이럴 경우에는 1초에 1회씩 휘둘렀을거라는 가정은 의미를 잃는다. 저 숫자를 세는데만도 1초는 훌쩍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루에 14시간 동안 목검을 휘둘렀다고 가정했을 때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더 발견할 수 있다. 화랑 유신은 매일 매일 그 날의 목표치를 설정해놓고 그 목표치를 채우고는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일어나면 그 다음부터 숫자를 세면서 목검을 휘둘러 왔을거라는 상상이 그것이다. 즉 화랑 유신이 하루 목표치를 채우고 잠자리에 들 때는 이렇게 다짐했을 것이다.

"휴, 오늘도 목표치 칠십삼만구천이백(739,200)번을 채웠구나. 내일은 칠십삼만구천이백한(739,201)번째부터 시작해서 칠십사만칠천육백(747,600)번을 채워야지. 아자 아자 화이팅."

이는 화랑 유신이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한지 88일째를 마감하는 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했을지도 모를 혼잣말이다.

화랑 유신이 읊은 '백만스물둘'은 드라마 선덕여왕만이 줄 수 있는 웃음코드다.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웃음거리(에너자이져 광고 백만돌이 패러디)를 찾아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