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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불패' 엉덩이ㆍ다리 좋아하시죠?

『 우연으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살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연을 인정하는 것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우연을 인정해 주면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우연이 주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우연의 법칙'(Stefan Klein 著)에 나오는 이 글귀가 떠오른다. 그 이유는 내가 청춘불패란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는 것도 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진들이나 출연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청춘불패라는 프로그램은 '조작된 우연'이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안겨줄지는 불확실하다. 단지 시청률만을 염두에 두고 이 우연을 기획단계의 조작에서 그치지 않고 통제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부정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조작된 우연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새롭게 재미있게 버무려낼 수 있느냐를 고민한다면 이 프로그램의 결과는 대단히 긍정적일 것이라고 본다.

요즘 대세는 역시 걸그룹이다보니 걸그룹을 주축으로 한 야외 버라이어티인 이런 프로그램이 기획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은 일단 여성 아이돌들로 구성된 야외 버라이어티라는 차별성이 있지만 기존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인 리얼 버라이어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어서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의 포맷과의 차별성은 없다. 물론 첫방송이라 많이 어수선하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잘 드러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멤버들의 숙소를 찾아가 그들의 잠에서 깬 맨얼굴을 공개하고 노래와 춤을 요구하기까지 한 것은 제작진들의 의욕이 지나쳤다. '패떴'에서 여성 멤버들이 아침에 부시시한 얼굴을 공개하는 것과 숙소에서 맨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패떴은 무대로서 공개되어 있는 장소이지만 숙소는 무대가 아니고 공개되지 않은 사생활 구역이다. 거기에 찾아가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노래와 춤까지 요구하는 것은 횡포다. 첫방송이라는 부담감에서 이런 무리수를 뒀는지 모르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웠을수도 있고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썩 유쾌하지는 않다.

'청춘불패'에 참여하는 멤버는 유리와 써니(소녀시대), 구하라(카라), 나르샤(브라운아이드걸스), 현아(포미닛), 효민(티아라), 한선화(시크릿)로 총 7명인데 첫방송에서 이들의 활약은 이 프로그램의 전망을 밝게 한다.

구하라는 "어머니 아버지, 3단 덤블링 갑니다.", "엉덩이 좋아하시죠?"라며 개인기를 선보이고 덤블링 도중 사탕이 주머니에서 떨어지자 이를 어른들께 나눠드리며 넉살을 부렸고 유리는 구하라의 "엉덩이 좋아하시죠?"에 이어 "다리 좋아하시죠?"라며 소녀시대의 춤을 보여주는 재치를 발휘했으며 나르샤는 힙합과 랩으로 소위 '타령 춤'으로 흥을 돋구었다. 그리고 써니는 닭장 청소도 가장 열심이었고 능청스럽게 닭을 맨손으로 잡아 올리고 일명 돈벌레라는 그리마를 한방에 제압해버렸다.


화장실 만들기를 위해 열심히 삽질한 김태우, 역시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은 다르다. 프로그램에 나와서 힘자랑이 특기인 연예인들은 대개 공익근무자들이었기에 김태우의 삽질은 훨씬 더 빛났다. 땅을 파고 독을 묻어둔 화장실에 자연스레 앉아서 자세를 취해보던 유리와 구하라, 석유 풍로에 석유 주입구를 못찾아 불을 붙일줄 몰라 헤대다 결국 노촌장의 도움을 청했고 가마솥에 밥을 앉히고 수시로 뚜껑을 열어보던 유리. 과연 그 밥은 제대로 되었을까가 궁금하다.

현아는 닭과 대화를 시도하고 닭털을 살짝 건드리고 만졌다고 좋아하고 설마 이 닭을 먹는건 아닌가 걱정하기도 하고 엄마와 통화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김신영은 안어벙으로 변신해서 큰웃음을 줬고 노촌장 노주현은 일일이 소녀들 뒤치닥거리에 바빴다. 희희낙락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희석이 오히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었다고 느낄 정도로 각각의 출연자들의 활약이 빛났던 것 같다.

청춘불패의 성패는 출연자들보다는 기존의 다른 프로그램과 어떻게 차별화해서 식상하지 않은 재미와 감동을 버무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제작진의 기획력에 달린 것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연을 기획하고 조작하되 일일이 통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식상해지고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첫방송에서의 어수선함과 취지의 모호함을 빨리 정비하고 본격적인 궤도로의 진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어리거나 젊고 귀여운 걸그룹들이 등장한다는 희소성과 참신함을 살리고 그들의 신선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게 관건일 것이다.

사족으로 여담을 좀 해보자면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채널을 돌렸더니 MBC W <사헬 특집 2부> 마지막 부분이 방송되고 있었다. 기후변화와 인구증가, 과도한 벌채 때문에 벌써 니제르 국토의 80%를 잠식한 사막, 하지만 이 팍팍한 모래 속에서 상상치도 못한 삶의 방식을 엮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헬 특집' 그 2부를 보지 못했는데 뭔가 빚 진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