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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선덕여왕, 막장 드라마로서 손색이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물론 나는 전호후랑(前虎後狼)이라고 보지만 말이다. 어느 블로그에서 천명이 덕만을 구하려다가 죽는다는 얘기가 전개될거라는 글을 읽었는데 그동안 스토리를 비틀대로 비틀면서 막장을 향해 달려왔으니 더 이상의 퇴로는 없었을 것이다. 천명은 왕위 계승 순위였지만 덕만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출궁해서 절로 들어갔다고 전해지는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천명에게 있지도 않은 쌍음(雙陰)의 죄를 물어 출궁시키는 정도로 전개할 계획인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덕만을 구하려다가 천명이 대신 죽는다고, 그것도 이렇게 일찍 죽는다고 전개할 줄이야.

드라마를 보다가 보면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불치의 병에 걸린다든가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한다든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느닷없이 죽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천명을 이 시점에서 죽게 한다면 그것은 천명이 느닷없이 백혈병에 걸려서 죽게 된다는 것이고, 교통사고를 당해서 비명횡사를 당하게 된다는 것과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 된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막장드라마에서 시청률을 담보하기 위해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써먹는 낡고 '즈질'스런 수법이라는 정도가 되겠다.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진위여부가 불확실한 화랑세기를 토대로 하고 있는데다가 주로 작가들의 상상력에 의존해서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것이니 역사 드라마라고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가 역사적 고증이 뒷받침된 내용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상식에 바탕한 스토리가 전개되면 좋지 않을까하는 아쉬운 생각에 써 보는 글이다. 혹시 선택할 카드가 너무 많다는 함정에 빠져 있는 경우는 아닐까하는 추정도 해보게 된다.

덕만의 신분을 둘러싸고 드라마 중간중간에 설정되었던 상황들이 근사한 반전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해서 사실 기대를 가졌었는데 그 이전의 것들은 그냥 적당히 아무런 생각없이 끼워넣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해프닝(happening)도 아니었고 지금에 와서는 과거에 그런 일들은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되버렸으니 말이다. 덕만의 신분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네 글자로 표현해보자면, '억지춘향'이다. 또 누가 태클을 걸어올지도 모르지만 두 글자로는 그냥 '쌩쑈'다. 생떼를 부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드라마 전개가 억지춘향임을 완벽하게 감추어 준 걸출한 인물이 출현(出現)했으니 그가 바로 비담을 연기하는 김남길이다. 그동안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이 왜 비담을 감추어둔채 비밀병기라는 말을 흘려왔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비담은 난삽한 쌩쑈를 완벽하게 감추며 드라마 전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비담과 문노는 같은 시점에 등장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문노의 등장에 그다지 큰 기대감은 없었다. 문노를 잠적시킴으로서 얻었던 궁금증 유발 효과는 이미 다해버린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비담 김남길의 연기는 '쟤, 드라마 출연(出演)을 대체 얼마나 별렀길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에 출연(出演)하는 배우들은 개인적으로는 영광이겠지만 그만큼 부담도 클 것이다. 특히나 이미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의 중간에 합류하는 경우라면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배가(倍加)될 것 같다. 그런데 김남길은 마치 '이 날만을 손 꼽아 기다렸다'는 듯이 비담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내가 김남길을 좋게 평가해주고 싶은 것은 비담이란 캐릭터를 아주 섬세하게 잘 잡아냈다는 것 때문이다. 비담이 드라마에서 빠지는 날까지 긴 호흡으로 비담을 자연스럽게 연기하기 위해 김남길은 꽤나 연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미실과 덕만 사이를 오가면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며 드라마 전개를 매끄럽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다가 '미실의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선덕여왕'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비담의 선덕여왕'으로 넘어가 버리고 비담이 퇴장할때까지 '덕만의 선덕여왕'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은 아닐까하는 허튼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요원으로서는 '덕만의 선덕여왕'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바짝 긴장해야 되겠다. 물론 드라마가 앞으로는 덕만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을테니까 이요원의 활약도 두드러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덕만의 선덕여왕'으로 넘어가게 되겠지만 말이다.

덕만의 신분과 관련한 드라마 전개와 비담의 출현(出現)에 대해서 써 보던 글이었는데 우연히 천명의 죽음이란 내용의 블로그 글을 읽게 되어서 내용과 제목이 좀 자극적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막장 드라마에서는 죽은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어느 날 살아서 돌아오기도 하고 불치의 병에 걸렸던 사람도 신통방통하게 낫기도 하던데 드라마 선덕여왕의 천명도 아무일 없었다는듯이 벌떡 살아서 달콤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올지도 모르니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