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업데이트가 안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이름하여 '도깨비 소환 스페셜'. 시니컬(cynical)하게 표현하자면 인기를 끈 드라마 우려먹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에서 빠져나오게 도와주는 면도 있으니 깜짝 이벤트 같은 느낌도 들고 다 좋다. 속칭 '개막장'도 무에 그리 자랑이랍시고 단물 빨아먹기까지 하는 천박한 족속들의 비루한 행태가 불쾌하고 짜증나는 것이지.
 
이참에 나도 쓰지 않았던 글을 보태며 이쯤에서 드라마 '도깨비'를 놓아야겠다.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명장면들이 매우 많지만 절대 뺄 수 없는 기막힌 장면 둘을 짚으려 한다. 두 장면은 可히 '쓸쓸하고 찬란하신(scene)'이라 명명할 만하다고 본다.
 
쓸쓸하고 찬란하신(scene) Ⅰ
 
지은탁이 도깨비와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유려(流麗)하다'는 말보다 더 적확한 표현을 못 찾겠다. 영상도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두 남녀 주연 배우가 잘 어우러져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 장면에서 제목에 '쓸쓸하고 찬란하신'을 붙여놓은 의도를 짐작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이 짧은 장면에는 놀랍게도 세밀하게 정제된 굉장히 많은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도깨비를 스쳐보는 지은탁, 지은탁을 세밀히 응시하는 도깨비. ending까지 본 후 이 장면에서의 김고은과 공유의 표정이 그대로 떠올랐는데 그 당시의 지은탁과 도깨비의 내면 상태가 그대로 전해져와 둘의 연기에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지은탁을 스치며 지나갈 때 도깨비에게 짧은 영상이 스쳐간다. 도깨비는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지은탁이 바닷가에서 메밀밭에 있는 도깨비를 처음으로 소환했던 때인가, 소환되어 온 도깨비가 '너 뭐야? 넌 뭔데 아무것도 안 보여?'라고 한다.
 

 
그럼 처음 지은탁과 조우했을 때 도깨비에게 스친 영상은 무얼까 하는 의문은 드라마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풀린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멀어져가는 지은탁을 응시하던 도깨비의 장면도 비로소 이해된다.
 
거기엔 지은탁의 미래, 하지만 지은탁과 연결된 도깨비의 미래가 함께 담겨 있다. 이 장면은 마치 반복학습처럼 드라마를 타고 흐르며 몇몇 장면을 통해 머릿속에 맴돌게 하지만 도깨비가 미처 간파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한 것처럼 시청자의 의문도 무디어져간다. 드라마 후반부에 섬광처럼 이 장면이 떠오를 때까지.
 
쓸쓸하고 찬란하신(scene) Ⅱ
 
지은탁이 납치돼 위험에 처했을 때, 목 뒤 문신의 힘으로 도깨비를 소환하는 장면이다. 이 때 도깨비는 저승사자와 함께 나타나 '물의 검'으로 차를 두 동강 내고 저승사자는 두 악한의 기억을 지우고 철천지원수처럼 싸우게 만들어버린다.
 
이 장면은 사실 거의 클리셰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뻔하다. 예전에 홍콩 영화나 헐리웃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속된 말로 '똥폼'이라고 하겠다. 해서 이 장면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평가할 만한 것은 없다.
 

 
그런데 이 장면은 거기에 담긴 의미가 상당하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스토리의 대반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은탁, 도깨비, 저승사자의 이른바 케미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또한 모든 캐릭터와 스토리가 유기적 관련성을 갖고 입체화되기 시작한다. 장풍 날리는 소년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든 것도 이 장면에서부터였다고 본다.
 
벚꽃? 복숭아꽃!
 
'도깨비가 벚꽃을 피웠다'는 기사가 왕왕 보여서 여담으로 덧붙인다. 도깨비가 피운 꽃은 벚꽃이 아니라 복숭아꽃 아닌가? 김선이 그 복숭아꽃을 갖고 들어가 저승사자의 모자를 벗겼던 것이었고. 한국 전통적 설화를 기반으로 한 것이니 복숭아꽃이어야 맞는 것이기도 하고.
 
음(陰)에 속한다고 봐야 하는 도깨비가 양(陽)인 복숭아꽃을 피운 것은 모순당착적이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드라마에서 도깨비는 부신이라고 하는데 그게 부신(富神)인 건지 부신(復神)인 건지 명확하지는 않다. 한데 설화 등에서 도깨비는 번창 혹은 부흥 등의 상징으로 보기도 했으므로 그런 측면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또한 이상향을 의미하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도(桃)가 복숭아이므로 그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복숭아가 사실은 이율배반적인 의미로 쓰여왔다. 도교(道敎) 사상에서는 귀신을 쫓는 신성한 과일로 여겼고, 천상에도 있는 과일이며 신선이 먹는 과일로 보았다.
 
한편 음란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 기피하기도 했다. 이른바 도화살(桃花煞)이라고 해서 몹시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여기서의 도화가 복숭아꽃이다. 음란한 서적을 도색(桃色)잡지라 하는데 여기서의 도가 복숭아다. 한편 보통 황색신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건 도색잡지의 영어 표현인 a yellow journal을 역으로 해석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복숭아는 장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무려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이 늘 복숭아를 먹고 있었다는 데에서 기원하는 모양이다. 간혹 발간된 책에서 삼천갑자를 3천 년으로 기술해놓은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1 갑자는 60 년이고 그래서 61 세 되는 해를 환갑이라 해서 기념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천갑자는 18만 년이다. 동방삭(東方朔)이란 인물이 복숭아를 먹고 18만 년을 살았다 하니 그 상상력의 무변광대함에 존경심이 든다.
 
드라마에서 복숭아꽃은 저승사자의 모자를 벗기는 데 쓰여지기도 한다. 이것은 '아랑사또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일 수도 있겠는데 큰 의미는 없다. 저승사자가 귀신은 아니라고 봐야 되나 어떻든 음(陰)에 속하는 것으로 봐야 하고 다만 저승사자의 정체를 확인한다는 설정이었으므로 무리하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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