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내딸' 이서영의 거짓말이 결국 무시무시한 예언이었나?

 
 
 
드라마를 보다보니 등골이 서늘해져 온다. 3 년 전 이서영이 무심코 했던 거짓말이 마치 살벌한 예언이었던 것처럼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동생은 유학 갔다고 둘러댔던 이서영의 천륜을 거스르는 그 거짓말에 대한 대가를 작가는 이서영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넣어 되돌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드라마를 끌어가는 주요한 소재는 이서영이 강우재네 식구들에게 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둘러댔던 거짓말이다. 이서영이 처음에 의도적으로 이 거짓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강기범이 강우재와의 결혼을 허락할 리도 없고 결혼할 마음도 먹지 않았기에 굳이 꾀죄죄한 아버지에 대해서 얘기함으로써 멸시 어린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평생을 마치 죄인처럼 숙이고 들어가도 괜찮을 만큼 강우재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강기범이 강우재와의 결혼을 허락해버리면서 이서영의 거짓말도 애초와는 달리 의도치않은 상황으로 변질된다. 이젠 이서영도 강우재를 포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게 원하게 되면서 거짓말을 했었다는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둘러댔던 거짓말이 의도적인 거짓말이 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쌍둥이 동생 이상우도 외국으로 유학 가 소식이 끊겼다는 거짓말도 더해지고 아버지 이삼재에게는 미국으로 유학간다고 둘러대는 거짓말까지 덤으로 더해지게 된다.
 
이서영은 그렇게 자기만 입 닫고 잘 처신하면 모든 게 다 잘 될 줄 알았다. 이 헛똑똑이 이서영이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차지선이 차려놓은 아버지 이삼재의 제삿상을 마주했을 때였다. 아버지의 생일날에 아버지의 제삿상 앞에 서 버리고 만 이서영은 결국 혼절하고 만다. 작가는 이삼재의 제삿상이 차려진 장면과 이상우가 강미경을 데리고 와 이삼재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장면을 연속으로 바꿔가며 보여준다.
 
그리고 이서영이 미국으로 유학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버지 몰래 결혼식을 했던 것에 대해 아버지의 입장이라면 어떠한 심정이었을지를 절감하게 된 것은 이상우가 결혼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면서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기의 결혼식을 지켜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런 아버지는 그 사실을 끝까지 딸이 알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마침내 이서영은 아버지를 찾아와 무릎 꿇고 오열하며 아버지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아버지는 그런 딸에게 이해했으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자식일 때는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고 부모가 되면 그런 자식들을 이해하는 거니까 일부러 그랬던 것도 아니니 다 괜찮다고 용서한다. 그렇게 이삼재, 이서영 부녀는 오랜 갈등을 털어내고 화해한다.
 
그러나 아직 두 부녀는 서먹하고 어색하다. 최호정은 시어머니인 이상우의 어머니 유골이 뿌려진 진안에 가려던 계획이었는데 둘의 어색함을 풀어주기 위해 같이 가자고 권유한다. 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러서는 남은 길은 이삼재하고 이서영이 단둘이 가게 만든다.
 
좋은 일엔 늘 방해꾼이 따르는 법이라고 이삼재는 진안으로 가기로 한 전날 복통이 찾아와 고통스러워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여행길에 나섰으나 휴게소에 들러 구토를 하고 이서영이 좋아하는 호두과자를 사지만 끝내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고 만다.
 
딸과 화해했으나 서로 서먹함을 이기지 못해 눈빛으로만 애틋하게 인사를 하면서도 내심 흐뭇하고 딸이 아버지를 태우고 가기 위해 준비해놓은 차 앞 좌석에 앉기만 하면 만사가 다 순조로운 상황이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속인지 아버지가 쓰러지고 달려온 딸은 절규하며 아버지를 부른다.
 
이 장면에서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이서영이 이상우에게 "아버지는 무조건 사랑해야 돼? 내가 선택한 아버지가 아닌데 천륜이면 무조건 사랑해야 돼? 사랑하게 만들어줬어야 사랑을 하지"라고 소리치고는 자기의 가슴을 부여잡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서영이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거짓말을 바로잡지 않고 결혼하려는 것을 알고 이상우가 만류하러 찾아와 서로 대화를 하던 도중에 감정이 격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에 있던 말을 내뱉은 것이다.
 
이서영이 했던 그 거짓말이 결국은 무시무시한 예언이었던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죽었고 동생은 외국으로 유학갔다며 이서영이 무심코 내뱉었던 그 거짓말, 이삼재가 죽는다면 이상우는 아마 미국 유학길에 오를 것이고, 그 상태에서 이서영이 강우재와 재혼하는 경우를 가정한다면 섬뜩하게 들어맞는 예언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상우가 다니는 병원에 입원했으니 강우재를 구해줬던 은인이 이서영의 아버지 이삼재였다는 사실을 강우재네 식구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강기범과 차지선을 감동시키고 비록 이삼재는 죽더라도 결국 이혼한 딸을 재혼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서영은 아버지는 죽었고 동생은 유학 갔다고 최초에 했던 거짓말 상황으로 강우재와 재혼하게 되는 것이니 연결시켜서 보면 절묘하면서도 끔찍한 유언이 되는 셈이다.

 
이서영이 어릴 때 이삼재와 함께 썼다는 결혼식 초대장에 나온 내용도 꽤 께름칙하다. 강우재 부모가 강우재와 이서영의 재혼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계기를 제공한 데서 이삼재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끝났고 하늘에서 강우재가 이서영을 지켜주고 사랑해주는지 감시한다는 의미로 본다면 이것도 역시 새드 엔딩을 암시하는 설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서영의 거짓말이 이서영의 가슴에 비수로 되돌아가 또 다시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해야 되는 슬픈 상황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왠지 이 불길한 예감이 맞을 것 같다. 이상우가 다니는 병원에선 미국 탐스 에버튼에 제프리 교수 밑에서 배울 수 있는 연수 공고가 떠서 이상우가 관심있게 지켜봤었다. 이상우는 이삼재가 살아있다면 저명한 교수 밑에서 배울 수 있는 연수 기회를 포기할 것이지만 이삼재가 죽는다면 미국으로 연수를 가게 되지 않겠나 싶다.
 
또한 이삼재는 흔들의자를 만들고 있었다. 이서영이 찾아와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간 다음날 이삼재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밥을 차려놓고 나간다. 아들 며느리 밥공기에 콩으로 하트를 그려놓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길로 공방에 나가 흔들의자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것으로 보아 이 흔들의자는 필시 이서영을 위해 만들고 있었던 것이라 짐작된다.
 
이삼재는 이상우가 결혼하면서 집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서영을 위해 만들었던 침대를 태우며 이서영을 털어낸다. 그런데 그 시각 이서영은 이상우의 결혼식을 몰래 지켜보다가 과거를 후회하며 오열하고 있었다. 이삼재, 이서영 두 부녀는 늘 이렇게 엇갈려왔다. 이삼재가 이번에 이서영을 위해 만드는 흔들의자는 두 부녀를 또 어떻게 엇갈리게 만들까.
 
 

 
이서영이 결혼한 후 이서영을 털어내고 가벼워진 이삼재가 등산 간다고 집을 나서면서 이상우의 독백이 흘러나온다. "아버지도 서영이를 잊어서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던가. 당시에도 이 독백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는데 이삼재가 쓰러진 지금엔 뭔가 불행을 예고하는 것 같아 섬뜩하게 느껴진다. 숨어서 딸을 지켜보던 아버지 그러나 그 딸은 아버지가 남겨놓고 간 흔들의자에 앉아 아버지하고의 좋았던 기억 세월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추억한다는 메시지는 아닐까.

 
이삼재가 복막염으로 쓰러진 건 매우 개연성 없는 황당한 상황이다. 이삼재는 이서영이 시댁에서 쫓겨나는 꿈을 꾸다가 깨자 불길한 예감이 들어 허둥지둥 이서영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 시각 강우재가 같이 아침 운동을 나오려고 했으나 일어나지 못한 이서영의 전화를 받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일 뻔한 상황에 처한다. 그것을 보자 이삼재는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강우재를 밀쳐내 사고의 위험에서 구해낸다. 그때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 생긴 후유증이 수 개월이 지나 복막염으로 나타나 결국 쓰러진다.
 
우연을 남발하며 매우 개연성 없는 전개를 이어가다가 이렇게 한 장면에서 스토리를 연결시킴으로써 허를 찌르며 탄복하게 만드는 것이 이 드라마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우연을 남발하지만 한 장면도 허투루 보면 안 되고 긴장감을 갖게 만드는 데는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고 하겠다.
 
작가가 이삼재를 죽일지 살릴지는 알 수 없겠으나 죽이는 경우라면 이서영의 거짓말은 정확하게 들어맞는 예언이 되는 것이고 살려내는 경우라면 정확하지는 않으나 불행한 예언은 되는 셈이다. 어떠한 경우든 이서영은 천륜을 거스른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대가를 가슴에 꽂히는 비수로 되돌려받아 또 다시 가슴을 움켜쥐게 되는 것이다. 가슴을 움켜쥐고 통곡을 하게 될지 움켜쥐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게 될지 작가의 선택이 궁금한 하루가 될 것 같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거짓말들을 하고 그것을 나름대로 합리화시키며 살아간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이서영처럼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짓말도 있다. 석가모니는 "모든 사람의 불행한 운명은 그 입에서 생기고 있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자르는 칼날이다."라고 했다지 않은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서영의 의도치 않은 거짓말에 대한 대가를 마치 예언처럼 끔찍하게 되돌려주는 극단적인 처방만이 거짓말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여튼 이런 주말 가족 드라마는 왠만하면 해피 엔딩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