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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딸 이서영' 거짓말 되풀이하는 이서영, 그깟 자존심 때문일까?


 
 
 
이서영은 두 번의 유사한 상황에 처하자 어찌된 일인지 유사한 거짓말을 되풀이하며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 유사한 상황이라 함은 어떠한 경우에도 강우재와 결혼할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때와 강우재와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혼할 거라고 결심했던 때다. 이서영은 자기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강우재와 결혼하게 될 행운은 오지 않을 거라 의심하지 않았던 때에는 부모형제가 아무도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한 강우재와는 필히 이혼할 거라고 결심한 후에는 뜻하지 않게 들통난 아버지와 동생의 존재를 시인하면서 자기의 사정에 대해서 일절 해명하지 않고 속이고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반복한 것이다.
 
한데 이서영이 이처럼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그에 대해 일절 해명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단지 한 번만 숙이고 빌면 될 그깟 자존심 때문이라 폄훼할 수 있을까?
 
이서영과 마주한 이삼재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달라진 게 있다면 한몫 잡을 요행이나 좇으면서 그것을 마치 자식들을 위해서 하는 것인 양 떠벌이는 태도를 버렸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이서영이 왜 아버지를 찾아왔는지, 이서영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등 이서영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대해 귀 기울이려는 노력은 전혀 없이 그깟 자존심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닦달한다. 이삼재는 자기 딸 이서영과 자기 아들 이상우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서영과 이삼재 부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닮아도 매우 닮았다. 특히 쓸데없는 고집과 불뚝 성질은 두 부녀가 영락없이 판박이다. 이서영은 아버지가 감당하지도 못할 일들을 저질러놓고 혼자서 도망다니다가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게 했다는 그 사실이 밉다. 하지만 이서영은 아버지와 마주하면 거기서 자기와 닮은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리는 그게 어쩌면 더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이삼재는 드디어 이서영의 입장을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변하게 되는 계기를 맞았다. 강미경이 강우재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그동안 자기가 이서영과 이상우에게 무슨 짓을 해오고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이다.
 
이상우가 강미경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이삼재는 그게 최호정이 끼어들었기 때문인 줄 알고 최호정에게 못나게 굴었다. 또한 이상우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고집 대로 일방적으로 강미경을 찾아가 결혼할 것을 종용했다. 이삼재는 자신의 그러한 행동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고 자식인 이상우 만도 못한 철없는 짓이었는지 절감했을 것이다.
 

 
"인마, 그깟 자존심이 뭐 그렇게 중요해"
 
이삼재는 무엇보다 집으로 찾아온 이서영에게 '네가 잘못을 해놓고 왜 시부모들한테 빌지도 않고 네가 스스로 판을 깨', '강우재는 네가 석 달 열흘을 쫓아다니면서 빌어도 꼭 잡아야 될 놈이야 그 놈', '그깟 자존심이 뭐 그렇게 중요해' 등의 말을 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알아야 한다. 또한 이서영의 주위를 맴돌면서 마치 아버지를 부정한 딸 이서영을 보호해주고 있기라도 했던 양 생각했지만 실은 그건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한 자기합리화일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삼재가 딸 이서영과 아들 이상우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식은 그들의 선택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리라 본다. 세상의 대부분의 아비는 자식의 허물을 기꺼이 대신 뒤집어쓰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어떠한 경우에도 일단 자식을 믿어주고 자식의 편에 서주고 자식을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부성애가 아닐까.
 
이서영, 드디어 사람이 되어가다
 
이서영도 이혼 후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혼자서 라면을 끓여 김치를 접시에 덜어내다가 도로 김치통에 담아서 먹고, 만화방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분식집에서 길거리에서 주변의 소리들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고, 헤어스타일을 바꿨고, 집에 친구를 초대해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사법연수원 모임에 나가 술도 마시고, 말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는 동창과 어울려 클럽에도 갔다. 살아오면서 닫았던 마음을 차츰 열어가며 세상을 돌아보고 세상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이서영이 어느 정도나 달라졌는지는 강성재를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강성재가 바로 코앞에 서있는 이서영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이서영은 달라졌다. 형수님인 이서영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서은수에게 일방적인 애정 공세를 펼쳤던 강성재가 오매불망하던 형수님을 코앞에 두고도 못 알아본 것이다. 단순히 파마 머리로 스타일을 바꾼 외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바뀌었다는 힌트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서영에게도 강우재를 만난 후 이미 한 차례 변화가 있었다. 이서영은 의대를 희망했으나 이삼재가 벌이고 다닌 일을 뒷수습해주는 와중에 오직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변호사를 희망했다. 그러나 강우재와 결혼한 후 시부모의 강권에 따라 판사를 했지만 의뢰인의 처지를 직접 변론하기 위해 결국 변호사로 바꾼다. 즉 단지 돈이 목적이었던 것에서 벗어나 의뢰인을 위해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는 어쩌면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하는 악덕 변호사가 될 수도 있었던 이서영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변화로서 강우재를 만나게 됨으로써 이서영으로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긍정적인 변화가 된 셈이다.
 

 
이서영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된다면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긍정적 에너지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마치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된 듯이 급전직하한 스토리 전개가 어색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자기를 내려놓기 시작한 강우재와의 진실한 사랑도 시작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이서영, 그깟 자존심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게 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서영과 이상우는 쌍둥이이지만 이상우는 어머니를 닮았고 이서영은 아버지를 닮았다는 점이 다르다. 그 차이점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서영은 등록금 안 가져왔다고 이상우를 때리는 선생에게 또박또박 따지고 들지만 이상우는 성격 더러운 담임에게 죄송합니다 한번만 봐주세요 하기 싫어서 얼마 남지 않은 졸업 때까지 더러워도 맞아줬다. 이서영의 엄마는 이서영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배달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억장이 무너지지만 이서영의 얘기에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아마 이삼재였다면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게 하는 처지임에도 그깟 자존심 내세우지 말라고 다그치며 서울로 진학하려는 이서영의 의지를 끝내 꺾으려 들었을 것이다.
 
이서영이 아버지가 죽었다는 거짓말을 했던 것과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결혼을 했던 것 그리고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에도 거짓말을 계속하는 것은 이서영의 그깟 자존심 때문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이서영은 고등학교 때 이미 자존심을 버렸다. 이서영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자장면 배달 일을 할 때 학교의 짓궂은 친구들이 학교로 음식 배달을 시키기도 했었으나 이서영은 배달을 갔다. 이서영이 그깟 자존심만을 고집했다면 차마 학교로 음식 배달을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서영이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그깟 자존심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이서영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 처절한 몸부림 같은 것이라고 봐야 된다. 이서영을 보면 드라마 '49일'의 신지현과 송이경이 합체된 모습이 연상된다. 세상과 단절하고 은둔하며 최소한의 삶만 영위하는 송이경 그리고 정해진 기한 내에 반드시 진실한 눈물 세 방울을 모아야만 살아날 수 있는 신지현, 이서영은 내면에는 칠락팔락하는 신지현의 활동성을 소극적인 송이경에 가두어 살아간다.
 
신지현의 눈물 세 방울을 모아야 하는 절박한 몸부림은 이서영에겐 돈을 벌어야 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나타난다. 신지현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들에게 들키지 않아야 되나 이서영은 삶과 마주한 자기의 처절한 몸부림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신지현의 절박함은 서서히 송이경을 변화시키는데 이서영이 절박하고 절망했을 때 강우재가 손을 내밀어 이서영을 변화시켰다.
 
 

강미경이 강우재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안 이삼재, 그를 위해 이호정이 죽을 끓여놓았다
 
이서영은 절박함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으나 마치 신지현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가 이내 죽어버렸던 것처럼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던 거짓말을 들키지 않아야 하는 절박함으로 바뀌었다. 그로 인해 이서영은 피임을 해왔고 3년을 가족으로 살면서도 마치 타인처럼 살았다. 아무리 병적으로 깔끔한 성격이라 하더라도 무려 3년 간이나 살았던 곳에서 홀연히 가방 하나 챙겨서 떠날 수 있을 정도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었다니 이서영도 참으로 독하다.
 
이런 이서영이 자신의 거짓말을 강우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용납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서영은 구차하게 해명하고 아무일 없었던 듯이 살아내기는 어려운 성격인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거짓말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그 3년보다 더 수치스러운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서영으로서는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빌고 그 안에서 살아내는 일일 것이다.
 
이서영이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던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는 사실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적으로 죽기보다 더 수치스러운 상황이고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며 차마 빌 염치도 없어야 정상이다. 낯짝이 소가죽보다 두꺼운 부류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서영은 당시의 그 거짓말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것이 결혼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으며 그 후에 차마 말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정을 끝내 해명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오히려 강우재네 식구들이 미련을 갖지 않게 하려고 더 모질게 정을 뗀다. 그리고 자동차와 함께 차 키는 물론 써왔던 모든 키를 돌려주고 살았었던 흔적을 없애기 시작한다. 이게 이서영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서영이 모르는 게 있다. 이서영이 맘에 없는 거짓말로 강우재네 식구들로 하여금 미련을 떼게 했다고 보지만 그러한 이서영의 마음을 차지선을 제외한 모두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서영만 모르고 있다. 아니다. 이서영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성재에게 '지금 신경써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어머님이야'라고 충고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한데 이서영이 제대로 해명하지 않은 게 과연 차지선을 위하는 것이 아닐수도 있음은 여전히 모르는 듯하다.
 
 

"그럼 니들 부모를 때리냐?"란 담임의 말에 분노하는 이서영
 
이서영의 아버지를 향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서영이 이삼재를 원망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사채빚을 지고도 혼자 어디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의 무책임함이 싫었던 것이다. 그래놓고는 마치 처자식을 위한 일이었던 것처럼 아버지로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자기합리화를 시키는 아버지에게 점점 마음을 닫아갔던 것 같으나 그래도 아버지를 부정하고 원망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서영의 아버지를 향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아주 잘 설명해주는 장면이 있다. 이상우의 담임이 등록금 납부를 독촉하며 이상우를 때리는 것을 목격하고 이서영이 '우리가 못낸 게 아니잖아요 상우가 못낸게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며 따지자 그 담임이 '그럼 니들 부모를 때리냐?'라고 쏘아붙인다. 그 말을 듣자 이서영은 분이 꼭두까지 올라와 그 담임을 노려본다.
 
비록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지만 다른 사람에게 욕 먹고 초라하게 보이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 이서영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처음에 거짓말을 했을 때도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도 싫지만 아버지가 우습게 보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고 그리 되면 결국 한 번 죽였던 아버지를 또 다시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 싫었을 것이다. 이혼한 후에 아버지를 찾아간 것도 아버지가 스스로를 탓하며 상처를 받을까봐 염려스러워서 사과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