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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딸 서영이' 네 명의 아버지(강기범을 위한 변명)

 
 
 
드라마 '내딸 서영이'엔 아버지가 넷이 등장한다. 우재의 아버지 강기범, 서영의 아버지 이삼재, 호정의 아버지 최민석 그리고 이름은 모르나 강기범의 장인이자 차지선의 아버지. 네 명의 아버지들은 사회적 지위는 물론 성격도 다 다르나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네 명의 아버지들의 부성애를 얘기하고 있다. 윤소미가 연출이 아니라 실제로 공포를 느끼는 듯한 장면 등의 명장면을 만들어내는 차지선의 열연 때문에 강기범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이 안 좋아 보인다. 해서 여기에서는 강기범을 위한 변명이란 부제로 강기범을 중심으로 써보려고 한다.
 
이삼재와 최민석,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
 
이삼재와 최민석은 드라마 상으로만 보면 상당부분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이 많아 설득력은 부족하지만 작가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초상을 그려보려는 의도인 듯하다.
 
고도성장기에 힘들게 고생하며 가족을 먹여살리던 아버지들은 PC 세대들에 치여 주눅 들고, 외환위기엔 삼팔육, 사오정, 오륙도란 자조 섞인 유행어를 쏟아내면서 무자비한 조퇴, 명퇴를 감내했다. 핵가족화가 가속화되고 여권이 신장되면서 아버지들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그저 밖에 나가 힘들게 일해서 처자식 먹여살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아버지들, 시대는 그들에게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찌든 수구꼴통의 멍에를 씌워 이유없이 깔보고 무시했다. 아날로그형 아버지들에게 만능 슈퍼맨이 될 것을 요구한 잘난 디지털 세대들은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던 것인데 그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게 단순한 자판기적 사고를 하는 디지털 세대와 아날로그 세대의 근본적인 차이점일지도 모른다.
 
이서영이 아버지를 부정한 것이 천륜을 거스르는 것이라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멸시하는 세대들도 그와 다르지 않은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부정하지는 않았으니까 이서영보다 낫고 그래서 이서영을 욕해도 된다고 짧은 140 글자로 자기합리화시키려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이삼재와 최민석은 어찌보면 대단히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삼재의 경우는 뜻하지않은 IMF란 칼바람으로 인해 비참한 현실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아버지다. 그 이전까지는 쌍둥이 남매와 마누라를 먹여살리며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도 오순도순 살았고 이서영도 그러한 아버지를 좋아했고 잘 따랐다. 한데 외환위기로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 후부터 이삼재의 삶은 질곡에 빠졌고 가족의 고통도 시작됐다.
 
이삼재는 IMF로 인해 설 곳을 잃고 길거리에 내몰려 절망을 경험했고 또 다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아버지들을 대변하기에는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연이은 사업실패나 다단계에 빠졌거나 도박 또는 경매에 빠진 것 등은 이 시대 아버지들의 처참한 몸부림을 상징한다는 의미는 있을 수 있겠다.
 
하나 이삼재는 이 모든 걸 한탕주의를 기대하고 저질렀는데 그 이전의 이삼재가 어떤 한탕주의로 한방에 복구하면 된다는 정도의 삶을 살지는 않았다. 이삼재는 가족과 함께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단란하게 살아가던 소시민의 전형이었다. 그런 이삼재가 사채업자들이 집에 들이닥쳐 사랑하는 처자식을 괴롭히는데도 딸의 대학등록금은 물론 처의 병원비까지 뺏어간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듯하다.
 


 
이서영이 아버지를 대신해 사채업자들의 빚을 갚아주고 힘들게 마련한 대학등록금까지 내주면서 아버지에게 바랐던 것은 요행히 한탕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서영은 단지 어릴 때의 자상하고 따뜻했던 아버지로 돌아와주는 아주 작은 부분을 바랐다. 이를테면 시대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무능력한 아버지가 되긴 했지만 무책임한 아버지는 아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랬다면 이서영은 어떤 부득이한 상황이었다 해도 아버지를 부정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이삼재가 이제 와서 이서영의 주위를 맴돌면서 '이거 봐라 너는 나를 부정했어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은 대단한 부성애의 소유자다'라는 얘기를 하려 한다면 참 허탈하지 않은가.

 
최민석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소위 술상무다. 90 년대쯤에는 간혹 술상무 얘기가 있었는데 2000년대 들어와서도 업무 능력도 없고 무책임해도 적당히 술상무 역할만 하면 이사직을 유지시켜 주며 월급 꼬박꼬박 주는 기업이 여전히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직장 생활이 더럽고 치사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꺼내지만 차마 던지지는 못하는 아버지들은 많다. 한데 친구 잘 둔 덕에 회사에 어마어마한 손해를 끼치면서도 꿋꿋하게 이사직 유지하는 처지에 마누라 눈치가 무서워서 어쩔수없이 회사를 계속 다닌다고 불평하는 최민석은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캐릭터다.
 
최민석은 '가정에서 소외된 아버지의 전형'이라는데 이 캐릭터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마치 김강순과 잘못 결혼해 쥐어산다는 듯이 불평하는데 일곱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처녀장가 들고 그 김강순 덕에 이사직까지 올랐으며 무능력함으로 회사에 사고칠 때마다 김강순이 여고 동창인 차지선을 찾아가 굽신거려가며 막아주지 않았던가. 김강순도 악착스럽게 고생고생했고 그 덕에 지금처럼 사는 거 아닌가.
 
최민석은 처자식으로부터 멸시당하며 사는 고개숙인 아버지의 전형으로 보기도 어렵다. 원래 꿈이 배우였는데 김강순을 만나 집에서는 큰 소리 못 내고 하숙생처럼 살고 김강순의 바가지가 무서워 다니기 싫은 회사 억지로 다닌다고 불평하는 황당한 캐릭터일뿐이다. 일곱 살 난 아들에게 무관심했고 김강순과의 사이에서 낳은 호정에게도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아버지를 원망한다거나 무시하려들지 않는데 가정에서 소외된 아버지일 수는 없다. 그냥 철없고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가장으로서 적당히 되는 대로 놀고 먹는 한량 정도로 봄이 마땅하고 전혀 무의미한 캐릭터다.
 
유능한 카리스마 강기범, 권위적 가부장 차지선의 아버지
 
강기범이 욕을 먹는 데는 성재의 출생의 비밀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실 강성재가 출생의 비밀이 있는 캐릭터라는 건 윤소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짐작할 수 있었다. 윤소미의 언동이 사장 비서의 그것이라 보기에는 도를 넘어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이 빠지면 드라마가 진행이 안 되다보니 드라마가 시작하면 습관적으로 출생의 비밀을 비롯한 막장 요소들을 추론해보게 된다. 강기범과 윤소미 사이에서 난 자식일 가능성을 높게 봤는데 강기범이 외도까지 한 상태에서 윤소미를 옆에 두었다면 강기범의 캐릭터와도 맞지 않고 과도한 막장이라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한 정도였다.
 
강기범은 차지선이 말했듯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선 보고 두 달 만에 결혼한 카리스마 있고 멋있는" 유능한 국내 굴지의 기업 위너스 사장이다. 싱그러운 처녀였던 윤소미가 기혼자이며 자기와 외도를 할 사람이 아닌 걸 알면서도 명정해 인사불성인 강기범의 동물적 본능을 자극해 하룻밤 욕정을 채워 불륜의 씨앗인 성재를 낳을 결심을 했을 정도로 강기범은 카리스마 있고 멋있는 사장인 셈이다.
 

 
강기범은 사장으로서도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며 흠잡을 곳 없이 멋있다. 드라마 초반부에 야근하는 직원에게 야근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공장장을 문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기업인으로서의 강기범의 면모를 잘 설명해준다. 강기범같은 사람이 비단 사장은 아니어도 상사이기라도 하다면 업무적으로는 다소 힘들 수는 있겠으나 실제 일을 하기에는 최민석보다는 훨씬 편하다. 또한 이사진들의 비난을 다 받아내면서도 무능력한 친구 최민석의 실수를 감싸줄 줄 아는 의리도 있다. 한마디로 멋진 남자다.

 
강기범은 회사일과 집안일을 분리해서 집안일은 차지선에게 맡기고 간섭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자식 문제에서만큼은 조금 다르다. 자식이 의도한 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차지선에게 여자가 집에서 하는 일이 뭐냐고 타박하는데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자식의 문제도 차지선이 맡아야 할 집안일이라고 보지만 뜻대로 안되면 직접 나서서 감정대립을 하면서라도 관여한다. 특히 우재가 회사를 승계하도록 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데 차지선의 반대를 묵살하고 이서영을 받아들인 것도 그 일환이다.
 
강기범은 일과 회사밖에 모르고 정략결혼한 차지선을 무시하며 그래서 차지선은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듯한 설정으로 변질되었다. 어쩌면 강기범이 욕을 먹는 부분도 여기서 출발하는 듯한데 여기에는 오해가 있어 보인다. 강기범과 차지선의 관계를 강기범만의 문제로 보는 것은 무리한 것인데 그 이유는 강기범과 차지선 각각의 문제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강우재가 이삼재의 존재를 알고 힘들어하자 이 내막을 모르는 강기범은 이서영과의 문제일 것이라 짐작하고는 마누라와 3년 간이나 밀월관계를 유지했으면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됐으니 스트레스는 밖에서 풀고 가정내에서는 불화가 드러나지 않게 티내지 말라고 얘기한다. 이는 강기범이 기업을 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정략결혼을 하기는 했으나 강기범도 차지선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차지선에게 아예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 같다. 하나 그 애정이 식으면서 같은 계층의 남들처럼 스트레스를 집안이 아닌 집밖에서 풀기 시작했을 거다.
 
강기범이 외도를 했던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그것이 사랑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집안팎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처자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했고 상대에게 정을 주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감정이 선을 넘었다 싶으면 그 즉시 차단하고 관계를 정리했다. 강기범은 자기의 행위로 인해 가정이 깨지는 걸 원치 않았고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이렇게 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강기범의 외도에 대해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본다면 강기범도 상당부분 정당성을 강변할 수 있다. 그래서 강성재가 친자식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강기범의 태도는 겉으로는 단선적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자기의 실수로 가정이 깨질 위기가 생겼다는 자학도 있지만 자기의 실수만으로 치부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반감도 있다. 하나 그렇다고 자기의 실수를 중언부언 부인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보는 듯한데 장인에게 전화를 걸어 구원요청을 한 것으로 보면 내면적으로는 어느 정도 위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강기범이 마치 권위주의적 가부장의 전형으로서 일의 성공만이 전부인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경이 고아행세를 하는 것을 용인해오고 있고 미경의 옷차림을 타박하는 차지선에게 "일하는 여자는 일하는 여자답게 노는 여자는 노는 여자답게"란 말로 제압하는 등으로 보면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차지선의 언행이 워낙 비현실적이라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다보니 강기범의 직선적인 어법은 돈의 권위를 이용해 차지선을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로 인해 차지선이 일방적인 약자가 됨으로써 강기범이 악역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닌가 싶다.

 
권위주의적 가부장의 전형은 차지선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권력 유지를 위한 필요성으로 딸을 굴지 기업 사장인 강기범에게 시집을 보냈고 마음 둘 데 없어 찾아간 딸에게 '늘어지게 팔자 좋은 인간 세상에 없다'는 한마디로 돌려보낼 정도로 차지선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이다. 물론 이것은 차지선의 아버지가 차지선을 향해 부성애를 표출하는 방식일 것이다. 하나 친정에 찾아간 차지선은 마치 새장에 갇혀 울음소리 한 번 마음대로 내지 못하는 새처럼 보이는데 그 새장에 가둬 그렇게 기른 사람이 바로 차지선의 아버지인 것으로 보였다. 물론 차지선은 아버지의 새장 안에서 부족함 없이 평온하게 자랐겠으나 왠지 거기가 차지선의 감옥처럼 느껴졌다.
 
차지선은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따랐다고는 하지만 강기범과 두 달 만에 결혼한 것은 어쩌면 차지선이 아버지의 새장 안에서 꿈꿨던 일탈에의 욕망과 일치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나 얼마 안가 강기범의 관심이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차츰 많아지면서 차지선은 "인간 마음에 가장 쉽게 자라는 것이 의심이다. 작은 점 같았던 것이 눈덩이처럼 자라나 결국 사람 미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강기범을 포기하고 일탈에의 욕망은 쇼핑으로 풀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윤소미와 강기범의 불륜에 대한 의심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차지선은 두 사람에 대한 배신감 만큼이나 자신의 안에서 다시 의심이 자라나 꿈틀거리는 게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강기범이 한도를 올려준 카드로 친구 김강순이 보는 앞에서 충동적으로 호기로이 1억을 덜컥 기부하고는 집에 돌아와서 입구에서 큰소리로 강성재를 부르는 새가슴 차지선은 무언가 몰입할 수 있는 외부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강기범을 닮아 의지할 수 없는 강우재와 강미경을 보며 속끓이고 강기범과 달라 정을 듬뿍 주었던 강성재가 강기범의 친자라는 사실에 또다른 의심의 나래를 펴는 새장에서 벗어나려면 말이다. 강기범으로서도 단지 가정을 깨지 않는다고 해서 외도와 언행에 정당성이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같은 소시민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고위층들의 심리를 어찌 짐작할 수 있겠나마는 하여튼 강기범과 차지선의 관계는 어느 일방만의 문제로 몰아갈 수는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강기범이 이서영의 거짓말을 알고 난 후에 강경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고아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천륜을 버린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로 인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까봐 염려하는 것도 있지만 이건 부수적이다. 마지막으로 강기범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이서영으로 인해 강우재가 쉬이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하고 급기야 회사일에서 아예 손을 뗄까봐서다. 그래서 더 강경하게 이서영을 비난하면서 강우재의 입장을 정당화시켜주어 속히 털고 마음을 잡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강우재가 회사일에서 손을 떼지는 않을 것 같은데 침울해하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강기범이 먼저 이서영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불러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게 강기범이 처자식을 사랑하고 가정을 지켜온 방식이었으니까 말이다.
 
드라마 '내딸 서영이'는 부성애와 부권을 주제로 다룬다는 호평들이 많은데 남발되는 우연과 개연성 떨어지는 장면도 많아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다만 드라마의 주제를 아버지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네 명의 아버지 중에서 기업인으로서나 친구로서나 아버지로서나 여러 면에서 나름 의미있는 캐릭터가 강기범이라 생각된다. 단지 차지선의 입장에서만 보고 차지선을 동정하며 강기범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든 문제는 상대적이며 일방적인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