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공개되어 있는 한미FTA 협정문에는 쌀은 양허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그런데도 위키리크스가 폭로했으니 미국에 쌀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들의 태도가 하도 완강하기에 언론 보도를 통해 짐작해왔던 위키리크스의 문건에 대한 나의 인식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슬그머니 들기 시작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다는 문건에 도대체 무슨 내용이 들어있길래 그 문건을 들먹이며 이렇게까지 극렬하게 비난을 하고 나서는지 궁금해졌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다는 문건은 아마도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2007년 8월 31일 작성한 것으로서 2007년 8월 29일 김종훈과 미국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인 Earl Pomeroy가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 담겨 있는 문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를 보면 김종훈이 미국과 쌀시장 개방을 약속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당시 주한 미 대사도 배석했지만 김종훈과 얼 포머로이 미 하원의원 사이에 나눈 대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이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을 보면 둘 사이에 한미FTA 협상과 관련한 어떤 약속이 오고갔다기 보다는 협상의 히든 카드를 숨긴 채 서로의 의중을 떠보는 치밀한 탐색전 성격으로 봐야 될 것 같다.

쌀시장과 관련해서 두 사람이 나누었다는 대화의 내용을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종훈이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만료 전에 한미FTA가 통과되기를 강력하게 바라고 있다고 말하자 포머로이는 미 의회에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쇠고기, 쌀, 자동차를 주요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머로이는 쌀은 한미FTA에서 제외되었는데 그로 인해서 캘리포니아 곡물업자들이 실망하고 있으며 한미FTA가 균형적이고 포괄적인 협정이라는 인식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종훈은 농민에 대한 강력한 보호 정책을 펼치는 국내 사정을 언급하면서 한미FTA에서 쌀은 제외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김종훈은 한국정부는 WTO 쌀 수입 한도 협의(quota arrangement)가 2014년에 만료된 후에 쌀 문제를 재논의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마도 이 부분을 가지고 김종훈이 쌀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의견은 과민한 반응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김종훈과 포머로이 둘 다 쌀은 한미FTA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 본다. 아직 한미FTA 협정문이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이었던 당시였다면 이러한 추측을 해볼 수도 있겠으나 미 의회를 통과한 협정문이 공개되어 있는 현재로서는 억측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한겨레의 기사를 보면 기자가 현재의 국내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사를 쓰지 않았나 짐작된다. 기사 말미에 "우리 정부가 2015년부터 쌀 관세화(400%)를 통해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면 미국 쪽의 관세 인하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급된 부분은 틀린 내용이다.

쌀 관세 400%라고 명시했는데 어떤 근거로 산출해서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인지 한겨레 기자는 대답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기자가 보도한 관세 400%라는 수치는 아마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지난 3월 발표한 '쌀 산업 발전 5개년 종합계획'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종합계획에는 쌀 관세화를 2015년보다 앞당겨 2012년에 실시(쌀 조기관세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수입산 쌀에 대해 관세 400%를 매긴다는 계획이 들어있다.

그런데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400%라는 수치는 아직 확정된 수치가 아니다. 또한 2015년 이후부터 적용할 수치도 아니고 그때부터 미국쪽의 관세 인하 압력이 거세지는 것도 아니다. 한겨레 기자가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2015년과 400%라는 데이타를 확정적으로 보도한 것은 팩트마저 무시하는 것으로서 함부로 기사화해서는 안 된다. 사실전달자로서의 기자에게 팩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개인적인 이념이나 성향에 따라 논리를 달리 할 수는 있어도 팩트를 무시하거나 과장 또는 왜곡한 것을 논거로 삼는 짓은 하지 말아야 정상이다.



쌀 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은 관세화로 전환한다는 것으로서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관세를 정해야 하는데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관세상당치이다. 쌀 관세상당치는 한국이 계산해서 WTO에 제출하면 되지만 검증을 거치는 과정이 남아 있으므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한국이 WTO에 관세상당치를 통보한 뒤 쌀 관세화로 전환하게 되면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아직은 쌀 관세 상당치가 어느 정도 선에서 결정될지도 알 수 없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쌀협상 당시 한국은 2015년까지 쌀시장 개방 유예를 10년간 더 연장하는 대신 외국쌀 의무수입물량을 2004년 4%에서 2014년까지 7.96%로 늘리는데 합의했다. 또한 가공용으로만 사용하던 수입쌀을 밥쌀용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했으며 판매물량은 2005년엔 의무수입물량의 10%에서 2010년까지 30%로 단계적으로 확대한 뒤 2014년까지 30%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입쌀이 한국인들의 밥상에 오르고 있다는 말이다.

2004년 쌀협상 당시 한국은 2015년 쌀시장을 개방하되 중간에 언제라도 관세화로 전환할 수 있다는 권리를 얻어냈었다. 쌀 조기 관세화는 DDA 협상에서 한국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UR 농업협상에서는 개도국 농산물 관세를 2004년까지 10% 줄이도록 했다. 만약에 한국이 쌀 관세상당치를 400%로 결정한다 해도 아직 DDA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쌀 관세화로 갈 경우 관세상당치는 360%로 조정될 수밖에 없다.

2004년 쌀 협상 당시에 국내 연구기관 등에서는 관세상당치를 최소 400%에서 최고 500%까지 다양하게 분석한 자료를 내놓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치는 대개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려던 것이다. 농림수산부가 발표한 400%는 조기관세화를 시도할 때 WTO에 제출할 한국 정부의 계획을 의미한다. 기자가 이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년도도 틀리게 보도했다는 것은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면 다른 목적을 갖고 기사를 썼었다고 판단된다.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다면 관세상당치는 현재 예상하는 수치의 절반 이하로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DDA 협상이 답보상태에 빠져 있지만 만약에 협상이 종료되는 시점에 한국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를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쌀 관세화를 언제까지 미룰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지만 그보다는 의무쌀 수입물량을 계속 늘려나가는 현재의 방식이 국가적으로나 농민들에게나 이득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론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이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의 최소시장접근(MMA) 물량 가운데 반드시 미국, 중국, 태국, 호주에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은 20만5,228t에 달한다. 이 전체 물량 가운데 각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중국 56.6%, 미국 24.4%, 태국 14.6%, 호주 4.4% 정도에 해당한다. 이들 4개국에서 반드시 쌀을 수입해야 하는 이유는 2004년 쌀 협상 당시 그 이전까지의 수입실적을 고려해 이들 4개국에 우선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직 DDA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관세화를 시도할 경우에는 상기한 4개국을 자극하게 될 수 있다. 한국이 쌀시장을 개방하면 위 4개국의 기득권은 물론 국가별 배정물량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국이 이들 국가들과의 FTA를 아예 포기할 생각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미국에게만 일방적으로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넘는 특혜를 약속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이 쌀 관세화를 시도하면서 WTO에 통보하게 될 관세상당치를 인정받으려면 이들 국가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한미FTA 추진만을 위해서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굉장히 곤란한 상황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이 WTO에 관세상당치를 통보하게 될 경우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가장 큰 국가는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별 배정물량이 사라짐으로써 경쟁에서 밀리게 될 가능성이 커보이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쌀 관세화는 오히려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이 제출한 관세상당치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기존 수출량을 유지해 달라거나 그 외의 다른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미국의 이의 제기가 단순히 관세상당치의 적정 여부를 따지는 수준이 아니라 이를 무기로 다른 것을 얻으려고 할 경우에는 협상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협상은 한미FTA와 직접 연계되어서 이루어지는 협상이 아니다. 즉 쌀 관세화로 갈 경우에는 한미FTA와 연계하지 않아도 미국과의 협상은 피할 수 없을 거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정황이 이러한데도 위키리크스에 나오는 김종훈의 쌀 관련 발언을 한미FTA와 연관지어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유는 아마도 위에 언급한 한국이 쌀 관세화로 갈 경우에 협상으로 바뀌는 부분을 혼동하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또한 현 정부가 졸속적으로 추진했던 미국 쇠고기 수입 협정으로 인한 경험도 의심을 거둘 수 없게 하는 요인일 것이다. 한데 지금은 한미FTA 협정문이 공개되어 있는 상황이므로 과민하게 반응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마치 한미FTA가 한국 농업을 다 무너뜨릴 것처럼 과장해서 말하지만 한미FTA에서 쌀 관세화는 제외되어 있으므로 무의미한 논쟁이다. 한국의 쌀 시장 개방은 미국에게는 악재가 될 수 있기에 한국보다는 오히려 미국에게 더 민감한 문제다. 미국산 쌀이 중국산 쌀보다 비싼데다가 유난히 밥맛에 민감한 한국인들이 멀리서 돌아오는 미국산 쌀을 선호한다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쌀 관세화가 이루어질 경우 미국산 쌀은 중국산 쌀과의 경쟁에서도 밀려 한국 시장에서 참패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만약에 한미FTA와는 무관하게 한국이 쌀 관세화로 간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한국 농업의 미래를 망치게 될 거라는 말들은 기우였음을 증명하고 끝날 것이라 예측한다.

정작 위협적인 존재는 미국보다는 중국일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오게 될 중국과의 FTA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이라는 산을 넘을 수 밖에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이라는 시장이 원체 크고 미국 시장과는 달리 그것이 중국이 여러 나라들과 FTA를 맺어나가게 됐을 때 그것과 경쟁적 위치에 있는 우리 한국의 산업들이 중국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 그게 언제 올 거냐, 모르지만 중국과 FTA를 준비해야 됩니다. 농업은 중국하고 FTA하면 농업은 그야말로 그때는 초토화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말로서 노무현의 이러한 판단에 동의하기에 당시 녹취록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한국 농업을 초토화시킬 위협적인 존재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현재 한국의 농산물 시장은 WTO 하에서 쌀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방된 상태인데 한국인의 밥상에 중국산 농산물이 오르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국산 농산물은 한국 시장을 광범위하게 점령하고 있다. 만약에 중국과 FTA를 하게 된다면 한국 농업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노무현은 미국이라는 산을 먼저 넘으면서 한국 농업의 경쟁력을 키우려 했었다고 짐작된다.

마치 통상관료들이 노무현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듯이 노무현에게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비켜가려는 듯한 저열한 움직임도 보이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러한 접근법은 부시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하면서까지 한미FTA에 능동적으로 매달리며 협상장 밖에서 가장 초조하게 기다렸던 노무현을 허수아비 대통령이었다고 모욕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 결정은 전문가가 아니라 설명 충분히 들은 책임자인 제가 결정 내리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이것 또한 노무현의 녹취록을 옮긴 것으로서 그가 한미FTA에 매달렸던 뚝심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서 노무현이 몰랐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농민들을 비탄에 빠뜨리는 것은 한미FTA 그 자체보다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정부 스스로가 농민들로 하여금 신뢰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노무현 정부가 쌀 협상을 하고 돌아와 쌀수매 제도를 폐지하고 시행했던 쌀 소득보전 직불금(줄여서 쌀 직불금제)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쌀 직불금제는 쌀을 재배하는 농가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업으로서 쌀의 산지가격이 목표가격보다 낮으면 차액의 85%를 현금으로 보전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쌀 직불금을 쌀 직접 경작자가 아니라 비경작자가 수령하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는 쌀 직불금 수령자들 중에는 공무원은 물론 전문직 종사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시정 지시만 내리고 부당 수령자 감사원 자료를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당시 감사결과 중의 일부만 언론에 보도되고 전체는 비공개로 처리되어 넘어갔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와서 이봉화 차관이 쌀 직불금 신청에 연루되면서 다시 이 문제가 불거져나오게 되었다.

당시 강기갑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쌀 직불금 수령 및 신청자 중 농업인은 43.7%였고 나머지는 임대업, 건설업, 교수, 직업 정치인 등 비농업인이었다. 비경작자로 쌀 직불금을 수령한 자는 28만명 정도이고 그들이 타 간 직불금은 무려 1,683억원에 이른다. 반면 이들로 인해 실제 쌀농사를 짓고도 직불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농민이 24%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강기갑 의원실은 비농업인으로 표시됐지만 실제 경작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검증을 요구했다.

이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급등하자 현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탓이라며 발뺌을 했지만 실제로는 현 정부에서 연루된 인사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회는 국민들의 비난 여론에 떠밀려 국정조사 특위를 구성하기는 했지만 쌀 직불금 문제와 관련한 핵심 인물인 강기갑을 빼고 한나라당 9명, 민주당 6명,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각 1명씩으로 특위를 구성했으니 애시당초 이 문제가 제대로 밝혀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쌀 직불금 문제는 최초에 문제되었던 것에 비하면 관련된 자들을 대략 1% 정도로 축소 은폐하는 선에서 유야무야되었다. '똥 묻은 개'가 서로 비비며 똥을 털어낸 격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 정부 들어와서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1%를 위한 정당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가증스럽다. 이처럼 이득을 위해서는 서로 합심해서 숨기고 감추어왔던 정당들이 정권을 바꿔가며 연속적으로 추진해 왔던 것이 한미FTA라 할 수 있기에 농민들이 한미FTA와 관련해서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나 협상에서 쌀 개방은 다루지 않았다는 정부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각설하고, 다시 위키리크스 문건으로 돌아가면 김종훈은 포머로이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한미FTA가 통과되기를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노무현이 당시 한미FTA에 얼마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매달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문건에서는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김종훈은 포머로이에게 10월까지 뼈'있는'(bone-in) 미국산 쇠고기 수입안이 포함될 것이며 그 후에는 미 쇠고기 수입의 전면 재개가 허용될 거라고 밝혔다. 현 정부 초기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협정에 대한 반대 시위가 거셌던 당시에 노무현은 뼈'없는' 쇠고기 수입 안을 고수했었다는 주장들은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가지 정황을 보면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강화된 사료 금지조치' 이행여부에 따라 미 쇠고기는 무제한 수입도 고려하면서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했다는 주장이 맞다고 생각된다.

현 정부는 이러한 전후사정을 무시하고 한미FTA에서 자동차만 보고는 미국산 쇠고기 무제한 수입 요구를 덥석 물었던 것이고 그로 인해 이른바 덤터기를 썼던 것이다. 현 정부의 이러한 무리수는 결과적으로 한미FTA가 지금까지도 한국 국회에서 표류하게 된 원인이었다고 생각된다.

포머로이는 이라크 관련 문제에 고심하고 있는 미 의회에서 한미FTA를 수용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주요 관심사로 쇠고기, 쌀, 자동차를 강조했다. 미 의회가 이라크 관련 문제에 고심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를 하나의 협상용 발언이었다고 본다면 한미FTA가 미 의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하나 정도는 양보를 해야 되었을 거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오바마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자동차를 거론했으니 오바마가 당선된다면 자동차 부문은 재협상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FTA를 통과시켰다면 조금은 더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나 이미 지난 일로서 이러한 가정을 해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겠다.

한미FTA가 표류하고 있는 원인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지지기반에 속하는 계급층의 이익과 소속 정치꾼들의 권력욕에 이용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나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노당의 경우처럼 아예 FTA 자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나 한미FTA를 통과 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나 어느 쪽이든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정치꾼들의 말은 거짓이다. 정치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강화와 권력욕에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한미FTA를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다.

거의 같은 협정문을 두고도 마치 노무현의 한미FTA는 진품이고 이명박의 한미FTA는 짝퉁이라는 해괴한 논리까지 떠돌아다니는 현상이 이를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한미FTA 협정문을 국회 특위에 열람 형태로만 공개했을 뿐 일반에는 자화자찬식의 홍보자료만 일방적으로 내놓았었던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안과 현 정부의 한미FTA 안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는 미국이 요구한 이른바 4대 선결조건(4대 통상현안)을 본협상이 개시되기 전에 다 들어주고 적극적으로 매달린 끝에 성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집요하게 쇠고기 무제한 수입과 쌀 개방 그리고 자동차 재협상을 요구해 왔던 것이었고 바통을 이어받은 현 정부의 졸속 대응으로 쇠고기 수입 개방 조건도 완화되었고 자동차 분야에서의 이익도 축소된 것이다.

한미FTA를 반대하려면 반대 논거로 삼을 만한 것은 굳이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동원하지 않아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지금은 한미FTA 협정문이 공개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허구에 가까운 극단적인 해괴한 설을 총동원해서 선동하는 정치꾼들의 현란한 제스처에 휘둘릴게 아니라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각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뀜에 따라 정치적 이해득실을 저울질하고 그에 맞추어 정반대로 말을 바꾸며 본질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정치꾼들에게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혼란과 악순환은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으니 김종훈은 미국에게 쌀시장 개방을 약속한 것이 맞고 그랬으니까 김종훈은 매국노다. 대략 이런 정도의 이상한 설이 마치 진실인 양 떠돌아다니고 있으며 그것만 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의 문서가 곧 진실은 아니다. 물론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서에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들도 들어있다. 특히 revisit는 충분히 의심을 가질 만한 단어 선택이고 주한 미 대사관에서 작성한 문서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표현은 좀 껄끄럽다.

하여튼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김종훈이 매국노가 되어야 한다면 막후에서 협상을 진두지휘했던 노무현은 매국노의 수괴가 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건은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서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통과시키기 위해서 미국에 제시했던 조건이었다. 게다가 국민에게 '쌀은 지켰다'고 일방적으로 홍보하면서 협정문에 서명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노무현도 매국노 대열에서 절대로 빠져나갈 수는 없다. 한미FTA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노무현이 너무나도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김종훈을 매국노라 모욕하는 대열에 끼는 자들은 무조건적으로 그 대열에 끼는 것은 자유이나 최소한 이 정도는 확실히 알고 나서 선택해야 할 것이다.


덧)본문에 삽입된 양허표(한글본 및 영문본)에서 양허유형이 Y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한미FTA 협정상 관세에 관한 어떠한 의무도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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