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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정치

보수는 프레임 싸움에서 패배하고 있다




살다 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처럼 더럽고 추잡한 경우는 처음 본다. 선거철만 되면 으레 흑색선전으로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며 진흙탕 개싸움을 벌이는(이전투구 ; 泥田鬪狗) 일이 당연시되어 왔기에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봐야 한다. 한데 이번처럼 경쟁자 모두가 온몸을 똥물에 담근 채 서로 똥물을 내뿜으며 상대가 더 더럽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분전투구(糞田鬪狗 ; 똥통 개싸움)를 벌인 경우는 정말 초유의 일이다.

서울시장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인물을 뽑는 선거가 똥통 개싸움을 벌인 자들로 인해 누가 더 서울시장에 부적합한 인물인가를 뽑는 선거로 의미가 변질돼 버렸다. 마치 '누가 누가 더 더럽고 추잡한가' 경진 대회인 것 마냥 후보자들끼리 상대방의 더럽고 추잡한 것들에 대한 폭로전만 난무했다.

폭로전이 얼마나 추잡스럽고 치열했던지 어느 순간에는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판단을 중지하는 게 낫다고 결정해야 할 정도였다. 정책선거란 말은 은하계 저 너머 어느 별나라에서나 통용되고 있을 쓸모없는 언어가 돼 버렸고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정책은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임기 2년여 짜리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렇게 편을 갈라 극렬하게 싸운다면 대통령 선거의 풍경이 어떠할지는 불문가지다. 극렬분자들끼리 백주대낮에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패싸움을 벌이고 심지어는 선량한 사람이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어느 한쪽의 극렬분자 패거리들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따위 더럽고 추잡한 선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장직을 쟁취한 측에서 내놓은 캐치프레이즈는 '상식이 비상식을 이겼다'이다. 한데 자칭 상식이라 주창하는 그들은 과연 상식일까? 글쎄, 그들의 행태도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자칭 상식이라는 자들이 하는 짓은 그들이 비상식이라 규정하고 매도하는 측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다. 다만 대척점에 서서 똥물을 던지고 있다는 것만이 다르다면 다를까 그들도 절대로 상식은 아니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는 상식 대 비상식의 대결이 아니라 비상식 대 비상식의 대결이었다. 상식이 비상식을 이긴 선거가 아니라 비상식들끼리의 분전투구에서 어느 한쪽의 비상식이 승리했을 뿐이다. 비상식끼리 똥통 개싸움을 벌인 것은 아마도 냉소적 방관자나 무관심층을 분리함으로써 불확실성을 배제하려는 꼼수였을 거다. 또한 어차피 생업에 내몰린 최하 계층은 투표할 여유가 없을 테고 선동질로 분위기를 조장해서 그쪽으로 휩쓸리는 무관심층을 끌어들이면 승리할 거라는 뻔뻔한 똥배짱이었을 거다.

한나라당의 레퍼토리는 어차피 뻔하고 기대치가 없으니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한데 자칭 진보, 상식이라는 자들이 이번 선거에서처럼 집단적으로 작정하고 똥물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에 버티고 있는 한 야권이 단일후보를 낸다면 한나라당에서는 누가 나와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거기에 주어가 없다로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나경원이라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나경원이 후보로 결정되었을 때 나는 시종일관 힘 한번 못 써보고 무난하게 패배할 것이고 그러한 패배가 가장 참담한 패배라고 했었다. 때 맞춰 터져나온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은 나경원의 의지마저 꺾는 것으로서 선거 결과에서의 불확실성은 거의 제로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자칭 진보, 상식이라는 자들이 집단적으로 히스테리를 보이고 나선 것은 큰 의미도 없는 자체 설문조사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저급한 하지하책이었다. 제기된 의혹들에는 근거 없는 네거티브도 많지만 반드시 해명해야 할 것들도 있음에도 네거티브를 맞불을 놓으며 똥통으로 들어가 개싸움을 벌인 것은 진보나 상식과는 전혀 거리가 먼 구태의연한 비상식의 전형이다.

아무한테나 달려들어서 저속한 욕지거리를 쏟아내고 다니는 자들이 진보, 상식이라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자칭 정치평론가(이런 타이틀은 누가 주나? 자칭하면 그렇게 통하나?)란 자는 나를 한나라당 알바이자 이명박과 나경원의 친구 리스트에 올려 놓고 아예 생까고 있다. '개XX'란 욕도 아까운 이런 자가 정치평론가 행세를 할 수 있고 상당수의 맹종자를 거느릴 수 있다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투표 당일 직원들 투표 독려하지 않는 회사는 기사로 쓰겠다 협박하고 사실관계는 왜곡하고 근거도 없이 고작 4년차의 감이 맞다고 우기는 자가 기자 행세를 한다. 그따위 수준의 기자가 쓴 기사가 통과되는 데스크라면 그건 이미 언론이기를 포기한 찌라시에 불과하다. 아예 데스크라는 게 존재하는지조차도 의문인 그런 적나라한 찌라시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다짜고짜 욕설부터 해댄 자도 있었는데 그 이유란 게 같잖게도 내가 쓴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경향신문 댓글 때문이란다. 그래 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오로지 시비를 걸기 위한 목적으로 계정을 새로 만들어서 대들던 자도 있었다. 진보가 똥물에 발을 담그면 안 된다고 몇 마디 했더니 자칭 진보라던 자들이 대거 이탈해 버렸고 균형을 맞추어 놓았던 타임라인은 급격히 반대쪽으로 쏠려 버렸다.

이정희가 '학력고사 수석'이었다는 언급을 했길래 '여자' 수석이 아니었냐며 그런 식으로 반복해서 꼬투리 잡고 늘어지는 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냐고 리플라이를 했다. 그랬더니 그에 대한 대답은 당 대표 비서실장의 언팔로 돌아왔다. 혹시 내가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나 싶어서 지나간 신문을 검색해 봤더니 이정희는 학력고사 수석이 아니었고 여자 수석도 아니었으며 인문계 여자 수석이었다.

한국에서 학벌이란 게 갖는 의미란 고작 이정희처럼 무의식적으로 살짝씩 부풀려진다는 거다. 한데 박원순의 경우는 그런 의미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문제로 부상했던 것인데 주어가 없다 식의 궤변이 아니라 적절한 해명을 하면 하등 문제될 게 없는 거였다. 그런데도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네거티브를 쏟아냈다. 이런 자들이 진보, 개념, 상식이라 자처하며 소통을 얘기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한데 이번 선거에서는 자칭 상식이라는 비상식의 선동이 주효했고 승리했다. 비상식들의 선동대로 냉소적 방관자와 무관심층은 벗어나 있었고 비상식들의 집토끼들끼리의 싸움에서 자칭 상식이라는 비상식이 완승을 거둔 것이다. 아마 자칭 상식이라는 비상식의 여론전에 말린 무관심층이 많았던 것 같다.



상식 대 비상식, 이것은 새로 짜여지는 프레임이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한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프레임은 수꼴 대 좌빨이었다면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상식 대 비상식의 프레임이다.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은 단순히 서울시장 선거가 아니라 이러한 프레임에서의 패배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상식 대 비상식의 프레임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만약 보수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오던 수꼴 대 좌빨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든가 대응 전략을 찾지 않는다면 공멸의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지만 좌빨을 키운 것은 수꼴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놈의 간첩들은 가만히 숨어있다가 선거철에만 활동하는지 신기하게도 선거철만 되면 간첩들이 대거 잡힌다. 인터넷이 끊겨도 북한 짓이고 정전이 되도 북한 소행일 확률이 99%라고 큰소리 뻥뻥 친다. 국민의 90% 가까이를 좌빨로 몰아세우고 군대를 동원하라고 겁박하는 바보들이 세상에 어디 있나. 사정이 이러하니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음모론에 대중들의 귀가 팔랑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너가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 한마디만 해. 그럼 너의 사상을 인정해줄게." 이런 프레임으로 정적을 때려잡아왔던 수꼴들은 이번 선거에서 무참하게 조롱당했다. 자칭 상식이라는 자들은 상식 대 비상식의 프레임으로 갈라 놓고 선거 인증샷을 번갈아 올리며 즐거운 놀이로 만들어 인증샷 대열에 합류시켰다. 이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라기보다는 "너도 인증샷을 올려, 그럼 너도 상식으로 인정해줄게"라는 것으로서 그동안 수꼴들의 프레임에 갇혀서 당했던 것을 다른 프레임을 이용해 조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수는 이제 프레임 싸움에서 패배하기 시작했다. 조갑제는 여전히 수꼴 대 좌빨의 프레임을 강화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그건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효과밖에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재의 지지층을 아무리 결속시켜봐야 이미 한계가 드러난 상황이고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음모론에 귀를 팔랑이는 대중들의 숫자만 늘려 놓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염려스러운 것은 종북 세력이 상식의 옷으로 위장해서 변신하는 것이고 수꼴들이 권력과 특권 유지를 위해 간첩 사건을 남발하는 바람에 북한의 도발에 무감각해져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종북은 진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 반미를 기치로 내세운 종북 세력이 커진 데 대한 책임은 전두환 정권에 있고 그 연장선인 한나라당도 책임이 있다. 낡은 수꼴 대 좌빨의 프레임을 고수하다가 전멸할 것인지 현재에 맞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이젠 보수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