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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앤크' 1등보다 값졌던 김병만, 시즌2에의 제언




'국내 최초의 빙상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며 피겨 여왕 김연아의 이름을 걸고 주말 황금 시간대라 불리워지는 휴일 저녁에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인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키앤크)"가 최종 1등을 가리면서 지난 주에 사실상 종결되었다. 김연아의 이름값만큼의 시청률 성적표를 거두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치열한 주말 황금 시간대에 스포츠 버라이어티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으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상당히 유의미한 성과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청률만 가지고 이 프로그램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피겨 스케이팅을 대중화시키겠다는 김연아 선수의 바람이 곧 프로그램 취지였다고 할 수 있겠는데 아직 그 구체적인 성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0명의 전문 스케이터가 참여해 초보였던 연예인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성과는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에 스케이트 디렉터로 소개된 양태화 코치가 이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던 것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양태화 코치는 '키앤크' 출연자들의 스케이팅 기본부터 안무까지 모두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방송에서 출연자들이 연기하는 기술의 이름이 자막으로 나왔는데 이 기술 이름을 결정하는 데에도 관여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의 제작에 상당히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양태화 코치는 1999년 아시안 게임에서 피겨 아이스댄싱 종목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는데 이는 한국 피겨 역사상 종합대회 첫 메달이었다. 하지만 양태화 코치 이후 한국에는 아예 아이스댄싱을 하는 선수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피겨 스케이팅을 대중화시키기 위한 김연아의 바람에 한국 피겨 역사상 아시안 게임 첫 메달리스트의 열정이 더해진 의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하겠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피겨 스케이팅이 대중화된다면 시청률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 제작의 본래 의도와는 차이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피겨 전문 빙상장을 건립하겠다는 김연아의 꿈이 이루어지고 한국에서 피겨 아이스댄싱의 맥을 이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의미를 갖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키앤크' 시즌2에의 제언

'키앤크' 제작진에 따르면 시즌2 제작을 추진할 생각이고 김연아 선수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차기 MC를 맡게 될 거라는 얘기도 보인다. 해서 전문가가 아닌 프로그램의 시청자의 관점에서 시즌 2에 대한 제언을 첨가하려고 한다.

김연아 쇼에는 획득한 금메달만도 수십개에 달하는 선수들이 참가하는데 아마추어 누구를 내다놔도 그들의 실력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다. 그렇다면 페어가 보여주는 전체적인 무대의 완성도보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출연자에게 배점의 가중치를 부여해서 페어 경기에서 남자가 전문 스케이터인 경우가 더 유리해 보이는 것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출연자들이 연기를 끝내고 얼음판 위에 그대로 서서 평가를 받는 것보다는 곧바로 키스앤크라이존에 앉히고 대화를 하는게 보기에도 편할 것 같다. 연기에 전력을 다한 출연자들의 체력적인 문제도 있지만 특히 이규혁이나 이규혁의 지인으로 출연한 제갈성렬을 세워놓고 평가를 하는 장면은 김연아나 고성희도 꽤나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던 것 같다.

심사단의 경우 김장훈과 박해미가 꼭 필요한지 의문이다. 스케이트 디렉터의 손을 거쳐서 나온 프로그램들이고 김연아와 고성희 그리고 방상아의 경우는 그런 프로그램들에 너무나도 익숙하고 스케이팅 실력에 대한 평가 뿐만 아니라 이 부분에서도 적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고 제작진이 밝힌 평가가 필요하다고는 하더라도 두 사람이나 배치하는 것은 과한 것 같다.

 


오히려 더 전문적인 장미 평가단 외에 둘씩이나 심사위원으로 배치해서 배점의 비율을 높인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한 사람은 점수의 편차가 어울리지 않게 컸고 또 한 사람은 점수의 편차가 거의 없었다는 것도 그들이 필요성에 의문이 들게 한다. 아마 그들이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써먹을 수 있을 만한 멘트로서 일종의 담보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이 둘의 발언은 상당부분 편집되었으며 방송에 사용된 그들의 말은 억지춘향 커플 몰아가기밖에는 없었기에 둘씩이나 심사위원석에 앉혀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시청자로서 보기에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심사위원석이 아니라 장미평가단의 일원으로서 평가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필요한 멘트를 생산하면 충분할 것 같다. 심사위원석에 앉힌다 하더라도 둘은 너무 과하고 후반부에 등장했던 고성희, 김연아, 방상아 또는 데이비드 윌슨 조합에 한명을 첨가하는게 그나마 괜찮은 구성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러한 점수의 편차가 최종적으로 1등을 가리는데 의미를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프로그램 전체가 루즈하고 싱겁게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었던 것 같다.

"각본 '있는' 드라마"를 만들지 말고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스포츠에 열광하고 김연아에게 감동하는 것은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초기에 개인사에 집중했던 것은 제작진들이 각본 있는 드라마로 감동을 끌어내겠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걸로는 감동을 줄 수도 없고 재미도 없다. 출연자들이 땀으로 엮어내는 진정성 있는 도전에 바탕한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 때 시청자를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1등만큼이나 값졌던 달인 김병만의 도전

'키앤크' 출연자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각각 의미있는 도전을 했다.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앓는 소리하지 않으며 매번 놀라운 무대를 보여줬던 박준금의 열정과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규혁의 파격적인 도전은 특히 인상깊었다. 이규혁과 그의 파트너인 최선영은 방송화면상이기는 하나 참 잘 어울리는 한쌍의 선남선녀다.

출연자들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도전을 보여준 것은 김병만이었다고 생각한다. 김병만은 '키앤크' 프로그램 초기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발목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열심히 훈련하고 매번 놀라운 무대를 보여줬던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가 발목 부상을 무릎쓰고도 열심히 훈련을 했다는 것보다는 시청자들에게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그의 도전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인기가 있다 싶은 연예인이라면 여기저기 그저 적당히 얼굴 내비치면서 그것을 도전이라 말하고 그렇게 치장해주는 방송 언론을 보면 참 어이없을 때가 많다. 멍석 다 깔아놓은 데에 와서 그저 적당히 얼굴만 비치는 것도 도전이라 말할 수 있고 행여나 적당한 시청률 성적표로 이어지기만 한다면 방송과 언론은 성공적인 도전이라고 추켜세워줄 수 있다는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스케줄 핑계를 대기 바쁘다는 것이다. 각각 개인적인 사정이 있고 스케줄이 빡빡하겠지만 어떤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할 수 없다면 출연을 삼가해야 한다고 본다. 시청하는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서 개인의 스케줄 핑계를 대는 것은 대단히 무례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그러한 것이 단순히 시청률이란 성적표만으로 용납되는 현실이 꽤나 못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에 김병만이 직접 몸으로 일침을 가했다고 보기에 나는 그의 도전을 높게 평가한다.

'키앤크'에서 김병만의 부상투혼을 계기로 해서 프로그램의 편집방향과 출연자들의 경쟁태도에도 변화가 생겼고 이것이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키앤크'는 초기에 출연자들의 개인사를 지나치게 늘어놓음으로써 재미는 물론이고 제작진이 의도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게 감동조차도 아예 없었다. 결국 심하다 싶은 몇몇 출연자는 건너뛰고 방송을 시청해야 했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인서트(insert)가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상황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제작진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감동의 포인트를 완전히 잘못 잡았던 데에 원인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김병만의 부상투혼을 계기로 제작진도 프로그램의 감동과 재미의 포인트를 잡아가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김병만의 부상투혼을 잘했다고 칭찬할수만은 없다. 시청자는 출연자에게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기대하고 방송을 시청하는게 아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최선을 다해 방송을 제작한다면 거기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에 신체적 상해와 맞바꾸는 경우라면 그것을 최선을 다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중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본인의 판단이 있었기에 강행했을 것이고 그러한 전제하에서 그의 투혼이 빛날 수 있을 것이다.

 


김병만이 비록 최종경합에서 아쉽게 실수를 하는 바람에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키앤크'에서 보여준 김병만의 도전은 1등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 크리스탈과 이동훈 팀의 연기에 김연아가 9.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던 것처럼 만약에 김병만이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김병만 이수경 팀이 1등을 했을 거라고 단정할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실수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페어 경기에서는 남자가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여자의 그것보다 더 큰 것 같고 따라서 남자 파트너가 전문 스케이터인 경우가 더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리프팅에서 전문 스케이터가 아직 스케이팅도 제대로 못하는 파트너에게 몸을 맡기기는 꺼려질 것 같다. 하지만 김병만은 땀으로 파트너의 신뢰를 얻어냈고 리프트 연기도 곧잘 그럴싸하게 해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리프팅에서 실수를 했다는게 정말 아쉬웠던 부분이다. 시청자와의 약속인 백텀블링과 악셀에 너무 신경을 썼던 때문이었을까?

실수를 한 후 김병만은 급격히 위축되었고 이수경의 리드로 연기를 끝낸 후 너무도 아쉬워하는 김병만의 표정은 시청자도 참 안타까웠다. 점수가 공개되는 순간에 더더욱 아쉬움 한가득한 표정이었던 김병만은 그러나 실수했던 연기를 멋지게 성공한 뒤 익살스런 표정과 동작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다시 그의 본업인 예의 코미디언으로 돌아갔다. 김병만은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킨 달인이지만 그는 천생 코미디언이다.

아픔과 슬픔을 감추고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삐에로가 그순간 김병만에게서 보였고 첫번째 페어 경합에서 김병만이 선보였던 찰리 채플린이 다시 떠올라 김병만의 실수가 더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당시 김연아는 "제가 봐왔던 피겨 연기 중에 정말 최고의 연기"였다고 촌평했지만 김병만의 진정성 있는 도전이야말로 최고의 감동적인 연기였고 1등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