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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조선일보가 훼손될 명예나 있습니까?"

김대중 칼럼, '조선일보의 명예와 도덕성의 문제'란 김대중의 글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일보 전체 기자·직원들의 도덕성과 명예 문제이고 조선일보 존재에 관한 문제다." 김대중은 이렇게 전제하고 있지만 이것은 잘못이다. 장자연 '문건'과 관련된 사건은 조선일보라는 법인이 아니라 그 리스트에 올라 있는 특정인들의 명예와 도덕성에 관한 문제다. 알려지고 있는 것처럼 성상납이 이루어졌다면 특정인들을 상대로 한 것이지 조선일보사라는 법인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지 않나. 이 사건과 관련해서 조선일보라는 법인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사건을 다루는 조선일보 기사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뿐이다. 조선일보의 도덕성과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조선일보 스스로가 쏟아내는 소위 '만우절 기사'들 때문이지 조선일보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조선일보의 도덕성과 명예의 문제가 걸린 경우라고 할 만한 사건은 작년에 있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한미 쇠고기 협정'을 두둔하기 위해서 조선일보는 훨씬 더 몰상식한 기사들을 쏟아내며 조선일보 스스로가 조선일보의 도덕성과 명예를 실추시켰었다. 조선일보가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 언론사였다면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100% 안전하냐 아니냐'하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어떻게 더 안전하게 관리하느냐에 사회적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먹거리에서만큼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조선일보는 그 이전해까지만 해도 이런 입장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후 조선일보는 주권국가가 체결한 협정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한미 쇠고기 협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미국산 쇠고기는 100% 안전하다며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하는가에 대해서는 괴담이라는 한마디로 폄하해버렸다. 더 나아가서 전국민의 80% 이상을 좌파, 빨갱이라 매도했고 전국민을 상대로 이념의 선택을 강요하며 국민들끼리 편가르기를 시도했었다.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고 조선일보는 말을 바꾼 적이 없다는 낯뜨거운 주장까지도 했었다. 세상에 100% 안전한 식품은 없는 것이고 국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먹거리 문제만큼은 탈이념해야 한다. 이 때 조선일보의 도덕성과 명예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과연 조선일보와 그 소속 기자들에게 도덕심과 명예감정이라는게 있을까 싶었다.

"조선일보에 아직도 더 훼손될 명예가 남아 있습니까?" 조선일보에 묻고 싶다.

김대중의 언급대로 '어느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위치에 있는 인사가 그 직책과 영향력을 이용해 그 영향력 앞에 무력한 사람을 농락했다면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엄중한 벌을 받거나 사안의 정도에 따라 그 사회로부터 매장당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 특정 임원'은 당연히 '어느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위치에 있는 인사'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장자연 문건의 진위를 밝히는 일은 누구보다도 '조선일보 특정 임원'에겐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그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 되고 사실과 다르다면 하루라도 빨리 불명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선일보에서 이 사건 자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동안에 "장자연 리스트와 '조선일보 특정 임원'에 관한 루머는 이미 퍼질 대로 퍼졌다". 게다가 조선일보가 국회의원을 고소함으로써 'OO일보 O사장'이나 '해당언론사'가 조선일보라고 조선일보 스스로 밝혔으면서 여전히 이를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저게 어디의 누군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여전히 음성은 '삐~'처리를 하고 자막은 OO이니 XX이니 처리하는 것은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이건 조선일보가 되려 '조선일보 특정 임원'에 대한 의혹을 부풀리고 있는 격이 아닌가.

'장자연 리스트'에 '조선일보 특정 임원'이 기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희락 경찰청장이 확인해 주었다. 그러면 이종걸 의원이 국회내에서 수사를 촉구하면서 '조선일보 특정 임원'을 언급했던 것은 당연했다. 그 내용이 국회내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이정희 의원이 국회외에서 언급했다고 해서 '조선일보 특정 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 '조선일보 특정 임원'은 '어느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위치에 있는 인사'로서 결코 사적인 문제로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장자연 문건의 경우는 이념과 계층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는 '다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이념과 계층에 상관없이 도덕적으로나 인륜적으로나 옳지 않은 '틀리다'의 문제다.

이같은 사실을 알만한 김대중같은 인사가 특정인의 문제가 아닌 조선일보의 문제라고 나서는 것은 이상하다. 김대중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조선일보 소속 기자들과 직원들을 향해 '특정인'을 위해 싸우라고 독전(督戰)하고 있는듯한 인상이다. 조선일보 사람들이 대결하겠다는 의지가 생겨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단합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창 끝을 겨누어야 할 대상은 '조선일보 특정 임원'을 언급한 사실이 아니라 '장자연 리스트'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 사람들에게 '특정인'을 위해 엉뚱한 곳을 향해 창 끝을 겨누라고 하는 것은 김대중답지 않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이 김대중을 '인간 싸움닭이요, 싸움닭 언론인'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심지어 "김대중은 천국에서 태어났다 해도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향해서도 '당신 왜 나보다 높아?' 하며 몽니를 부리지 않고선 못 배길 사람이다"라고까지 했었다. 이런 김대중이 특정인의 문제를 조선일보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조선일보 특정 임원'이 김대중보다 '끗발 센 사람'이 아니라서인가? 언제부터인가 김대중 칼럼을 읽으면서 나는 '김대중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언론인 김대중은 죽었고 인간 김대중만 남았다고 느꼈고 그 후부터 김대중 칼럼은 간혹 읽어보지만 여전히 그의 글에서 '싸움닭 언론인'을 느낄수는 없다. 지금의 김대중은 조선일보에 갇혀 '싸움 상대를 찾지 못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그만 그 울타리를 벗어나 '인간 싸움닭'이 아닌 '싸움닭 언론인'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조선일보 특정 임원'은 조선닷컴에서 사용한 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이 용어를 차용한 이유는 이 글 자체가 블라인드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방의 신고만으로 상당한 기간동안 글 자체를 블라인드 처리하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하다. 최소한 사실 확인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는 보완되어야하지 않겠나한다.

2009.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