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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배수지 어설픈 연기지만 괜찮아




KBS2 월화드라마 '드림하이'가 첫 방송을 시작한 후 고혜미 역을 맡은 수지의 연기력에 대한 혹평이 쏟아졌었다. 그 중에서 가장 치욕적인 말은 '발 연기 축에도 못 드는'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지의 연기가 어설프기는 하지만 발 연기 축에도 못 든다고까지 혹평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드라마 '드림하이'에서 수지가 연기해야 하는 고혜미는 일단 캐릭터를 잡는 것부터가 그리 녹록하게 보이지 않는 배역이다. 또한 고혜미는 함부로 재단하고 단순하게 이해할 만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래서 고혜미란 캐릭터를 놓고 연기자와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각각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므로 연기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가 있다.

고혜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뛰어난 외모에 공부도 잘한다. 조수미와 듀엣 무대에 서며 제2의 조수미를 꿈꿀 정도로 노래와 피아노에서 모두 최고 실력을 인정받았고, 세계적인 줄리어드 예비학교의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아버지가 빚쟁이들을 피해 고혜미와 어린 동생만 남겨두고 잠적해버리면서 고혜미의 고단한 인생이 시작된다.

줄리어드 예비학교로 진로가 결정되어 있던 고혜미에게 기린예고는 삼류들인 똥통들이나 다니는 그저 그런 관심 밖의 학교였다. 그런데 사채업자가 찾아와 집을 빼앗아버리고 고혜미에게 기린예고에 들어가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으라고 협박한다. 고혜미는 자기에 대한 협박에서 그치지 않고 어린 동생에 대한 협박으로까지 이어지자 결국 기린예고에 진학하기로 한다.



고혜미는 기린예고 진학 정도는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만 신입생 선발 오디션에서 탈락해버리고 만다. 게다가 '혜미빠'를 자처하며 고혜미를 선망하던 윤백희는 합격하는 이변 아닌 이변이 벌어졌는데 한번도 경쟁자로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무시해왔던 윤백희가 자기를 제치고 합격했다는 사실을 고혜미는 더더욱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사채업자의 협박을 떠올리게 된 고혜미는 이사장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굴욕적인 상황까지 연출해버리고 만 것이다.

또 참을 수 없는 상황은 순진한 엄마를 꼬셔서 아버지랑 이혼시킨 거라고 알고 있는 강오혁의 집에 빌붙어서 살아야 하는데 그 강오혁이 기린예고 담임교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강오혁과 부대끼면서 고혜미는 강오혁이 싫지 않게 된다. 머리로는 순진한 엄마를 꼬셔서 아버지랑 이혼시킨 나쁜 놈이 강오혁이라 증오해야 되는데 마음으로는 그럴 수 없게 되는게 혼란스럽다.

강오혁과 고혜미 엄마의 관계는 아직 고혜미의 말이 맞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다. 아무리 궁해도 고혜미의 아버지가 고혜미에게 동생을 데리고 강오혁의 집에 가서 살라고 얘기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사채업자 마두식의 파일을 보면 고혜미의 동생이 태어난 해는 2003년인데 엄마는 2002년에 사망한 걸로 나와 있다. 그런데 고혜미의 어린 시절은 고혜미의 동생이 대역으로 나왔던 것으로 보면 둘이 친자매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강오혁이 고혜미의 부모에게 신세진 일은 있었던 것으로 봐야할 것 같기는 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일류로서 자존심이 대단히 강했던 고혜미는 어느 날 갑자기 갈 길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타인의 강요와 협박에 의해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딴따라 똥통 학교인 기린예고에 반드시 진학해야만 하고 거기에서 연예계에 데뷔해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아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한편으로는 정말 생각조차도 하기 싫었던 일이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싫어도 해내야하는 절박함이 있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17세의 나이에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에 소속될 정도로 어찌보면 성공가도를 달려왔다고 할 수 있으며 연기는 처음 해본다는 배수지가 이러한 고혜미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연기해내기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예상외로 수지의 고혜미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나 연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발음의 문제는 좀 더 신경을 써야 될 부분으로 보인다.

연기에 도전하는 가수가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인 것 같다. 연기는 카메라의 존재를 부정해야 자연스러울 수 있는데 가수들은 불 켜지는 카메라를 쫓아다니는 습관이 배어서인지 카메라를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연기도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수지는 드라마에서 카메라를 대하는 법을 숙지한 것인지 그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보인다.

드라마 '드림하이'는 갓 고등학교를 진학한 학생들의 얘기가 주된 청소년 드라마로서 이제 17세인 수지가 조금 어설픈 연기를 한다 해서 과도하게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역에서부터 연기를 시작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연기력보다는 오히려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평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수지는 외모도 주연급 연기자로서 빠지지 않지만 배역이나 연기에 대한 이해도도 좋아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외모가 되면 춘향 역을 맡을 기회는 많지만 향단 역을 맡더라도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우수한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비난만 받게 될 것이다. '드림하이'에서 고혜미가 얘기한다. '난 내가 하니인 줄 알았는데 나애리였어. 난 내가 캔디인 줄 알았었는데 이라이자였어.' 그러자 강오혁이 '여기에서 끝나면 그렇지만 자기 문제를 깨닫고 반성하고 고치고 성장해서 정상에 오르는 이야기라면 다르다'고 얘기해주고 고혜미도 그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 대사는 고혜미 뿐만 아니라 고혜미를 연기하는 수지가 연기자로서 성공하려면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이제 고혜미는 자기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댄스 대회에서 3위를 하고 윤백희에게 졌어도 윤백희를 축하해줄 수 있게 되었다. 발톱이 빠지고 성대결절을 겪으면서도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이라는걸 하게 되었다. 수호천사 송삼동과 어릴적부터의 인연이 있는 현시혁이 늘 옆에서 고혜미를 지켜줄 것이다. 고혜미는 시나브로 하니가 되고 캔디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소 어설픈 연기가 나와도 더 이상은 고혜미를 싫어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한가지 첨언하자면 인기 아이돌이라면 연기는 기본적으로 겸업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현재의 시스템이 과연 최선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연기에는 기본기가 없음에도 인기 아이돌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연급으로 캐스팅한 후에 공중파 TV를 통해 연기 테스트를 하는 것을 시청자가 참고 견디라는 것은 방송이란 시스템이 시청자를 향한 폭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기는 비난은 오롯이 인기 아이돌의 몫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고 솜털 보송보송한 17세의 어린 나이에 온갖 비난을 들어가며 그것을 당연하다고 인터뷰해야 하는 것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저급한 자본의 속성이 만들어낸 이 시스템하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시청자이고 그 다음은 연예인 당사자들이다. 특정인에 대한 비난을 하기보다는 드라마 자체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해야 이 희한한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옥에 티(8, 9회)

쇼케이스 무대를 계기로 데뷔하게 된 윤백희는 더 이상 고혜미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며 펜던트를 고혜미에게 주고 가버린다. 고혜미는 그 펜던트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고민에 빠져 있는데 김필숙이 나타나 말을 걸자 고개를 뒤로 돌려버린다. 김필숙이 다시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제이슨에 대한 얘기를 한다. 그러다가 고혜미가 고개를 드는데 그 자리에 놓여 있던 펜던트가 보이지 않는다.



이 펜던트는 어디로 갔을까? 김필숙이 고혜미에게 다가오면서 고혜미와 김필숙 사이에 놓여있었던 펜던트는 고혜미가 고개를 돌리고 김필숙이 다시 고혜미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고혜미가 보이지 않는 뒷통수 쪽에 놓이게 된다. 이 때 뒤쪽의 학생들이 바라보는 장면이 나왔다. 장면이 바뀌면서 펜던트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이게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또 다른 어떤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 펜던트는 고혜미가 갖고 있었고 단순한 옥에 티였다. 고혜미는 Dance of the Year 참가신청을 하러 온 자리에서 윤백희와 조우하게 되는데 여기서 고혜미가 펜던트를 윤백희에게 꺼내 보여주면서 발톱 빠지고 성대결절 겪으면서 연습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공연한 일에 머리를 굴렸던 것 같은데 펜던트에 발이 달려서 고혜미의 주머니 속으로 걸어들어갔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