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시크릿가든' 주원과 라임이 오누이가 아닐까?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근래에 시청하기 시작했는데 가볍고 경쾌한 톤의 드라마라 생각해서 집중해서 시청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주 방송분을 시청한 후에는 꽤 복잡한 생각이 머리속에 뒤엉키기 시작했고 전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몇가지 단서만 가지고 생각해야 하기에 잘 정리가 되지도 않는다.

문득 김주원과 길라임이 오누이 사이가 아닐까 하는, 어쩌면 이 드라마를 심취해서 시청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추정을 해보게 되었다.

Scene #1
김주원의 몸을 빌린 길라임은 자신의 몸을 빌린 김주원이 오디션을 보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함께 오디션장에 도착하지만 문창수가 백화점에 왔다는 연락을 받고 백화점으로 온다. 사태를 해결한 길라임은 오디션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는데 거기서 만난 박상무의 호기심으로 그만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버린다.

그 시각 비가 오고 오디션장 앞에서 길라임을 기다리던 김주원이 그 비를 맞게 되자 김주원과 길라임의 영혼이 뒤바뀌게 된다. 김주원은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폐소공포증세를 보이며 서서히 정신을 잃어간다.

그 때 길라임의 아버지 길익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신이시여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기를 기도합니다. 고귀한 생명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내가 준비되어 있게 하소서.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Scene #2
김주원은 소방관이었던 길라임의 아버지가 길라임이 17살 때 사고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하다가 사망했는데 그 날이 음력 12월 5일이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자신도 13년 전에 사고를 당했다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된 김주원은 인터넷으로 음력 날짜를 검색해 보는데 자신이 사고를 당했다고 병원에 기록되어 있던 날짜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주원은 21살 때 사고를 당했는데 그 사고로 인해 아예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우울증을 앓았다. 그 사고는 엘리베이터 사고였으나 김주원은 그 때의 사고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무의식이 스스로 지운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 모두 김주원에게 굳이 사실을 알리려하지 않고 김주원이 혼자 운전하고 가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거짓말을 해오고 있다.

영혼이 바뀐 길라임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바람에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김주원에게 무언가가 떠오르게 된다. 김주원은 여전히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는 상태인데 13년 전 사고를 당했을 당시에 무언가 되게 소중한 걸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고 신경정신과 주치의이자 친구인 박지현에게 말한다.

Scene #3
길라임의 아버지 길익선의 기일에 김주원의 어머니인 문분홍은 추모원을 찾아 길익선에게 헌화한다. 그런데 거기서 아버지를 찾아온 길라임과 마주치게 되는데 길익선이 길라임의 아버지임을 알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문분홍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를 중얼거리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분홍은 길라임의 집으로 찾아가 길라임에게 김주원이 사고를 당했던 일과 그 때 김주원을 구하고 소방관 한 명이 순직했는데 그가 길라임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말하고는 길라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돈으로 보상하마 어마어마하게 보상하마. 얼마가 됐든 다 보상하마. 그러니 이걸로 우리 주원이 발목 잡지 마. 이제 그만 우리 주원이 놔줘. 이렇게 부탁한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기까지 한다.

장면 #1에서 김주원이 정신을 잃어가고 길라임이 오디션을 포기하고 전화상으로 필요한 조치를 한 후 김주원에게로 달려오던 그 때 '소방관의 기도' 중에서 왜 저 부분만을 발췌해서 약간의 각색을 한 후 길라임의 아버지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입혔을까?

장면 #2에서 김주원은 사고를 당하기는 했으나 큰 외상은 없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도대체 어떤 엘리베이터 사고였기에 소방관 길익선만이 사망했을까? 그 당시에 김주원은 어떤 일을 겪었기에 무의식이 밀어낼 정도로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을까? 또 다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당하고서야 뒤늦게 무언가 되게 소중한 걸 잃어버린 느낌이 떠올랐는데 김주원이 그렇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소중한 그 무언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장면 #3에서 문분홍은 매년 잊지 않고 추모원을 찾아 가 길익선에게 헌화해 왔다. 그런데 길익선이 길라임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난 후에 문분홍의 일련의 행동들은 너무 오버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단순히 아들의 장래를 생각하는 모정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을 정도로 문분홍의 반응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과장되어 보인다. 13년 동안이나 꼬박꼬박 길익선의 기일을 잊지 않아왔던 문분홍이 이제서야 길라임에게 김주원에게서 떠나가라는 조건을 내놓으며 돈으로 어마어마하게 보상하겠다고 무릎을 꿇어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숙였다.



위 장면들에서 특히 문분홍의 행동을 보면 애원이라기 보다는 어떤 사죄의 목적이 담긴 것이란 느낌이 강하다. 보듬어주지 못했던 딸에 대한 사죄, 성장한 딸을 거두어주지 못했던 데 대한 사죄, 그런데 또 다시 딸을 내칠 수 밖에 없는 데 대한 사죄. 13년 동안이나 매년 잊지 않고 추모원을 찾아 헌화를 해왔다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문분홍 장면들이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는다.

김주원에게 무언가 되게 소중한 건, 게다가 사고 당시를 기억하기 싫을 정도의 그 소중한 무언가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피붙이가 아니었을까? 길라임은 어릴 때부터 엄마가 없었다고 하는데 김주원의 아버지에 대한 사연은 드라마에 등장했었는지 알 수 없다. 추정이긴 하지만 만약에 길익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아버지로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까칠하게 대했을 것이다. 그랬던 아버지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기를 구하고 목숨을 잃었다면 무의식으로라도 사고 당시에 대해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주원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폐소공포증으로 정신을 잃어가자 등장하는 길익선의 내레이션 장면도 나머지 장면들과 상당부분 연관되어질 수도 있다.

김주원과 길라임이 오누이가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해 본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물론 이 장면들은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이고 연출일 수도 있다.

단서가 될 만한 게 있을까 해서 시청하지 않았었던 다른 회차를 모두 볼 수는 없고 뭔가 힌트가 될 만한 것이라 판단되어지는 '신비가든'이 등장하는 회를 보았다. 여기서 길라임의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김주원에게 닭을 건네주며 '많이 먹어 내 마음이야'라고 말한다. 또한 길라임의 아버지는 김주원에게 '자네'라는 호칭을 사용하는데 '자네'란 호칭을 사용하고 닭을 잡아주는 것은 아무래도 길라임의 아버지가 김주원을 사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봐야 되는 건가?

김주원과 길라임이 술을 마시고 영혼이 뒤바뀌어 키스하는 장면을 보면서 '자네한텐 정말 미안하네. 이렇게라도 딸을 살리고 싶은 못난 부정을 자네가 이해해주게'라고 말하는데 이 역시도 사위로 보고 있다고 봐야 될 것 같다. 위에 예시한 세 장면을 본 후에 신비가든 장면을 보아서인지 이 장면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종의 '사랑과 영혼'인가? 죽은 후 13년 동안이나 떠나지 못하고 딸을 지켜왔었다는 말인가? 딸에게 닥칠 변고를 막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버리면서 구해냈던 그 생명을 이용하는 것도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여기서 '못난 부정'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상기한 각각의 장면들을 다르게 해석해서 연관지어보는 게 가능한 부분이기는 하다. 그런데 왠지 신비감과 호기심을 높이자는 의도에서였는지는 몰라도 드라마의 스토리와 연출의 강약 부분이 일관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약간의 간극이 벌어진 느낌이라고 할까 무언가 단절되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길라임의 아버지가 길라임을 구하기 위해 김주원을 선택했는데 일단은 성공했다. Dark Blood 오디션을 앞두고 영혼이 두 번이나 바뀜으로써 차후에 생길지도 모를 위험을 막아냈다. 길라임을 엘리베이터 안에 가두었고 다시 길라임을 호텔로 달려오게 함으로써 오디션 참가는 무산되어 버렸고 길라임은 자신에게 올 기회가 아니었다 마음을 비운다.

그 때 길라임의 아버지의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그래 라임아. 미련 두지 마. 그건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우리 딸 이제 괜찮아. 이제야 아빤 안심이야." 그리고 임아영의 꿈 속에서도 길라임의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가닥을 잡은 게 아닌가 짐작했다.

단 한가지 변수가 있는데 그건 바로 김주원이다. Dark Blood 오디션 참가 자체를 막으려고 했었으나 김주원은 특유의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특별 오디션을 성사시켰고 그 후 길라임에게 합격했다는 연락이 온 거 없느냐고 에둘러 물어보곤 한다. 길라임의 아버지가 나서서 막으려고 했던 것들을 김주원이 다시 진행되도록 수습하고 있는 형국이다.

혹시 그럴 때마다 김주원과 길라임의 영혼을 바꿈으로써 해결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길라임이 혼수상태가 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완전히 김 빠진 맥주처럼 되버렸다. 기사 내용의 출처가 드라마 제작진이라고 하는데 드라마가 급격하게 초라해져버렸다는 느낌이다.



길라임이든 김주원이든 Dark Blood와 연관된다면 어쨌거나 죽음을 피해가기는 어려운 것 같다. 술에 취한 음주 운전자가 촬영장으로 차를 돌진, 길라임이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데 이 정도면 Dark Blood와 꽤 많은 연관성을 지닌 스토리 전개라 할 수 있겠다. 아직 4회가 남은 상태에서 길라임이 사고를 당하는 것이므로 또 다른 반전이 있을 것도 같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람과 영혼이 바뀌면 멀쩡한 사람의 육체에 들어온 의식불명의 영혼은 멀쩡해지고, 의식불명의 육체에 들어간 멀쩡한 사람의 영혼은 육체를 따라 죽어간다는 설정은 좀 우스울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초자연적인 현상이니까 작가의 각색 능력에 달린 거겠지만 말이다.

사고를 당했던 김주원이 인디언 썸머 기간에 드라마 내용의 신기루를 보고는 그동안 무의식으로 밀어내왔던 사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을 구하고 대신 목숨을 잃은 길익선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것으로 끝내는 건 아닐까 그런 예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