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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사회

물대포 발사는 살인행위였다.

2008년 6월 1일 새벽에 물대포를 발사한 것은 살인행위였다. 아기와 여성들이 있는데도 5미터도 안되는 근접거리에서 직격으로 무차별 발사한게 안전하다는 경찰의 말은 거짓말이다.

물대포가 내 쪽으로 온다는걸 각오하고 맞더라도 정면으로 제대로 맞으면 장파열이 생길 수도 있고 눈을 다칠수도 있고 귀고막이 찢어져버릴 수도 있다. 코와 입으로 엄청난 수압의 물로 직접 발사해버리면 숨이 막혀 거의 실신상태가 된다. 그런데 등을 돌리고 있던가 물대포가 날아온다는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맞게 되면 이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물대포를 맞고 잘 못 나가떨어지면 뇌출혈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날 물대포를 무차별 발사하던 상황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고 정당화될 수 없다.

차량 위에 깃발만 들고 올라선 청년을 향해 2, 3 미터의 거리에서 직격으로 물대포를 발사한 것은 살인행위이고 형법상 살인죄가 성립할 수도 있다. 물대포가 노린 것은 그 청년의 안면이었다. 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차량 난관을 붙잡고 애쓰는 청년이 머릴 들어 주변을 살피려고 하면 그 순간도 주지 않고 집중적으로 안면을 향해 물대포를 쐈다.

이건 물대포를 발사하고 그 발사를 명령한 자가 그 청년을 죽이려는 고의까지는 없었다 하더라도 저러다 죽을 수도 있지만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는 충분히 성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그 청년은 '이러다 죽을수도 있겠구나'하는 극한적인 공포에 휩싸여 있었을거다. 나는 80년대 경찰이 학생을 향해 최루탄을 직격으로 쏘던 때 느꼈던 공포가 떠올라 온몸에 전율이 왔다.

사실 그 청년이 무기를 들고 있었다거나 어떤 식으로든 경찰이 위압감을 느낄만한 위협을 가했다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깃발 하나 달랑 들고 올라섰고 올라서서 경찰에게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았다.

그 청년이 경찰 차량 위에 올라갔고 내려오라는 권고에 불응했다면 경찰 몇이 올라가서 끌어내리든가 그 자체만으로 연행사유가 된다면 연행하면 된다. 경찰측 설명대로 특공대가 올라가야 할 상황이라면 특공대가 올라가서 끌어내리고 연행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근접거리에서 물대포를 안면을 향해 직격으로 발사한 행위는 어떻게 봐도 과잉진압이고 폭력이다. 게다가 이미 물대포에 맞아 힘이 빠질대로 빠진 청년을 끌어내리기 위해 올라간 특공대 몇 명은 폭력을 쓰기까지 했다.

'물대포 맞고 부상당했다면 거짓말'이라고 해명한 경찰 과장은 그 청년과 똑같은 상황에서 물대포를 맞을 각오로 그 말을 해야 된다.
 
물대포를 공중에서 분사시켜서 그냥 촛불만 끈다든가 좀 창의적인 방식을 사용할 수는 없나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2008/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