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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당혹스러웠던 한 여자의 돌발 행동

   
   
   
길을 가다가 앞에 여자가 걸어가고 있으면 참 난감할 때가 많다. 경험칙상 이럴 때는 뒤따라가는 것보다는 그냥 앞질러 가 버리는 게 차라리 더 낫다. 어차피 서로 목적지가 다를 테니까 언젠가는 각자 제 갈 길로 가겠거니 하고 뒤따라가면 될 거 같지만 대개의 여자들은 이상한 놈 취급하듯 힐끗거리기 일쑤다. 만약에 뒤따라가는 거리가 좀 길어지는 경우라면 앞에 가는 여자도 낯선 남자가 계속해서 뒤따라오니 신경이 쓰이겠지만 뒤따라가는 나도 '난 그냥 내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니 안심하고 가시오'라고 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길이 어느 정도 넓은 경우라면 여자가 가고 있는 반대 쪽으로 앞질러 가 버리는 게 차라리 더 나은데 이런 경우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경계심을 드러내는 여자도 있다. 만약에 길이 차량 한 대 정도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다면 아예 멀찍이 떨어져서 딴청 부리며 따라가는 게 더 낫다. 어느 정도까지는 동행 아닌 동행을 해야 한다면 뒤따라가면서 괜한 오해를 받는 것 같아 불편해 할 필요가 없고 또한 앞서 가는 여자도 쓸데없이 긴장하면서 길을 갈 필요가 없을 것 아닌가.

그런데 조금 피곤한 상태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경우에 여자가 앞서 가고 있다면 좀 난감한 경우가 생길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여자의 걷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 앞질러 갈 수 있을 정도라면 좀 무리해서라도 앞질러 가면 되고 앞지르기에는 힘에 부칠 정도라면 보폭을 줄여서 거리를 두고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앞서 가려고 잰걸음을 옮기면 여자의 걸음이 같이 빨라지고 '그러면 앞서가시오'하고 속도를 줄이면 여자도 같이 속도를 줄이는 경우는 참 난감하다. 뒤따라오지도 마라, 앞질러 가지도 마라,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여자들은 뒤따라오는 사람의 행색에 따라 행색이 추레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서로 다른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가끔은 이런 경우도 있다. 길을 가다 보면 뒤따라오던 여자가 어느 순간 내 뒤에 바짝 붙어서 쫓아오기 시작할 때가 있는데 내가 맘에 들어서 말이라도 걸어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여자의 뒤에 또 다른 남자가 뒤따라오고 있어서다. 만약에 그 남자가 말 없이 앞질러 가 버리면 여자는 다시 속도를 줄여 멀찍이 내 뒤를 따라온다. 상대적으로 내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 짐작되는데 이런 경우에 여자가 나를 상대적으로 더 안전할 거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다른 남자에 비해 내 행색이 상대적으로 덜 추레했기 때문이지 아무리 봐도 다른 이유는 없다.

일전에 휴일날 아침 운동 삼아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다소 황당한 일을 당했다. 그 때가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내 앞에 한 여자가 바삐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매일 다니는 길이라 별 생각없이 무심코 뒤따라가고 있었다. 약 4~5 미터만 더 가면 마을버스가 다니는 큰길이 나오기에 그 정도에서 추월할 생각으로 일정 거리를 두고 뒤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그 자리에서 홱 돌아서더니 굉장히 짜증스러운 얼굴을 한 채 뭐라고 중얼거렸다. 아마도 보아하니 왜 자꾸 뒤따라오냐는 듯한 짜증 섞인 표정이었던 것으로 보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러나 정작 놀란 것은 나다. 별 생각없이, 그렇다고 위해를 느낄 만큼의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고 있었는데 앞서 가던 여자가 갑자기 홱 뒤돌아섰으니 매일 다니는 길이었음에도 흠칫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왜 뒤따라오느냐는 듯한 짜증 섞인 표정으로 길 복판에 기세등등하게 서서 노려보며 뭔가 중얼거리기까지 하고 있으니 참 난감한 노릇이었다. '아씨,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면 앞에 가지 말든가. 별로 관심도 없구만. 왠 짜증이냐?'



6시가 다 된 시각이긴 하나 동지가 가까워지고 있는 때니 어둑어둑했고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 같으니까 여성으로서는 불편했을 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주택가 골목길이고, 조금만 더 가면 대로는 아니라도 차 두 대가 교행할 수 있는 마을버스가 다니는 큰길이 나오고, 거기서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더러 만나게 될테고, 그러면 불편한 마음도 줄어들텐데 갑자기 홱 뒤돌아선 이유는 나를 힘으로 제압할 생각이었던가? 여자라고 연약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힘으로 제압할 생각이었다고 해도 대체 내가 뭘 어쨌길래? 물론 다양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그 여자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을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난 그저 집으로 가는 길이었을 뿐입니다."

한창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던 학창시절 나는 여자들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 수학문제 하나 푸는 게 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소 황당한 일을 당하고 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여자를 이해하는 데는 소질이 없고 어려운 문제다. 뭐 하긴 나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남을 이해한다는 건 그것도 이성을 이해한다는 건 아무래도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전철을 타고 가다가 어느 역까지 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다 보면 맞은 편에 앉은 여자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는데 여자들은 손으로 가슴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왜 가슴을 가리는지 난 여자들의 그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계속 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우연히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여자들은 왜 손으로 가슴을 가리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