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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성균관 스캔들' 선비는 좌상 대감 정도밖에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이미 드라마가 끝이 났지만 첫 회부터 시청해 오면서 쓰고 싶었던 여러가지 생각들 중에서 이 글 하나를 더 쓰고 나도 이제 그만 이 드라마를 떠나보내야겠다.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보면 비판적인 관점에서 시청하더라도 끝이 나면 아쉬움이 드는 드라마가 있는데 '성균관 스캔들'이 그런 경우다.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발칙한 상상에 걸맞게 조금 더 치밀하고 디테일하게 스토리 얼개를 구상했다면 훨씬 더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되고 시청자의 입장이긴 하지만 이런 부분은 참으로 아쉽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보면서 아쉬웠던 부분들 중에 하나는 그래도 명색이 성균관을 주무대로 하는데 어떻게 선비라고 할 만한 위인이 보이지 않는가였다. 성균관 박사 유창익의 경우는 그래도 선비다운 선비라 봐줄 수 있겠는데 배역이 너무 적었고 그 외에는 노론의 영수인 좌상 대감 정도를 선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선비라 하면 그저 꼴통정도로 치부하고 대부분의 현대 사극에서는 선비와 선비정신은 도외시하고 있다.

성균관 유생들 또한 선비정신이 보이는 유생은 좌상의 아들인 원칙주의자 이선준 정도라 할 수 있다. 성균관 유생들이 비록 나이는 어리더라도 사부학당에서 수학했을텐데도 불구하고 선비정신을 가진 유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인수는 권력을 앞세운 힘겨루기에 여념이 없고, 문재신은 불만 가득한 현실도피형 패배주의자이고, 구용하는 중인 신분이라는 것으로 이상하게 비껴갔지만 그저 재미삼아 성균관에 남아 있고, 그 외의 유생들은 대과를 보기 위한 원점과 출사하는데 필요한 인맥형성에나 관심이 있는 애늙은이들만 있었다.



장의 하인수가 직권을 남용해서 병조 관원들을 무단으로 들여서 치외법권 지역인 성균관을 침탈해도 그에 분노하고 바로잡으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대성전과 존경각 그리고 명륜당은 물론 청재까지 군홧발로 유린당했는데도 하인수의 말 한마디에 꽁지 빠진 강아지들처럼 도망가기에 바빴다. 아무리 성균관이 작은 조정이라 불렸다고는 해도 이정도로까지 막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좌상은 이선준에게 '이 나라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라고 얘기를 했는데 사대부(士大夫)란 선비의 한자어인 사(士)와 정1품에서 종4품까지의 벼슬인 대부(大夫)가 합쳐진 말이다. 조선 시대의 사회계급을 보통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표현하는데 여기서의 사(士)가 바로 사대부를 일컫는 것이다. 관직만을 놓고 본다면 대부가 선비보다는 높은 개념이라 할 수 있겠는데 사대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비를 의미하는 사를 앞에 둔 것은 단순한 관직보다는 선비정신을 더 높게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선비란 학식과 인품을 함께 갖춘 유교 사회의 이상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선비는 단순히 지식을 쌓기보다는 엄격한 수양을 실천함으로써 인격적 성취와 덕행을 쌓는 것을 추구함으로써 이상적인 인간상을 목표로 했다. 선비들의 정신을 한마디로 절의(節義)라 할 수 있겠는데 절의란 절개(節槪)와 의리(義理)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예의와 염치를 지켰던 이러한 선비정신은 그 당시의 신분 계급만 제외하고 본다면 한국인의 고유한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고유한 선비정신은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단절되어 버렸다.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병합하면서 주력한 유림 회유정책에 유림들은 포섭되었고 그 와중에 선비정신을 지키던 선비들은 자결하거나 자연스럽게 배태되었다. KBS 주말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이시영 가문이나 경주 최씨 가문처럼 가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했는데 대대로 이어오던 명문가들은 그렇게 몰락해 버리고 말았다. 해방이 되었지만 그들은 잊혀졌으며 그렇게 한국의 선비정신도 무너지고 말았다.



선비정신이 계승되어 왔다면 오늘날과 같이 예의와 염치도 모르고 개인의 이득만을 챙기는 지도층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철새 정치인도 없었을지도 모르고, 언제든 해외로 피신할 수 있는 비행기표를 구비해 놓은 채 애국자연하는 위인들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제가 남긴 잔재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어쩌면 이 선비정신을 단절시켜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일제를 거치면서 선비를 단순히 고지식한 꼴통 정도로 인식시키는 시도가 계속된 이유도 그 때의 기득권층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다.

이선준은 성균관 초시를 치르는 과장이 난장판인 것을 보고 글 읽는 선비로서 수치심이 들어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기에 분연히 일어나 바로잡는다. 좌상은 그런 아들을 불러 선비의 기개를 제대로 지켰다고 여기느냐며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제 지혜를 자랑하는 자이고 학인의 길이 지혜를 닦는 길이라면 출사는 그 지혜를 감추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충고한다. 좌상이 이선준에게 했던 충고는 채근담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선비의 기개와 현실을 일깨줘주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좌상은 세상의 뜻을 품은 선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념이고 만약 그 길에 방해가 된다면 가솔도 눈감을 수 있어야 진정한 선비라고 이선준을 가르쳐왔다. 조선은 전란이 있을 때마다 사대부가 백성을 일으키고 사직을 지켜 온 사대부의 나라인데 전란 때마다 몽진을 가거나 오랑캐 앞에 엎드린 것 밖에 한 일이 없던 군왕이 사대부를 붕당의 무리라 단죄하고 모든 권력을 갖겠다는 것이 탕평책의 실체라고 좌상은 보고 있다. 또한 임오년 사도세자의 화변을 단 한번도 잘못이라고 생각한 일이 없고 사사로운 부자의 정리보다 이 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구하는 일이 먼저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아비와 아들이 정적이 되는 일이 있어도 정도를 세우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좌상이 이선준 때문에 노론 대신들을 모아 놓고 정조의 화성 천도에 힘을 실어주자고 설득하고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국법과 강상의 도리를 어지럽힌 김윤희를 며느리로 삼겠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할 수 있다. 정조가 실제로 화성 천도를 추진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을 뿐더러 설사 추진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노론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금등지사가 있다 해도 관철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금등지사가 있었다면 사도세자의 복권과 노론에 타격을 줄 수는 있었겠지만 드라마에서와 같이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좌상은 상당히 신중한 성품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급격히 이상하게 바뀌어 버린 이유는 역시 졸속적인 금등지사 끼워넣기에 있다. 금등지사 얘기가 치밀하지 못하다 보니까 김승헌과 문영신을 살해하라 직접 지시한 사람이 좌상이 아니라는 대목에서는 다행이라는 인식이 지배하게 만드는 오류까지 나왔다. 이것은 임오의리와도 맞지 않을 뿐더러 김승헌을 살해하라고 직접 지시한 사람이 좌상이 아니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마치 적이 아니라 아군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우스운 현상이 생겼는데 이것은 이선준과 김윤희의 사랑놀음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에 중요한 실체가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선비라 할 수 있는 조정대신이 노론의 영수 좌상 대감이고 성균관에서는 좌상의 아들 이선준이어야 했던 건 KBS 드라마였기 때문일까? 하긴 요즘은 MBC도 역사를 왜곡하는 드라마와 계급 나누기 프로그램 제작에 일로매진하고 있으니 KBS에만 도끼눈을 뜨고 볼 수는 없겠다. 절의를 생명처럼 여기던 예의 선비와 같은 지도층이 출현하기를 바라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 버린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