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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 바꿔치기 된 사직상소문

   
   
   
금등지사가 있는 곳을 찾던 김윤희는 종묘로 달려가 세종대왕의 위패가 모셔진 곳에 서서 말한다. "금등지사는 신위 아래 요 자리에 있다." 혹시 '요 자리에 있다'를 '요기에 있다'로 알아들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요 자리'란 신위 아래에 요를 깔아 놓은 자리를 말한다. 김윤희가 위패를 내리고 요 자리를 확인하지만 금등으로 볼만한 궤짝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요 아래를 들춰본 것은 아니기에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금등지사는 김윤희가 열어본 요 자리에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가 이제 고작 2강만을 남겨두었는데 이 시점에 금등지사를 찾는다한들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정조가 말하는 '노비도 없고 양반도 없는 빈부는 나누고 귀천이 따로 없는 탕평을 넘어서는 대동세상'으로 가는 열쇠인 금등지사를 찾으면서 희망의 메시지만 던지고 끝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이것은 '시즌 2'를 제작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금등지사가 있는 위치는 마지막 반전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 예상할 수 있고 결국 김윤희는 잘못 찾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김윤희가 종묘로 가게 된 과정부터가 석연치 않다. 김윤희는 그날 밤 김승헌과 문영신이 월출산에서 출발해 영인문으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여기서부터 오류가 나타난다. 김윤희가 말하는 '영인문'은 어디를 이름인지 모르겠는데 김윤희가 도성전도에서 가리키는 곳을 보면 '영인문'이 아니라 모화관 앞에 세웠던 '영은문'이다. 영은문은 조선 시대에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아들이던 문으로 중화사상의 상징이었는데 이후 독립 협회의 주도로 성금이 모금되어 그 자리에 독립문이 세워졌다.



김승헌과 문영신이 금등지사를 궁으로 호송하라는 어명을 받고 도성으로 들어오던 그날 청국에서 사신들이 왔었고 사신행차에 따른 환영행사가 크게 열렸으므로 도성 곳곳에 통행금지령을 내려 도성치안은 삼엄했었다. 그런데 김승헌과 문영신이 그런 중차대한 어명을 받고 하필이면 영은문으로 들어올 생각을 했다는 것은 쉬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한성부는 도성치안을 담당한다고 했으니 영은문으로 경계를 집중했을 한성부 관원 중 누군가가 김승헌과 문영신을 호송했다고 볼 수도 있다.

김윤희는 도성전도를 보면서 종묘 근처에서 서성거리다가 금등지사는 종묘에 있다고 단정짓는데 그 당시에 정조가 창덕궁에 머물렀다고 본다면 그 길은 어차피 궁으로 향하는 길목인 것으로 보이는데 거기서 종묘라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만약에 김윤희가 손으로 짚은 위치에서 김승헌과 문영신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보더라도 이미 노론에 매수된 한성부 관원이 그 위치로 유인했다는 전제가 있기에 그 위치에서 옆에 종묘가 있다는 이유로 종묘라 단정하는건 더더욱 무리라 할 수 있다.

사직상소문이 가리키는 곳은 화성 아닐까?

"배움이 향하는 곳, 나라의 시작인 그 곳." 김윤희는 여기서 배움이 향하는 곳을 출사하여 나라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라의 시작을 조선조 열성조의 위패가 모인 곳이라고 해석했다. 김윤희가 어디를 보고 한청음이라 말하는지 한청음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김윤희는 '學文之意向 始組之國社'를 너무 단순하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구절을 경학으로 본다면 작가는 어떤 해석을 염두에 두었는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은데 정조가 화성으로 새로이 도읍을 옮기고 노비도 없고 양반도 없는 빈부는 나누고 귀천이 따로 없는 탕평을 넘어서는 대동세상인 새로운 조선을 열고자 한다고 했던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배움이 향하는 곳, 나라의 시작인 그 곳'은 화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나 짐작된다. 정조가 꿈꾸는 것과 김승헌이 꿈꾸는 것이 다르지 않았으므로 목숨을 걸고 금등을 지키려했을 것이기에 말이다.



금등지사는 이미 정약용이 찾아 내 정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싶다. 그 이유는 사직상소문의 내용이 바꿔치기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조가 최초에 정약용에게 주었던 김승헌의 사직상소문의 내용과 지금 잘금 4인방이 보고 있는 사직상소문의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잘금 4인방에게 사직상소문이 공개되었을 때 나는 이것도 소품관리의 문제로 보았었는데 그 이유는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터무니없는 소품들이 너무 많았고 그 소품의 내용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꿔치기 된 사직상소문

그런데 잘금 4인방이 사직상소문을 보고 금등지사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게 되면 최초의 사직상소문에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정조로부터 김승헌의 사직상소문을 받은 정약용은 금등지사를 찾아냈고 김승헌이 서경에 암호로 남겨놓은 부분들을 알아낸 다음에 그 내용을 잘금 4인방에게 보여준 것이라 생각된다. 즉 지금 잘금 4인방이 보고 있는 사직상소문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선준은 걸오에게 존경각에 있는 책들에선 서경의 금등편을 찾을 수가 없는데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추어 둔 것 같다고 말한다. 결국 이에 대한 혐의는 정약용으로 모아진다.

정조와 정약용이 잘금 4인방을 시험하면서 암호문을 준 이유는 불의한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비판하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갖는 사람이라면 정조가 말하는 대동세상에 대해서도 뜻을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일 것이다. 김승헌이 사직상소문을 통해 잘금 4인방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강의는 정조가 건설하려는 대동세상인 화성에 뜻을 같이하라는 가르침을 전달하고자 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잘금 4인방이 마지막으로 만나게 될 금등지사의 내용은 실제의 금등지사의 내용이 아니라 정조와 정약용의 밀지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건 걸오도 금등지사에 대한 대강의 내용을 짐작하고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걸오는 매일 술에 도박을 일삼지만 존경각의 책들은 이미 다 읽었고 성균관 장수생이었던 정약용의 시를 외울 정도로 정약용의 사상을 따르고 있다. 걸오가 금등지사에 담긴 대강의 내용은 짐작하는 것 같지만 금등지사란 실체가 실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것으로 봐야 될 것 같다.

지금까지는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게 있는데 김승헌의 사직상소문을 10년 만에 정조에게 보낸 사람은 김승헌을 호종하다 죽은 성균관 서리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승헌은 이미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만약에 사망했을 경우를 대비해 필요한 조치까지 다 해놓았다는 얘기가 되는데 암호화된 사직상소문이 10년이 지나서야 정조에게 보내졌다는 사실은 미스터리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김승헌이 호송하던 금등지사는 실제의 금등지사였고 만약을 대비해 암호화된 사본을 남겨놓았을 경우와 실제의 금등지사는 어딘가에 숨겨 놓은 채 가짜 금등지사를 호송했을 경우다. 그런데 금등지사를 가져오라는 어명을 받고 월출산까지 내려갔다는 것은 아마도 실제의 금등지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 더 추론해볼 수 있는 경우는 병판이 금등지사를 가지고 있을 경우이다. 병판은 금등지사를 호송하는 김승헌과 문영신을 살해하라고 윤형구를 매수했으나 차후를 대비한 패로 금등지사를 손에 넣었을수도 있다. 드라마 초반부에 초선이 병판에게 내가 여기 와 있는 이유를 잊었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아마도 초선이가 이 금등지사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병판은 좌상과 사돈지간이 될 길이 완전히 없어지자 자기의 힘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며 먼저 윤형구를 없애려고 했는데 이것도 그런 추론을 해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병판이 가진 패는 헛패로서 무리한 사술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김승헌과 문영신을 살해한 증거는 좌상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실제의 금등지사라면 좌상을 상대로 협박은 할 수도 있을 것이나 좌상의 성정으로 볼 때 통하기는 힘들고 결국엔 노론 전체와 자기의 목줄을 조이는 것이 되고 가짜 금등지사라면 자기의 목줄만 죄는 꼴이 되고 만다. 가능성은 적어 보이나 하나의 추론은 가능하겠다.

*** 지금까지 드라마가 전개되어 왔던 상황을 보면 내용의 앞뒤가 잘 연결되지 않았고 당위성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소품으로 등장하는 내용들에 신뢰도가 떨어지기에 드라마의 내용을 토대로 추정해 본 위 글의 내용도 많이 다를 수 있다.



정조의 암살설과 연관되어 있는 금등지사에 관한 사실(史實)을 보면 금등지사와 그 내용의 일부를 공개한 사직상소문은 모두 채제공이 관여되어 있다. 영조는 당시 도승지였던 채제공을 따로 불러 어필(御筆) 한 통을 주면서 신위의 아래에 있는 요 자리 속에 간수하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영조의 금등지사'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정조가 남인인 채제공을 영의정으로 제수했으나 채제공은 3일 만에 사직상소문을 내면서 노론들의 처벌을 주장하고 나선다. 이 때 채제공은 사직상소문에 영조의 어필 즉 금등지사 가운데의 몇 구절을 인용했다고 한다. 기록에 나오는 금등 가운데의 구절은 '血衫血衫, 桐兮桐兮, 誰是金藤千秋, 予懷歸來望思'인데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직상소문에는 이와 관련지을만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첨언하자면 칼에 맞은 사람은 걸오가 맞다고 사진을 비교하면서까지 글을 써놨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걸오가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초선이라는 황당한 의견에서부터 하인수의 수족과 같은 강무라는 의견, 사직아이의 형이라는 의견, 정조의 호위무사라는 의견 참 다양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칼을 맞은 것은 문재신을 연기하는 유아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또한 그 사진을 놓고 보면 초선은 물론이고 강무나 사직아이의 형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하인수의 패거리인 임병춘이 하인수의 가랑이 사이를 기는 것은 어미의 약값을 대기 위한 찌질한 생각에서이지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다. 하지만 강무는 신념에 의해서 하인수를 추종하는 뼛속까지 하인수의 수족이다. 강무가 현장에 없었던 이유는 하인수가 아비인 병판과 금등지사에 대한 얘기를 해야 했기 때문인데 하인수와 같이 사술을 쓰는 자들의 특성은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직아이의 형은 도둑으로 몰린 김윤희의 누명을 벗기는 순두전강 에피소드로 등장한 것이지 배역에 연속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정조의 호위무사라면 홍벽서 복색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정조가 금등지사를 찾는 홍벽서라고 스스로 광고하는 낮은 수로서 이런 수준 낮은 수로는 찌질한 임병춘도 이길 수 없다.



두 사진 속의 인물은 눈매나 눈썹, 미간, 콧날 등에서 똑같은 동일인이다. 왼쪽은 종묘에서 칼을 맞을 때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운종가에서 가짜 홍벽서와 싸울 때의 모습인데 둘 다 걸오 문재신을 연기하는 유아인은 아니다. 종묘에서 칼을 맞은 사람은 걸오 문재신 역을 맡은 유아인은 아니나 걸오 문재신임은 확실히 맞다. 유아인은 아니지만 걸오의 무술장면을 대신하는 대역이기 때문이다. 운종가에서 가짜 홍벽서와 싸울 때에도 대역이 등장했었는데 그 때는 주목하지 않았다가 이번에는 주목하는 것은 횃불이 밝아서 알아보기가 쉬워서일수도 있겠다. 아마도 제작진들이 그 전에도 시청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데서 오는 자신감으로 인한 학습효과로 이번에도 대역을 등장시켰을 것 같다.



이 드라마에는 이런 장면들이 의외로 많이 나왔는데 걸오가 칼을 맞기 바로 직전에도 나온다. 김윤희가 존경각에서 종묘지도를 찢어서 밖으로 뛰쳐 나가고 하인수가 곧바로 뒤따라 들어왔는데 김윤희가 나갔을 때와 하인수가 들어왔을 때에 놓여 있는 책들과 놓여 있는 위치가 서로 다르다. 그 짧은 시간에 누가 책을 바꿔치기 했길래 전혀 엉뚱한 위치에 서로 다른 책들이 놓여 있을 수 있었을까? 걸오가 그 짧은 시간에 복면을 쓰고 활과 화살에다가 칼까지 준비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