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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구일중의 비열한 '몰카' 暗數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구일중은 외도해서 낳은 자식인 김탁구를 자기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욕심으로 김탁구를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뇌출혈을 일으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김탁구가 어쩔 수 없이 구일중의 대리인 자격으로 거성의 경영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구일중이 뇌출혈을 일으킨다는 상황은 완전히 구일중의 자작극인 것처럼 보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온전히 자작극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구일중이 의식불명에 빠질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구일중이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박변호사가 찾아와서 돌아가는 정황을 설명해 주고 당연한듯이 구일중을 불렀고 구일중은 눈을 떴었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본다면 구일중의 몸에 실제로 이상이 생긴 것은 구일중이 애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고 봐야 될 지 아니면 이것까지 계산하고 일을 벌였다고 봐야 될 지 여러가지 정황은 명쾌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꽤 어수선하게 흘러가고 있다.



구일중이 모든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며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을 잃은 척 연기하는 것은 대단히 비열한 암수(暗數)라고 하겠다. 그렇게 의식이 없는 척 몰래 숨어서 모든 가족들의 동태를 다 지켜보고, 박변호사를 통해서는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과 김탁구가 제역할을 잘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조진구를 통해서는 한승재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다. 이를 보면 구일중은 마치 필요한 곳마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아무도 모르게 지켜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구일중은 회사경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김탁구를 자기의 대리인 자격으로 회사에 밀어 넣은 것도 모자라 폐업을 고려해야 될 정도로 운영상태가 안좋은 청산 공장으로 내려보내 운영상태를 개선해내라는 것에 더해 신제품 개발까지 해내라는 지난한 과제를 떠안겼다. 그리고 조진구는 어쩌면 생명의 위협을 당할 수도 있는 한승재에게 보내 원하는 자료를 찾아 오라고 지시했다. 미덥지 않다고 생각했음인지 탁구를 위해서라는 걸 명심하라며 재삼 각인시키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누군가는 위험 속으로 밀어 넣고 자기는 침대에 누워서 모든 사람들을 속이며 조종하고 있는 구일중의 몰카 작전은 굉장히 비열한 것 같다.

구일중은 마침내 적이라 단정했던 자들 앞에서 스스로 몰카의 정체를 나타냈다. 구일중이 숨어서 은밀하게 노리고 있던 적들이 스스로 그 실체를 드러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일중의 몰카에 잡힌 것은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기에 구일중의 몰카 작전은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 셈이다. 왜냐하면 홍여사가 사망할 때 서인숙과 한승재가 그 자리에 있었고 그 둘이 홍여사의 사망에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은 몰카에 잡혔지만 그보다 더 추잡한 사실인 구마준의 출생에 관한 비밀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구일중이 성급하게 몰카를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몰카에 잡히지 않은 나머지 반쪽짜리의 실체인 구마준이 밖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극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구마준은 한승재가 자기에게 상처만 주는 아비라고 단정하고, 한승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짓밟아버리려는 계획을 세웠고, 마침내 신유경과 합작해서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자기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비밀의 절반을 뜻밖에도 구일중이 알아버렸고 이젠 구마준의 친부와 친모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소리치고 있다.

구마준은 한승재에 대한 복수를 구일중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구일중이 자기를 포함한 모두를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갖게 될 것도 같고, 그래도 친부와 친모인 그들이 끝내 구일중에게 짓밟히게 놔두지 않을 것도 같고, 자기의 출생에 대한 비밀까지 스스로 구일중에게 발설하면서까지 용서를 구하지는 못할 것도 같고, 그 모든 것을 단번에 정리하기 위해 또 다른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구마준이 어떤 선택을 할 지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시선이 하나 있다. 바로 신유경이다. 신유경은 혼인하던 날 밤에 구마준으로부터 구마준이 14년 동안이나 간직해 왔던 비밀을 듣게 되었는데 구마준이 신유경에게 구일중의 몰카에 잡힌 것과 같은 반쪽짜리만 얘기한건지 아니면 모두가 포함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신유경은 구마준이 정말로 나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구마준이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 두 번 다시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떻게든 끝을 보지 않고는 구마준과의 인연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구마준이 원하는 끝이 뭔지 가 보자고 결심한다.



신유경은 뒤틀리고 상처 투성이인 자기의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악세사리를 단다. 그리고는 행운의 모자라 여겨오던 모자를 휴지통에 버리는데 이것은 신유경이 꿈이라는 걸 갖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망가질지 어떨지 모르지만 끝까지 가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신유경은 서인숙에게 팔찌를 보여주며 구마준에게서 들은 얘기를 당사자인 서인숙만이 알아들을 정도로 말한다. 결국 다급해진 서인숙이 한승재와 대책을 논의하게 되면서 구일중의 몰카도 수면위로 올라와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몸 상태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구일중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홍여사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는 비밀을 들킨 서인숙과 한승재는 순순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지, 서인숙과 한승재에게 복수의 칼을 뽑아 들었던 구마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누가 다칠지 누가 망가질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끝까지 가보자고 했던 신유경은 거성가 사람들의 추잡한 싸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드라마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외에도 구일중은 조진구에게 한승재가 의심이 많은 사람이니 말한 자료를 찾을 때까지는 각별히 조심하라고 전화를 했는데 김탁구가 투명하게 거성을 이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으로 본다면 아마도 청산 공장을 비롯한 거성의 자금을 빼돌려왔던 한승재의 이중장부를 찾아내려는 의도가 아닐까 짐작된다. 한승재는 이미 김미순이 김탁구와 만나게 된 과정에 조진구가 개입했다는 정황을 확보하고 의심하고 있는 상황인데 조진구는 과연 구일중이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또한 구자경은 신유경이 갖고 있는 팔찌를 본 서인숙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는 구마준이 어릴 때 이상행동을 하던 것을 기억해내고, 구일중으로부터 진실을 알기 위함이며 무엇보다도 동생 탁구를 잘 보살펴줘야 한다는 다짐을 떠올리고는 김탁구를 찾아간다. 그 시각 김탁구는 청산 공장의 제품이 출하되지 못하는 미출(未出) 사태가 벌어져 곤경에 처하고 낙담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 구자경이 나타난다. 구일중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5년도 넘게 말단직원에서 부터 일을 배워 올라왔던 내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회장 대리인이 된 김탁구에게 왜 해답을 가르쳐줘야 되냐고 했던 구자경은 결국 또 다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김탁구를 돕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2회 분량이 남은게 맞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끝까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작가가 원하는 끝이 뭔지 모르겠지만 가 보자. 가다 보면 끝도 있겠지. 그 끝에 누가 다칠지 누가 망가질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 끝을 보기 전까진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가 보자. 가다 보면 알겠지. 내가 왜 그렇게 고장난 자전거처럼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