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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제빵왕 김탁구' 감동 없는 모자상봉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종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두 가지의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드라마를 끌어오던 몇 가지의 긴장과 갈등 중에서 하나는 해소되었고 또 다른 하나는 해소되어가고 있다. 신유경과 신유경의 아버지 신씨와의 사이에 쌓였던 오랜 갈등이 해소되었고, 조진구와 김미순 사이에 서로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쌓였던 오해와 갈등이 해소될 국면이 만들어졌다.

신유경은 구마준과 혼인을 하기로 결심하고 웨딩샾에 들러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있는데 여기에 한승재가 신유경의 아비인 신씨를 데리고 나타난다. 한승재가 신씨를 데리고 온 것은 서인숙이 한승재에게 신유경의 뒷조사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서인숙은 구마준이 신유경과 결혼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자 우선 결혼을 허락하는 척하면서 구마준의 마음을 달래고 신유경의 뒷조사를 해서 신유경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들려는 계략이다.

아비인 신씨가 등장하는 전혀 뜻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자 기가 막힌 신유경은 신씨에게 '나를 아느냐'고 묻고는 한승재에게 '이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다'라며 '이렇게까지 이 결혼이 막고 싶었다면 좀 더 그럴듯한 아버지로 찾아왔어야 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신유경은 그동안 아버지를 증오해 왔던 진짜 속내를 드러낸다. 신유경이 아버지를 감방에 쳐넣을 정도로 증오했던 것은 변변찮은 직업을 가진 초라하고 추레하기만한 그런 외양적인 것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나 술에 절어서 소리 지르고 화나 나 있었으며 툭하면 때리고 피가 나고 피멍이 들고 팔 다리가 부러져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던 아버지를 증오했던 것이다.



아비인 신씨에게 모질게 쏘아붙이고 드레스 룸으로 들어간 신유경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맞던 기억들이 환청으로 들려오고 그 자리에서 실신해버린다.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 신유경의 말에 충격을 받은 신씨는 신유경이 실신한 것을 보면서도 다가서지 못한다. 한승재는 신씨에게 약속했던 돈 봉투를 건네주고 나가고 신씨는 그 봉투를 받아 들고 청산으로 돌아간다.

한편 김탁구는 청산 공장에 내려갔다가 거기서 경비로 일을 하고 있는 신씨를 만나 안부를 묻지만 신씨는 유경이 소식이 귀에 들리는 날엔 같이 죽는 날이라고 험한 말들을 쏟아낸다. 그런데 한승재가 신씨를 데리고 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 김탁구는 신씨를 막아서며 지금껏 유경이한테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한 적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또 다시 유경이 인생에 끼어들려고 그러냐며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유경이한테 아버지답게 굴어달라고 애원한다. 그렇지만 신씨는 김탁구를 밀쳐내고 한승재의 차를 타고 신유경 앞에 나타나게 된다.

한승재로부터 돈을 받고 청산으로 다시 내려온 신씨는 공장 직원들의 돈을 훔치다가 걸려서 몰매를 맞는데 공장에 도착한 김탁구가 이를 목격한 김탁구는 신씨가 훔친 돈을 대신 갚아준다. 그리고는 신씨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면서 유경이 아버지이면서도 하나뿐인 불쌍한 딸의 인생에 자꾸 끼어들어서 방해하는게 부끄럽지도 않냐고 말한다. 또한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 신씨의 손에 쥐어주며 다른 사람 돈에 손 대지 말고 돈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타이른다.



신씨는 설교까지 들어가면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비키라고 밀치며 공장안으로 간다. 거기서 신씨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내 아버지가 아니라 절규하던 신유경의 말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김탁구가 상처에 붙여 준 붕대와 손에 쥐어 준 돈을 내려다보며 신씨는 '유경이는 아저씨를 아버지로 둔 죄밖에 없다'던 김탁구의 말을 떠올리며 그제서야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사람이 개과천선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는 생각처럼 간단한게 아니라고 보지만 어쨌든 그렇게 신씨는 과오를 뉘우치고 구마준을 찾아 와 신유경 같이 똑똑하고 잘난 딸을 둔 적이 없으니 신유경의 친아버지가 아니니까 신유경을 무시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한승재로부터 받은 돈봉투를 도로 물러달라며 구마준에게 돈봉투를 건네주고 신유경과는 진짜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니까 둘이 행복하게 잘 살라고 말하고 돌아간다.

이것을 숨어서 듣고 있던 신유경은 신씨의 언행이 전혀 뜻밖이고 신씨의 변화가 의아하기에 신씨를 따라나와 아버지가 아닌 '저기'라 부르며 왜 그랬냐고 물어본다. 신씨는 그 망할놈의 김탁구가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 애비처럼 굴라는 말에 열받아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애비 노릇 한 번 한 것이니까 애비 같은 거는 없다치고 잘 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볼 지도 모르니 얼른 들어가라며 처음으로 신유경의 아버지 노릇을 하고 돌아간다.



닥터윤으로부터 김미순의 얘기를 들은 김탁구는 병실로 들어오지만 김미순은 닥터윤에게 여행을 다녀올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모를 남기고 이미 퇴원하고 없다. 김탁구는 김미순이 자주 가던 곳이나 평소에 가고 싶다던 곳을 말해주면 찾아보겠다고 하는데 닥터윤은 아무한테도 행선지를 남기지 않았고 김탁구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까봐 만나지 않을 생각일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김탁구는 닥터윤에게 김미순과 연락이 닿으면 전화해 달라며 명함을 건네준다. 연락 가능한 전화는 모두 빼곡히 적어 넣은 명함을 보니 예전에 이산가족찾기 방송이 생각난다. 조금이라도 단서가 될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적어 넣은 이산가족들의 절박함과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그들의 애달픔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방송이었다. 어떠한 연유로 헤어졌든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서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닥터윤은 공주댁이 김미순과 같이 있을테니 조만간에 연락이 올거라고 낙관하고 있었으나 청소원들의 캐비넷 안에서 공주댁이 결박된 채 발견되자 김탁구에게 연락을 취한다. 김미순이 퇴원수속한 시간대의 폐쇄회로를 조사하는데 그 폐쇄회로를 보던 김탁구는 조진구가 김미순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양인목을 찾아 와 조진구의 행방을 묻는다. 한승재가 조진구 여동생의 병원비를 대줬고 조진구가 한승재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김탁구는 낙담한다. 한승재의 행방을 알아 낸 김탁구는 한승재가 있는 별장으로 달려간다.



김미순은 병실로 들어 온 조진구를 보고 놀라지만 닥터윤에게 메모를 남기고 퇴원수속까지 마친 채 조진구를 따라나선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구일중이 또 다시 조진구를 보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런데 조진구가 한승재의 지시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어 이제 겨우 잊을만한데 왜 또 나타나 괴롭히는 거냐며 따져 묻는다. 조진구는 쉬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와 주위의 동태를 살핀다.

한승재가 김미순을 찾아 와 주식양도각서를 내밀며 마지막이니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사인하라고 재촉한다. 김미순은 각서를 찢어 버리고 어쩔거냐고 한승재를 노려보고 한승재는 끌고 가라고 지시한다. 한승재의 수하들이 김미순을 끌고가려 하자 조진구가 가로막아서며 14년 전에 하지 못했던 마무리를 직접 하게 해달라고 하고는 김미순을 데리고 나간다.

이 때 김탁구가 도착해서 김미순을 부르고 이를 듣고 놀란 김미순이 탁구를 부른다. 김미순의 목소리를 들은 김탁구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쫓아가고 차에 태워지고 있는 김미순을 발견하고 출발하는 차를 뒤쫓는다. 그렇게 김탁구와 김미순 두 모자는 14년 동안이나 오매불망 찾아헤매던 엄마와 아들을 만나게 되는데 또 다시 14년 전과 마찬가지로 김미순은 어디론가 끌려 가고 김탁구는 그런 엄마를 뒤쫓는 기막힌 형국이 된 것이다.



이것은 두 모자의 상봉이 굉장히 감동적일거라는 기대를 완전히 배신한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애초부터 두 모자의 상봉장면에 감동을 의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 모자의 상봉장면에서 감동 대신에 작가가 선택한 것은 바로 결자해지(結者解之)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조진구가 김미순을 차에 태우고는 김탁구가 쫓아오는 시간에 맞춰 시동을 걸고 충분히 따라잡을 거리를 두고 차를 운행하는 것으로 보면 조진구는 한승재 일행의 추격을 따돌리고 김탁구와 김미순이 상봉하게 만들어줄 요량인 것 같다. 작가는 조진구가 14년 전에 김미순을 납치함으로써 묶었던 매듭을 조진구로 하여금 다시 풀게 함으로써 그들간에 해원(解冤)하게 하자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이러한 선택은 단순히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함으로써 감동을 주는 것보다 오히려 더 의미가 크고 어쩌면 그게 더 감동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진부한 소재들을 가지고 고비고비마다 국면을 전환하는 작가의 능력은 참으로 탁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