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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진짜 피해자는 조진구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서인숙과 한승재는 온갖 야비하고 저열한 수단방법을 동원해 사사건건 김탁구를 방해하고 괴롭힌다. 서인숙과 한승재는 구일중이 외도하여 만든 자식인 김탁구가 거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그들 사이에서 난 자식인 구마준을 거성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김탁구를 거성의 후계자로 앉히려는 구일중, 김탁구를 몰아내고 구마준을 거성의 후계자로 삼으려는 서인숙과 한승재, 이들의 대결은 한마디로 불륜과 불륜의 대결 곧 악과 악의 충돌이기에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각각의 자식들인 김탁구와 구마준을 선악의 대결구도로 설정해서 악과 악의 충돌이라는 면을 교묘하고 희석시키고 비켜감으로써 시청자들의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구일중과 서인숙, 한승재의 대결은 거성의 후계구도를 놓고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는데 이제 그 싸움은 김탁구 대 구마준의 대결로 옮아가고 있다. 이러한 대결 과정에서 김탁구가 서인숙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해왔기 때문에 김탁구가 유일한 피해자인양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 모두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김탁구와 구마준은 애초부터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 추악한 싸움에 끼어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정말 피해자는 이 추악한 싸움을 벌여왔거나 새롭게 끼어드는 자들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싸움에 휘말리게 된 조진구라고 판단된다.



조진구는 손목에 바람개비 문신을 하고 있기에 청산에서 바람개비로 불리며 악명을 떨쳤던 깡패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력을 가진 조진구가 추악한 싸움에 휘말리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진구에게는 이 싸움에 휘말리게 될 수 밖에 없는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조진구에게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인 여동생이 있는데 이틀마다 한 번씩 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위중한 병을 앓고 있다. 이러한 여동생의 병원비를 충당해야 되는 조진구는 무엇보다 절실하게 돈이 필요하다. 조진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구일중과 한승재는 그들의 추잡한 욕심을 충족시키려는 싸움에 끌어들여 이용한 것이다.

조진구와 연관지어 본다면 한승재보다는 구일중이 더 비열하고 잔인하다고 할 수 있다. 구일중은 김탁구를 온전히 자기 아들로 삼고 거성가의 장남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김미순을 김탁구에게서 완전히 떼어 놓으려고 조진구에게 김미순을 납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팔봉을 만나 옛날 일을 청산하고 제빵일을 하며 잘 살고 있는 조진구를 찾아 와 또 다시 자기를 위해 일을 해달라고 손을 내민다. 조진구가 이를 거절하자 구일중은 조진구가 김탁구를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탁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김탁구를 위해서 한번만 더 일을 해달라고 유혹한다.

사실 조진구로서는 김미순이 절벽에서 추락한 것에 대해 혼자서 죄책감을 갖고 괴로워하기에는 억울한 일이다. 조진구는 한승재의 사주를 받은 신유경의 아비가 김미순을 겁탈하는 것을 막고 그러한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해 김미순을 납치하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김미순이 지레 짐작만으로 도망가려고 하다가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고 예측할 수 없었던 조진구로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진구는 김탁구가 김미순을 찾아 헤맨 12년 동안 괴로워했고 팔봉을 만난 후부터는 손을 씻고 건실하게 살아왔다.



김탁구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조진구는 김탁구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용서해 달라 빌고 또 빌었다. 거기에 절벽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빨리 달렸다면 조금만 더 빨리 김미순의 손을 잡아챘어도 잡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자신을 책망했다. 그리고 원망할 자격조차 없기에 설사 죽인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말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김탁구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조진구가 아니라 바로 구일중이다. 이 모든 엄청난 일은 다 구일중으로 인해 생겨났다. 구일중이 조강지처가 아닌 다른 여자를 탐하지 않았다면, 김탁구에게서 김미순을 떼어놓으면서까지 자기 자식으로 삼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뇌출혈이라는 자작극을 벌이면서까지 김탁구를 거성의 후계자로 삼으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김탁구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구일중을 아버지로 존경할 수 있을까? 이것은 김탁구와 구마준을 선악의 대결구도로 설정한 시나리오의 치명적인 허술함이기에 드라마에서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김탁구를 진정으로 아끼게 된 조진구는 이러한 사실들을 김탁구가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구일중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김탁구의 존재를 알리면서 '엄마와 헤어지게 만든 장본인이 다른 이도 아닌 자기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찌될 것 같냐'고 묻고는 '이제 겨우 웃을 수 있게 된 탁구의 얼굴에서 더 이상 상처받는 표정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구일중이 팔봉빵집으로 찾아 와 원망이나 미움을 감수하고서라도 탁구를 꼭 만나야겠다고 하지만 조진구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기에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조진구는 김탁구가 자기 엄마를 납치한 범인이 조진구라는 것을 알고서도 팔봉제빵집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사고 때 몸을 던져 큰 화를 당하는 것을 막아주었던 당시부터 묵묵히 김탁구를 돕고 있다. 조진구가 이렇게 하게 된 이유는 김미순에 대한 죄책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김탁구가 누굴 함부로 미워할 수 없는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감화되었기 때문이다.

제빵실 폭발사건으로 실명의 위기에 처했던 김탁구가 그로부터 생긴 트라우마에 시달리자 조진구는 '더 이상 빚 진 감정으로 살 수가 없으니 도울 수 있게 해 달라'며 김탁구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조진구는 결연한 표정으로 '두 번 다시 다치게 하지 않을거라'고 말하며 김탁구가 오븐을 열 수 있게 손을 잡아끈다. 마침내 김탁구가 오븐을 열게 되자 조진구는 마치 친형처럼 김탁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격려해주고 김탁구도 드디어 마음을 열고 그렇게 그 둘은 쌓였던 감정을 털어내게 된다.

경합을 앞두고 누군가 밀가루에 소다를 넣는 사건이 발생하고 모든 의심을 김탁구가 받게 되어 제빵실 출입금지까지 당해버렸을 때 조진구는 그 사건의 범인이 고재복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는 고재복을 김탁구 앞에 데리고 가서 살릴지 죽일지 팔봉 식구들 앞에서 죄상을 밝힐지 원하는대로 해주겠다고 한다. 김탁구는 고재복을 끌고 한승재를 찾아 가 한승재같은 사람한테 돈 몇 푼 받고 영혼 팔아 먹는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사건은 무마된다.



팔봉제빵집으로 돌아와서는 고재복에게 오늘 거성에 가서 본 거 들은 거 니 머리속에서 다 지우라고 함으로써 김탁구가 구일중의 장남이라는 사실이 팔봉식구들에게 알려지지 않게 해준다. 그리고 김탁구가 밀가루에 소다를 넣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제빵실 출입금지까지 당해버려서 머리가 복잡하다고 호소하자 '경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동기부여를 하고 격려해준다.

조진구는 김탁구를 위해 이제 또 다시 추악한 싸움의 구렁텅이로 자신을 몰아 넣었다. 팔봉제빵집이 억울하게 문을 닫은 내막을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김탁구를 위해 구일중이 내민 손을 잡으려고 찾아 간 것이다. 조진구가 한승재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면 구일중의 계략은 조진구가 한승재의 음모를 알아내고 막아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꼭 필요한 순간 날 위해 한번만 움직이면 된다'고 했던 한승재가 드디어 조진구에게 일을 맡긴다. 거성의 3.8 프로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실소유주를 아무도 모르게 납치해 오라는 것이다. 조진구는 '탁구와 관계된 일'인지를 물어보는데 한승재는 탁구와 관계된 일이니 가보면 안다고 한다. 조진구는 한승재가 지시한 사람을 납치하기 위해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 사람은 다름아닌 14년 전에 자기의 실수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해왔던 탁구의 엄마 김미순이다.



그 후의 이야기는 몇 가지를 추론해 볼 수는 있지만 그 중에서 확률이 높은 것은 2~3 개월 안에 각막 이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눈 상태가 안 좋은 김미순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얘기가 여기까지 진행된 것으로 보면 조진구에게 하나뿐인 여동생의 병환이 치유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그녀의 각막을 김미순에게 이식한다는 전개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진구는 빚 진 감정을 털어내고 김미순과 김탁구 역시도 남은 앙금을 털어낸다는 얘기가 아닐까 짐작된다.

결국 조진구는 끝까지 돈과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자들의 추잡한 싸움에 말려들어 이용당하는 셈인데 권력과 자본의 힘에 희생되는 사회적 약자가 바로 조진구다. 조진구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약점을 이용해 김미순을 납치하라 지시했던 구일중은 김미순 뿐만 아니라 조진구에게도 진정으로 용서를 빌어야 된다. 그런데도 구일중은 조진구를 불러내 눈을 부라리고 언성을 높이며 위협하고 또 다시 조진구가 필요하게 되자 야비하게 탁구를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일을 해달라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미국이나 일본쪽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해 주고 들어가는 비용은 전부 다 해결해주는 조건을 내건 한승재의 집요한 유혹을 뿌리쳤던 조진구는 또 다시 질곡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조진구가 청산에서 바람개비라 불리며 깡패 생활을 했던 것과 아무리 절박하게 돈이 필요하다고는 하나 김미순을 납치한 행위는 명백한 범죄행위이고 그에 상응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조진구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이용당했던 피해자일 뿐이고 조진구보다 더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구일중과 서인숙 그리고 한승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