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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팔봉의 상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팔봉은 수하생인 구마준이 제빵실에 불을 지르고 발효일지까지 훔쳐간 것을 알게 되고 또한 한 때 형님 동생하며 봉빵을 만드는데 일조했던 춘배가 등장해서 팔봉의 발효일지는 원래 자기 것이었으나 팔봉이 훔쳐다가 제빵 명장의 명성을 얻었다며 팔봉의 제빵 명장 타이틀을 박탈하기 위한 이의신청까지 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면서 낙담한 끝에 결국 쓰러져 자리에 눕고 만다. 팔봉의 제빵 명장 타이틀과 명성이야 김탁구가 봉빵의 시연을 성공리에 마침으로써 지켜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젠 김탁구가 마치 만병통치약이 되버린듯한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대를 걸었던 제자와 한 때 죽마지우로서 절친한 관계에 있었던 동생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은 팔봉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
 
마준은 팔봉제빵집 2차 경합에서 춘배가 알려준 레시피대로 봉빵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지만 팔봉은 구마준을 탈락시킨다. 구마준은 과제대로 이스트없는 방을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왜 탈락이냐며 팔봉에게 항의하는데 팔봉은 정말로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재차 물어보지만 구마준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팔봉은 그렇다면 직접 보는데서 처음배합부터 다시 해도 똑같이 만들 수 있다면 인정하겠다고 한다. 춘배가 구마준에게 알려준 레시피는 최소량의 이스트를 넣고 거기에 전분을 같이 넣어서 이스트가 들어간걸 모르게 하는 속임수다. 팔봉은 이러한 춘배의 레시피를 알고 있기에 구마준의 속임수를 눈치 채고 재차 구마준에게 진실을 말할 기회를 준 것이었는데 구마준이 끝내 부인함으로써 팔봉은 구마준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된 것이다.



구마준은 춘배로부터 '팔봉의 발효일지를 가져와 팔봉의 명장 타이틀과 명성을 깨뜨리고 지난 2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든 팔봉에게 같이 복수하고 싶지 않냐'며 '그렇게만 해준다면 봉빵에 관한 모든 걸 전수해주겠다'는 유혹을 받고 팔봉제빵집으로 돌아와 팔봉의 방문을 두드린다. 구마준은 팔봉에게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팔봉은 '친구를 해하려는 것도 모자라서 선생인 나까지 속이려 했다'며 '굳이 내쫓지는 않겠지만 인정서를 받고 싶다면 다시 2년을 기다려야 할테지만 지난 2년보다 훨씬 더 감내할 것이 많아질거라'고 말한다.

팔봉의 방에서 나오던 구마준은 구일중이 김탁구를 찾아 와 만나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서 결국은 춘배가 내민 유혹의 손길을 잡게 된다. 경합에서 사용하기 위해 김탁구와 함께 막걸리종을 담아두었던 독을 깨뜨리고 휴지통에 불을 지르고는 불이 나 혼란스러운 틈을 타 팔봉의 방으로 들어가서 팔봉의 발효일지를 훔쳐서 팔봉제빵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신유경의 집으로 찾아가 쓰러져 눕는다. 신유경과 구마준, 이 둘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아픈 상처를 확인하게 될 뿐으로 결코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이 둘의 조합은 불행의 씨앗을 틔우는 것일 뿐이다.

한편 춘배는 去者必返이라 쓴 종이에 싼 돌멩이를 팔봉제빵집에 던지고, 구마준을 통해 자신이 만들었던 봉빵의 레시피로 팔봉에게 다시 돌아왔음을 알렸다. 춘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봉빵은 팔봉의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이라며 제빵협회에 진성서를 낸다. 이 진정서 내용을 통보하러 온 제빵협회 직원은 이의제기는 일주일 안에 해야 된다고 한다. 만약 이의제기를 하게 된다면 제빵협회에서 기술고문들이 봉빵에 대한 재심사를 하게 될 것인데 재심사가 이루어지는 자리에서 팔봉이 직접 봉빵 시연을 해줘야한다고 통보하고 간다. 팔봉은 상심한 끝에 결국은 쓰러져 자리에 눕고 만다.



제빵 초보 김탁구가 팔봉의 명성을 지켜주겠다며 제빵협회에 이의신청을 하고 봉빵을 재현해내겠다고 나섰고 팔봉제빵집 식구들이 여기에 동참한다. 팔봉측에서 이의신청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춘배는 팔봉과의 정면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고 벼르지만 팔봉의 제자들이 나설 것으로 보이자 구마준에게 봉빵의 시연에 나서달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됨으로써 팔봉의 제자인 김탁구와 한 때 팔봉의 제자였다가 춘배의 편으로 돌아선 구마준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봉빵의 시연이 시작되는 순간에 팔봉이 의식을 회복했는데 이것이 어떤 변수가 되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김탁구가 시연에서 구마준을 누르고 팔봉의 제빵 명장 타이틀을 지켜낸다면 김탁구는 단숨에 제빵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드라마의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팔봉과 김탁구 대 급조된 춘배와 구마준의 대결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단 며칠만에 김탁구의 오감을 일깨워서 팔봉이 7년의 시행착오끝에 찾아낸 발효점을 알아내 봉빵의 시연에 나선다는 설정은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김탁구가 만약에 시연에서 봉빵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드라마의 재미 이전에 하나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춘배와 구마준은 재주는 있으나 욕심이 많고 집착이 강해 가진 재주를 다른 사람을 이롭게하는데 쓰지 못하고 속임수를 써서라도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만 한다. 춘배는 돈에 대한 욕심이라면 구마준은 오로지 경합에서 김탁구를 이기고 팔봉의 자필인증서를 받아내 구일중에게 인정을 받고자하는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욕심과 집착이 많은 사람들은 오만함으로 똘똘 뭉쳐있기에 누군가가 잘못을 지적해준다면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뉘우치려고 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불만을 품고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팔봉이 제빵 명장으로서 이런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얻게 하겠다는 팔봉의 선택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다.



이전에 팔봉제빵집 제빵실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팔봉이 발효일지를 꺼내 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때 카메라는 팔봉의 손목에 난 상처를 같이 보여주었다. 팔봉의 상처가 봉빵과 어떤 사연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구마준이 제빵실에 불을 지르고 야반도주한 것을 본다면 아마도 춘배가 팔봉을 떠날 때 구마준과 마찬가지로 불을 질렀고 팔봉이 소화하는 과정에서 손목에 상처를 입었던게 아닌가 짐작된다. 드라마에 그런 장면을 직접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악순환은 되풀이된다고 춘배의 유혹에 넘어간 구마준이 춘배가 했던 것과 동일한 짓을 저질렀을거라고 보는 것이다. 가스 누출 사건이 있었을 때 왜 그랬냐보다 누가 그랬냐를 밝히는게 시급하다고 했던 팔봉의 말도 이를 뒷받침하는 것 같다.

그리고 팔봉은 이번에는 예전에 형님 동생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춘배와 가능성이 있어보였던 수하생 구마준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으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는데 팔봉은 춘배와 구마준의 떡잎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잘못이 있다. 또한 사람은 살다보면 순간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으나 곧바로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도 무방한 철칙으로 여겼던 것도 잘못이었다고 하겠다.

팔봉이 춘배와 구마준에게 한치의 깨달음도 주지 못한 것은 자신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한다고 팔봉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팔봉을 믿고 따르는 수하생들이 많고 김탁구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수하생이 발 벗고 나서서 팔봉의 제빵 명장 타이틀과 팔봉의 명성을 지켜주려고 애쓴다는 것은 팔봉에게 위안거리가 될 수는 있을테지만 팔봉의 마음에 생긴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기는 힘들 것 같다. 팔봉의 손목에 난 상처야 때가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에 생긴 상처는 쉬이 낫지 않는다.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以毒治毒)'고 하듯이 사람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본다면 결국 김탁구가 팔봉의 상처까지 어루만져주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봐야 될 것 같다.


덧) 지금보니 팔봉이 드라마에서 하차한다는 기사가 있군요. 25일 방송되는 23회분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합니다. 제작진들이 이런 스포일러를 흘리는건 좀 납득하기 어렵네요.

봉빵 시연에 무리수를 둔 것은 팔봉의 하차를 염두에 두었던 모양입니다. 위의 본문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김탁구가 시연에 성공해서 팔봉의 명장 타이틀을 지킴과 동시에 그로 인해서 제빵업계에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높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그런 정도의 전개가 예상됩니다.

팔봉이 드라마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은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