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상자 보기/드라마투르기

'제빵왕김탁구' 봉빵엔 어떤 사연이 있길래

드라마 '제빵왕김탁구'에서 2차 경합이 시작되는 과정을 보면 1차와 2차의 경합주제들이 일관되게 하나의 귀결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봉빵의 레시피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하게 한다. 이스트 없이 재미있는 빵을 만들어야 하는 김탁구와 구마준은 빵을 부풀리는 재료로 무엇을 선택할지는 모르겠으나 봉빵에 사용되는 발효종은 막걸리일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해봤었다.(이전 글 "경합주제의 귀결은 레시피" 참조)

2차 경합에서 김탁구와 구마준이 이스트 없이 무엇으로 빵을 부풀게 할지를 미리 예상해보자면 제빵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우수한 실력을 보유한 구마준은 교과서적인 발효종을 사용할 것이고 제빵 지식이나 실력면에서 거의 백지상태나 마찬가지인 김탁구의 경우는 아마도 막걸리를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팔봉선생이 허용한 2차 경합의 기한은 15일인데 김탁구가 막걸리 외에 더 좋은 것을 찾을거라는 기대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차 경합 시에 우연히 시장통에서 만난 모자에게서 도움을 받았듯이 2차 때에도 마찬가지로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막걸리로 빵을 부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예상이 더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자꾸 막걸리를 연상하게 되다 보니 도대체 봉빵과 막걸리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봉빵엔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팔봉선생은 더 이상 봉빵을 만들지 않는건지 또한 양인목은 왜 극구 봉빵의 레시피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하는지 궁금증이 커진다.

일단 봉빵과 관련해서 드라마가 흘린 단서를 정리해본다. 봉빵은 '한 때 나라의 대통령까지 그 빵맛 때문에 팔봉선생 가게에 왔었다는 아주 아주 유명한 빵'이지만 팔봉선생이 더 이상 봉빵을 만들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 빵을 좋아하시던 분이 돌아가셨다거나 그 빵의 발효종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와 같은 여러가지 설만 분분할 뿐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팔봉선생과 양인목 둘 밖에는 없다.



봉빵은 팔봉선생이 새로 개발한 발효종빵인데 겉으로 보기엔 일반빵과 다를게 없어보인다. 팔봉선생의 수제자인 구일중조차도 봉빵을 딱 한 번 먹어봤던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봉빵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봉빵에 사용된 발효종은 팔봉선생이 즐겨 먹던 것에서 뽑아 낸 것인데 구일중이 먹어 본 빵 중에서 가장 품위있는 맛이었다고 극찬할 정도로 좋은 향과 맛을 지녔다. 또한 풍미가 강하고 부드러우며 한국인 체질에 맞도록 만들어 소화력도 강하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봉빵의 레시피가 공개되면 팔봉선생의 명성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봉빵에 사용되는 발효종은 막걸리일거라는 추정을 했으니 봉빵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역시도 막걸리에서 단서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먼저 드라마의 시대를 본다면 김탁구가 유년기를 보냈던 때는 1960년대였고 팔봉제빵집으로 들어오던 때는 1987년 4월 13일에서 1987년 6월 29일 사이의 어느 날이었다. 1987년도에 팔봉선생은 이미 봉빵을 만들지 않았고 팔봉제빵점 식구들 중에서 양인목을 제외하고는 봉빵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본다면 팔봉선생이 봉빵을 만들었던 때는 1960 ~1970 년대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1960년대에 막걸리와 관련한 재미있는 사실(史實)이 있었는데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쌀로 술 빚는 것을 막는 순곡주 제조 금지령을 내렸다. 또한 술을 빚는 데 있어 발효를 돕기 위해 첨가되는 것이 누룩 즉 국(麴)을 획일화하고 대량생산함으로써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 누룩의 종류가 약간씩 달랐던데서 생긴 막걸리 맛의 차이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쌀로 막걸리를 만드는 게 금지되었던 때에는 보리, 옥수수 등 다른 재료를 이용해 막걸리를 만들어 먹었다.

이 당시에 또 재미있는 한가지는 일명 '카바이트 막걸리'라는 것으로 막걸리의 정상적인 발효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카바이트를 함께 부어 만든 막걸리였다. 카바이트는 자연숙성 기간을 단축시키기는 하나 이것을 섞어 만든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머리도 아프고 트림도 나고 엄청난 숙취에 시달려야 했다. 막걸리를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거나 '숙취가 심하다'는 등의 오해가 생긴 것은 자연숙성을 시키지 않고 카바이트와 같은 화학제품을 첨가해서 만든 막걸리였기에 생긴 오해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카바이트 막걸리'가 주를 이루었으나 오늘날의 막걸리는 자연숙성을 시켜서 만들기에 이런 오해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추정을 해보자면 팔봉선생은 1960년대에 즐겨 마시던 보리 막걸리를 발효종으로 봉빵을 만들었고 이것이 소문이 나면서 대통령까지 가게에 드나들었다. 여기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 하나가 논두렁에서 바지를 걷어올리고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것이기에 이런 추정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팔봉선생은 왜 봉빵을 더 이상은 만들지 않을까? 아마도 막걸리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보이는데 예상 가능한 문제는 두 가지 정도다. 첫째는 막걸리는 금세 변질되기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 유통하기가 어려웠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맛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빵의 맛을 일관적으로 유지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둘째는 팔봉선생의 수하생 중에 누군가가 불만을 품고 막걸리에 카바이트와 같은 화학제품을 첨가함으로써 그로 인한 부작용이 생겼다. 그 외에 팔봉선생의 팔목에 난 상처도 하나의 단서가 될 지도 모르겠다.

첫째의 경우는 팔봉선생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고 그렇지 못했다면 팔봉선생의 성정으로 볼 때 아마도 제빵명인의 지위를 스스로 버렸을 거라고 보이기에 이 경우는 일단 제외해야 한다. 둘째의 경우는 드라마 속의 몇 가지 단서를 조합해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어떤 연관성을 부여해 볼 수도 있다.



팔봉선생은 베이킹 파우더와 같은 화학첨가물조차도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고재복이 밀가루에 소다를 섞은 사건이 있었을 때 허갑수가 "옛날부터 빵 배우던 수하생들이 쫓겨날 때 공장장을 물먹이려고 장난질하던게 밀가루에 소다를 섞어 발효가 일어나지 않게 만들었다"는 말을 했었다. 또한 양인목은 처음에 김탁구를 팔봉제빵집에서 내쫓으려고 했는데 이를 만류하는 조진구에게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탁구는 빵에 대한 예의가 없고 그걸 용납 못할 뿐"이라고 했었다. 이것을 조합해 보면 팔봉선생의 수하생 중에 누군가가 불만을 품고 빵의 발효종으로 쓰일 막걸리에 어떤 화학제품을 첨가함으로써 그로 인한 부작용이 생겼을 거라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김탁구가 1차 경합에서 보리와 옥수수를 넣은 보리밥빵을 만들어내자 팔봉선생은 "보리밥과 옥수수는 보릿고개를 넘기던 우리 서민들한텐 거의 주식과도 같았던 음식이었으며 그야말로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배고픔을 달래주던 그런 음식"이라며 보리밥빵에서 "가장 좋은 향이 난다"고 했었다. 그리고 혼자서 보리밥빵을 먹으며 재미있고 재미있는 맛이라고 했었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보면 팔봉선생은 1960년대에 보리막걸리를 즐겨 마셨고 우연히 이것을 발효종으로 빵을 만들었는데 재미있게 빵이 만들어졌고 좋은 향과 재미있는 맛이 나는 봉빵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김탁구가 보리와 옥수수로 빵을 만들었는데 아마도 그 향이 봉빵과 유사하지 않았을까 짐작되고 팔봉선생으로서는 이 사실이 또한 재미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