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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김탁구' 탁구는 있고 마준은 없는 것

드라마 '제빵왕김탁구' 17부에서는 팔봉제빵집의 1차 경합이 끝났고 경합에 참가했던 네명 중에서 고재복을 제외한 셋이 1차 경합을 통과했다. 드라마 '제빵왕김탁구'는 1차 경합이 치러지는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김탁구와 구마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대비시키며 보여주고 있는데 그 둘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김탁구는 서인숙이 구마준을 찾아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서태조가 구마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당혹스러워한다. 김탁구는 서인숙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하지 않고 서인숙은 김탁구를 알아보지 못한 채 돌아가려고 하는데 양미순이 나오면서 김탁구를 부르는 바람에 서인숙도 김탁구를 알아버리고 만다.

방으로 들어온 김탁구와 구마준은 어색한 분위기속에서 대화를 시작한다. 2년 동안이나 단 한번도 서태조가 아니라 구마준임을 얘기할 생각이 들지 않았냐는 김탁구의 질문에 구마준은 대체 뭘 기대했냐며 자신한테 김탁구는 예나 지금이나 불쾌하고 재수없는 거지새끼에 불과하다고 예전처럼 까칠하게 쏘아붙인다. 김탁구는 '내가 김탁구이고 너가 구마준이라서 나랑 경합에서 붙자고 하고 유경이와도 못만나게 했던거냐'며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묻는데 구마준은 '그냥 웃는 것도 싫었고 말하는 것도 싫었고 까부는걸 볼 때마다 내 속이 뒤집히는 것처럼 싫었다'고 한다.

한편 경합에서 김탁구는 외양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보리밥빵을 만들었고 구마준은 빵의 꽃이라 불린다는 외양이 세련되고 화려한 패스츄리를 만들었다.

김탁구는 빵에 보리밥과 옥수수를 넣은 것은 그것을 생각하고 넣은건 아니라 배고팠을 때 어린아이가 줬던 주먹밥도 넣어보고 싶었고 재복선배랑 미순이, 태조까지 빵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다 넣어보고 싶었다며 비록 볼품은 없고 못생겼지만 그래도 누군가한테 틀림없이 가장 배부른 빵이 되줄수 있을거라 믿으면서 만들었다고 보리밥빵을 만든 이유를 설명한다.



구마준은 패스츄리가 배부른 빵은 아니지 않느냐는 팔봉선생의 질문에 반죽을 할 때 유지와 함께 고구마 크림을 사이사이에 같이 발라서 열량이나 포만감에서 절대 뒤쳐지지 않도록 했으며 마지막으로 고구마 맛탕과 너트를 가미해 영양면에서도 만족할만한 건강식으로 저만의 배부른 빵을 만들었다고 대답한다.

김탁구와 구마준이 만든 빵은 그 둘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이는 이전 글에서 경합에 사용할 재료비에 대한 그 둘의 반응과 차이를 비교해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인데 김탁구는 어찌 보면 대책없다고 할 정도로 감성적이고 온화하다면 구마준은 이성적이고 냉정하다. 또한 구마준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한다면 김탁구는 추상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김탁구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호의적이라면 구마준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이고 적대적이다.

이러한 차이점을 팔봉선생은 김탁구와 구마준이 만든 빵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상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구마준의 빵은 '맛이나 외향은 화려한데 어딘지 좀 차갑다'고 평가했고 김탁구의 빵은 '모양새나 기술적으로나 가장 뒤쳐져 보이지만 네 명의 빵 중에서 가장 좋은 향이 난다'고 평가한 것이 그것이다.

김탁구는 소위 결손가정이랄수 있는 미혼모인 김미순의 손에서 자랐는데 물질적인 풍요는 부족했지만 김미순의 헌신적인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구마준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홍여사와 구일중의 엄한 질책과 서인숙의 과잉보호 사이를 오가며 성장했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부모들이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며 키웠는가의 여부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구마준이 지금처럼 부정적이고 적대적으로 성장한데는 특히 서인숙의 과잉보호의 탓이 크다. 서인숙은 구마준을 자기의 어긋난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불안과 초조함으로 구마준을 과잉보호했고 이로 인해 구마준은 참을성과 고마움을 배우지 못했고 자립심과 자신감이 부족해졌고 이기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수치심과 죄책감마저 갖게 되었다. 그나마 구마준이 어릴 때 김탁구와 가출을 했을 당시에 탁구보다 나약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마저 없었다면 현재의 구마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김탁구를 춤추게 하는 것들

김미순의 칭찬과 격려와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김탁구는 밝고 바르게 성장했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증오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12년 동안이나 엄마를 찾아헤매는 끈기도 갖게 되었다.



김탁구는 보리밥빵을 만들지만 기술이 부족해 여전히 뻑뻑하기만 하다. 고민에 빠져 있는 김탁구에게 일전에 옥수수와 보리를 몽땅 사주었던 모자가 찾아온다. "형이 빵 먹으러 오랬잖아요." 김탁구는 자기가 만든 빵이 아니라 더 좋은 빵을 내어주는데 아이는 김탁구가 만든 빵을 먹고 싶다고 한다. 이 때 양미순이 김탁구가 만든 빵을 아이앞에 내어놓는데 빵을 한 입 베어 문 아이는 빵이 뻑뻑해 목이 메이지만 너무도 환하게 웃으며 '맛있다'고 한다. 아이 엄마도 빵을 먹어보고 보리와 옥수수를 삶는 방법을 말해준다.

양미순이 아이에게 빵이 뻑뻑하니 물 마셔가면서 먹으라고 물을 건네주자 아이는 '그래도 맛있다'고 좋아한다. 미순이 내놓은 물을 보면서 탁구는 구일중에게서 들었던 빵이 자꾸 마를때의 방법을 생각해내고 오븐에 물컵을 넣어 부드럽고 촉촉한 빵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 때 들어온 미순이 빵을 먹어보고 정말로 맛있다고 해주고 탁구는 환호하다가 미순을 끌어안고 미순은 야릇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탁구는 그 빵을 들고 모자가 있는 시장으로 가서 아이에게 '이번엔 안 뻑뻑해서 물 없이도 잘 넘어갈거라'며 빵을 준다. 탁구는 '진짜 맛있다'는 아이를 끌어 안으며 '니 덕분이다. 고맙다. 꼬마야. 고맙다. 내 첫손님'이라고 좋아한다.

탁구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해주었던 팔봉선생은 경합에서 김탁구가 만든 빵을 들고 방으로 돌아와 혼자서 빵을 베어물며 "재밌구나. 아주 재밌는 맛이야"라며 흐뭇해한다. 양인목은 "그런 모자라고 대책없는 녀석 앞으로 설거지를 삼년을 시켜도 부족한 놈"이라고 타박하지만 속으로는 진심으로 탁구를 걱정해준다. 악연으로 만났던 조진구는 탁구의 선한 성품을 알아보고 든든하게 지켜보며 응원해준다. 탁구를 실명의 위험에 빠뜨렸던 조재복은 이제 탁구의 열렬한 응원자가 되었다.

이 모두는 김탁구를 춤추게 하는 것들로서 김탁구에게만 있고 구마준에겐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정말로 김탁구를 춤추게 하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김탁구 자신이다. 김탁구는 진심으로 주위 사람들을 대했고 신뢰를 심어줌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었다. 이것은 곧 칭찬과 격려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서 김탁구는 춤추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김탁구는 조금씩 자신의 존재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타고난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한편 드라마 '제빵왕김탁구' 17부에서는 구마준이 변할 수도 있는 단초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김탁구는 처음으로 잘 구워진 빵을 구마준에게 건네며 자랑한다. 이를 맛본 구마준은 경쟁하는 입장인데 왜 맛보게 하는거냐고 한다. 김탁구는 '거성가에서 날 미워하던 구마준 말고 팔봉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밥먹고 같이 싸우고 같이 수업받던 서태조로 대할 테니까 서로 그렇게 하자'고 말하며 돌아선다. 이 때 구마준이 김탁구의 등 뒤에 대고 "서태조는 친구할 수 있는데 구마준은 안된다는거야? 그런거야?"라고 묻는다.

구마준은 김탁구에게 까칠하게 대하지만 내심 김탁구가 자기에게 손을 내밀어주길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김탁구는 이것까지 눈치채지는 못하고 있다. 구마준의 내면은 화려한 패스츄리에 넣은 소박한 고구마를 그대로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구마준이 그 소박함을 화려함 속에 꽁꽁 숨기지 말고 겉으로 드러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계기는 언제쯤 생기게 될까? 신유경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아니면 김탁구의 긍정적인 에너지 또는 팔봉선생의 교편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구마준에게 사정은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예고편에서 구일중은 구마준에게 "내가 널 어찌 용서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질책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아마도 김탁구의 존재를 알면서도 구일중에게 알리지 않았다는데 대한 질책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구마준의 성격이 어긋난데는 구일중이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 구일중에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구마준의 심정을 헤아려주지 못했던 구일중은 회사 경영자로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아버지로서는 실격이다. 어쨌거나 지금에 와서는 이 모든 것을 헤쳐나가려면 구마준 본인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구마준은 무엇보다 자기에게는 없는 모든 것을 가진 김탁구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하루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