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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SPORTS

PAUL, 월드컵 최고의 스타

남아공 월드컵의 특징은 본선 진출국들이 수비지향적으로 경기를 함으로써 지지않는 축구를 했다는 것이다. 이 수비지향적인 축구는 강팀을 상대하는 약팀들이 주로 써왔던 전략이었고 강팀이 상대의 밀집된 수비를 뚫어내지 못하면 역습을 허용하게 되고 가끔은 객관적인 전력과는 차이가 나는 결과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렇게 약팀이 강팀을 꺾을 수 있는 의외성이 축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중에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는 강팀들이 오히려 수비지향적으로 나옴으로써 축구경기를 관전하는 재미를 떨어뜨렸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 수비지향적인 축구가 의외성마저 없애버린 것은 아니었으며 일찌감치 귀국길에 올라야했던 강팀들이 많았다. 결국 수비지향적인 축구가 하나의 전략은 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개인적으로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가장 특징적인 두 팀은 스페인과 브라질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팀 모두 탄탄한 수비조직력을 바탕으로 지지않는 축구를 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양 팀의 색깔은 서로 달랐다. 브라질은 수비쪽에서 볼을 돌리다가 날카로운 침투패스로 상대의 허점을 노렸다면 스페인은 볼 점유를 늘리면서 차근차근 밀고 올라가서 상대를 끝없이 압박함으로써 득점 기회를 노렸다.

아무리 맞받아쳐도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차근차근 밀고 들어오는 스페인의 가공할만한 공격력은 스페인과 상대하는 팀으로써는 상당히 곤란했을 것 같다. 또한 수비조직력도 만만치 않으니 공격도 제대로 되지 않고 계속 어려운 경기를 할 수 밖에는 없었다. 다만 골 결정력에서는 문제를 드러냈는데 이번 월드컵에서 토레스의 부진이 아쉬웠지만 경기 내용에 비하면 골은 너무 빈약했다. 스페인이 골 결정력 부분만 보완한다면 당분간 A 매치에서 스페인의 적수가 없을 것 같다.

3, 4위전은 펠레 스코어가 나오기는 했지만 이미 맥 빠지고 긴장감 없는 경기라 별로 재미있게 시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승전은 연장까지 간 끝에 간신히 1골을 얻은 스페인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120분 내내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경기였다. 이건 토너먼트로 치러지는 경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편견이고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니에스타가 골을 넣은 후 경고를 무릅쓰고 상의를 벗고 골세러모니를 하길래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DANI JARQUE SIEMPRE CON NOSOTROS" '다니 하르케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는 뜻인데 하르케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축구팀 에스파뇰의 중앙 수비수로 지난해 8월 시즌을 앞두고 소속팀 훈련에 참가하던 중 이탈리아의 한 호텔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이 다니 하르케를 추모하고 그를 영원히 기억할 것을 약속하는 세리모니였다고 한다. 상의를 벗는게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었는데 사정을 알고 나니 가슴이 뭉클하다. 이래서 축구란 경기가 재미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결승전. 네덜란드의 수비조직력을 흐트러뜨리고 수비수와 공격수간의 간격을 벌리려는 스페인의 치밀한 전략이 빛을 발하는가 싶었지만 이에 말려들지 않고 미드필드에서의 공방을 통해 스페인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네덜란드의 전략도 만만치 않았다. 스페인이 밀고 올라가서 골 찬스를 놓치면 이번엔 바로 네덜란드가 골 찬스를 놓치는 등 양 팀의 치열한 공방은 시종일관 장군멍군격인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연장 후반까지 팽팽한 균형이 이어졌고 승부차기를 예상해보는 순간 네덜란드 선수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함으로써 승부의 추가 스페인쪽으로 기울었다. 비야를 빼고 부진한 토레스를 투입한 스페인 감독의 승부수도 어느정도는 통했던 것 같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양팀 모두 우승할 자격이 있는 팀이고 어느 팀이 우승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월드컵 결승전에 걸맞는 경기였다. 네덜란드로서는 아쉽겠지만 끝까지 스페인을 축하해주며 강팀의 면모를 잃지 않았는데 다음 월드컵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내기를 응원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수많은 스타들이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월드컵 최고의 스타는 족집게 문어 파울이라고 생각한다. 결승전을 앞두고는 스페인을 점찍었다는 파울의 예언을 일부러 찾아봤다. 경기 초반엔 파울의 예언이 이번에도 맞아들어가는가 싶었으나 이내 전열을 정비하고 맞받아치는 네덜란드를 보면서 파울이 막판에 실족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그러나 끝내 파울의 예언대로 승부가 결정났고 이번 월드컵 최고의 스타는 파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파울은 월드컵 경기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경기외적인 면에서 관심을 유발시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나 예상하는 족족 빗나가는 축구 황제 펠레의 저주와 맞물리면서 그 관심은 극대화되었다. 사실 파울은 자기가 먹고 싶은 홍합을 골라서 먹었을 뿐이니 이를 가지고 예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사람들이 재미삼아 시도해봤던 것으로 여기에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고 그것이 공교롭게도 모두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또한 이 과정에 어떤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졌을수도 있고 파울이 홍합을 먹는 쪽이 진다고 애초에 의미를 부여했었다면 이건 파울의 예언이 아니라 오히려 파울의 저주가 될 수도 있었다. 파울의 예언이 신통방통하기는 하지만 하나의 흥미거리인 것이지 더 큰 의미나 신빙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그러나 가끔 사람들은 이런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굴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페인이 독일을 꺾고 우승까지 했던데는 이런 경기외적인 심리상태도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초에 어떤 계기에 의해서 문어를 상대로 이런 실험을 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어쩌면 향후에는 문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승부를 예측하는 족집게로 등장하고 그들끼리의 신통력 경쟁을 하는 일도 생겨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이렇게 경기외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무언가가 등장해서 축구 경기를 관전하는 재미를 배가시켜준다면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