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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SPORTS

족집게 문어, 전차군단을 고장냈나?

무적함대 스페인 대 전차군단 독일의 경기, 무적함대의 신중하면서도 집요하게 시도된 포격에 전차군단이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백기를 들게 됨으로써 무적함대의 완승으로 끝났다.

최첨단으로 무장해서 적수가 없을 것만 같았던 전차군단 독일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는 없겠으나 최첨단 성능이 완전히 고장나 있었고 예전의 삐걱거리던 전차군단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전 경기들에서 보였던 정교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방향전환은 고사하고라도 기본적인 전진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전진하지 못하는 전차군단이 패배하는 것은 당연한데 도대체 무엇이 전차군단을 고장내서 이렇게 성능이 떨어지게 만들었을까? 혹시 족집게 문어의 소행은 아니었을까?

경기 초반 양팀은 굉장히 신중하게 출발했으나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무적함대의 신중한 포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전차군단의 전략은 후방에 진을 친 후에 무적함대의 도발을 유도하고 그들의 실수를 틈타 역공을 시도하겠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무적함대는 이미 전차군단의 전략을 간파하고 있었고 그에 말려들지 않은 채 신중하게 전차군단의 허점을 끝없이 파고들었다.

권투경기를 보면 먼저 가드를 내린 채 상대의 공격을 유도해서 맞받아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바둑에서는 돌의 폭을 넓힘으로써 상대의 침입을 유도한 후에 그 돌을 공격함으로써 최대한 이득을 얻으려는 작전을 쓰기도 한다. 전차군단이 들고 나온 전략은 이 두가지의 경우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권투의 경우는 먼저 상대의 펀치를 허용할 수 있음으로 맷집도 좋아야하지만 상대가 허점을 보였을 때 빠르게 맞받아칠 수 있어야 하고 바둑의 경우는 공격력이 좋아야 함은 물론 섬세한 형세판단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전차군단은 맷집은 어느 정도 있어 보였지만 상대의 허점을 빠르게 맞받아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상대의 침입을 유도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 전차군단보다는 무적함대의 신중한 전략이 우위에 있었던 것 같다. 가드를 내린 상대를 일발필살의 공격을 하다가 허점을 보이기보다는 잔펀치로 집요하게 괴롭혔고 깊숙히 침투하기보다는 적절한 삭감을 통해 타개함으로써 전차군단의 공격을 잘 피해갔다. 매에 장사 없다고 결국 전차군단은 치명타를 허용하고 말았고 무적함대는 뛰어난 형세판단력으로 적절히 침투한 후에 잘 타개함으로써 전차군단이 돌을 거두게 만들었다.

이전 경기까지 정말 우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던 독일이 과거의 삐걱거리던 전차군단으로 돌아가 기대이하의 경기를 하며 무너진 이유를 모르겠다.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뮐러나 부상으로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발락의 공백이 커보인다는 생각을 해보기는 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경기력이 저하되었기에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승리에 대한 집착과 승리에 대한 열망의 차이가 승부를 가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 승리하겠다는 면에서는 스페인과 독일 양팀 모두 같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승리에 집착한듯한 독일은 수비에 치중했는데 패스가 정교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번번히 차단당함으로써 선수들의 경기력과 의욕 모두 떨어졌던 것 같다. 반면에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스페인은 무리하지는 않았지만 집요하게 독일의 허점을 파고 들었고 강하게 독일을 압박하면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나는 우연히 족집게 문어 파울의 예언을 보게 되었다. 파울이 이번에는 스페인의 승리를 점쳤다는데 이런 것에 별로 신빙성을 두지 않기에 웃어넘겼으나 경기 시작후부터 내내 이 족집게 문어 파울의 예언이 떠올랐고 그 예언이 현실이 되고나니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하다. 2008년 유럽선수권대회 당시 독일과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파울의 예언이 틀렸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맞추었다니 참 신통방통한 문어다. 펠레의 예언은 저주로 통용되나 문어의 예언은 족집게로 평가받게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한데 신통력면에서는 문어가 사람보다 낫다고 해야 되나?

이로써 축구의 제왕을 무너뜨린 무관의 제왕 오렌지군단과 최첨단으로 무장하고 나와 4관왕의 가능성이 커보였던 전차군단을 쓰러뜨린 무관의 제왕 무적함대, 이 두 무관의 제왕들끼리 새로운 왕좌를 놓고 최후의 일전을 펼치게 되었다. 누가 새로운 왕좌를 차지하게 될 지 모르겠으나 이미 월드컵의 역사는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기대되는 무관의 제왕들끼리의 최후의 혈전, 기대를 배신하는 졸전은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