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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정치

천안함 외교는 '미치광이 전략'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과 관련한 현 정부의 외교정책은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이 사건을 UN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소해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 정부는 미국, 일본과의 공조를 공고히 한 후에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면 총력 외교전을 펴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건의 경우 UN으로부터 대북한 제재를 위한 강제적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 맞는지의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지만 현 정부는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정황증거를 확보해서 이를 근거로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총력 외교전에 나서며 북한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현 정부의 전략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한 상태지만 천안함 조사결과에 나타난 정황증거를 바탕으로 천안함의 침몰은 북한의 소행이라 단정하고 있으며 향후 대북한 제재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북한은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사실을 알아서 인정하고 필요한 모든 사후조치를 다 하라는 전략인 것 같다. 현 정부의 이러한 대북 압박전략을 보면 닉슨의 '미치광이 전략'이 떠오른다.

광인이론(madman theory)이라고도 하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은 베트남전 당시 닉슨 대통령의 외교수단으로 미국 대통령이 자제력을 상실하고 '미치광이'가 되었으니 상대방은 알아서 행동하라는 최후통첩을 통해 외교적 실리를 챙기는 일종의 충격 외교 수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미치광이 전략은 이란의 핵문제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에서 체니를 중심으로 한 네오콘(neocon)들에 의해서 되살아났는데 이란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부시의 경고로 나타났다.

현 정부가 미치광이 전략에 함몰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천안함이 침몰한 후 조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였다. 당시 현 정부는 중국대사를 만나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요구하며 중국이 김 위원장의 방중을 미리 통보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반발을 불러왔고 현 정부가 수위조절에 나서면서 무마되었는데 그 후 미치광이 전략은 한국형으로 수정되었던 것 같다. 현 정부의 이러한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사건은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지적대로 "천안함 사건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책임을 묻는 것은 한국에서나 통하는 냉전논리이지 국제사회에서는 우둔한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현 정부는 "우리 목표는 남북 대결이나 고립화, 붕괴가 아니라"고 하고 있는데 UN 회원국들의 강제적 의무이행을 통해 대북한 제재를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은 곧 북한이 고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하기 싫다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것을 인정하고 핵을 포기하고 개방에 나서라고 압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치광이 전략은 소련을 상대로 3차 대전도 불사하겠다는 겁박을 할 능력이 되는 미국이나 가능한 것이지 한국이 취하기에는 부적절한 전략이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현 정부의 대응을 보면 특히 대중국외교 등에서 보였던 것처럼 현 정부가 이 미치광이 전략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아무래도 미국의 전략에 말려든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미국의 최우선 관심은 북핵의 포기에 있는데 미국에게 천안함 사건은 예의 미치광이 전략을 상기시키며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런데 북한을 상대로 한 미치광이 전략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란을 상대로 이러한 전략을 구사했던 부시 행정부도 북한을 상대로는 쓰지 못했던 것 같다. 북한이 이러한 전략에 말려들지도 않았지만 북한의 뒤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천안함 사건의 경우에도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이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섰지만 북한은 전 세계 재외공관을 통해 천안함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외교전을 펼치며 안보리 논의가 진행될 경우 초강경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또한 중국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러시아의 천안함 조사단은 조사활동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검증 결과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침몰 원인에 대한 러시아 측의 최종 입장은 아직 불투명하다.

오히려 지금은 북한의 전략이 미국을 딜레마에 빠지게 한 것 같다. 천안함 사건 발생 초기에는 '先 천안함, 後 6자회담'을 내세웠던 미국이 천안함과 북핵문제를 분리대응하는 이른바 '투트랙' 접근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다. 천안함보다는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안보리 제재결정을 위해 중국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계속 중국을 자극하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보리에 공식 회부하며 총력 외교전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제재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천안함 사건에 대한 안보리 제재를 한국이 주도하면 미국은 그에 따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상황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한국 정부가 얻은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치른 선거에서도 대패를 했고, 천안함 외교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천안함 조사결과에 여전히 유보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믿었던 미국도 발을 빼는듯한 상황이라 별다른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천안함 사건으로 득을 보고 있는 것은 북한인 것 같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으로 위기상황을 조성해 주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릴 기회가 되었고 권력 세습을 위한 작업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게 사실이라면 북한으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 일거양득한 셈이다.

천안함 사건은 또다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AP통신은 천안함 침몰 사건 20여분 전까지 사고 지역에서 불과 75마일(121㎞) 떨어진 곳에서 미국과 한국이 대잠수함 전투 합동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천안함은 계획적인 공격이라기보다는 적개심을 가진 지휘관의 소행이거나, 사고 또는 훈련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관리의 발언도 전하고 있다. 또한 "잠수함 훈련은 한국 잠수함을 타깃으로 진행됐으며 미국 구축함 2대와 다른 군함들이 동원됐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동안 국방부가 숨겨왔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의문점이 더 커지게 되었다.

지금은 천안함 사건의 사고 원인을 다시 조사하는 것을 검토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조사 결과가 객관성을 잃고 있기 때문에 의문점들을 해소할 수 없고 오히려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만 줄어들고 있다. 일단은 국회 천안함 조사특위를 활성화해서 비공개로 조사를 하더라도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게 맞을 것 같다. 천안함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게 맞다. 그리고 천안함 외교도 미국의 태도 변화로 위기상황에 처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무조건 밀어 붙일게 아니라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해야 국제사회의 신뢰도 얻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