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주알 고주알/시사현장 정치

천안함 조사결과, 무조건 신뢰해야 되나?

김태영 국방장관이 26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방, 외교, 통일 자문위원을 상대로 한 천안함 설명회에서 "완벽한 증거물이 나왔는데도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어 곤혹스럽다"는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로서는 조사결과에 대해서 의심을 품으면 안된다는듯한 김 장관의 발상이 오히려 곤혹스럽다. 언론 보도를 보면 70%가 넘는 국민들은 조사결과를 믿어야 한다는 분위기로 보이지만 나의 경우는 조사결과를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 이번의 조사결과는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이고 투명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군과 국방부는 사고발생시부터 줄곧 오락가락 말을 바꾸며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려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김 장관의 표현대로 완벽한 증거물이 나왔음에도 여전히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건 내 탓이 아니다. 또한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개입되었다는게 사실이라면 김 장관은 이 사건에 대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김 장관이 조사결과에 대해 아예 의문조차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민군합동조사단이 내놓은 조사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동안 군(軍)과 정부 그리고 보수언론들은 천안함이 침몰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분석하고 조사하려고 하기보다는 북한의 개입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한 조사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그런 분위기에서 진행된 조사였으니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을 뿐이고 새로운 것이 없다. 그런데다가 조사결과가 그동안 제기되었던 의문들을 완전히 해소해주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조사결과에 대해서조차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기고 있으니 쉽게 수긍하기 힘든 것이다.

그동안 스크류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을 보면서 그 상태를 직접 보지 않았기에 어떤 판단을 해보기는 어려웠는데 오마이뉴스 사진팀 블로그에 있는 아래의 사진을 보니 제기되었던 의문에 이해가 간다. 그동안 군(軍) 당국은 배가 해저에 닿으면서 휘어졌다고 했었다가 이번에 박정수 해군준장은 배가 후진하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는데 납득할 수가 없다. '날개가 부러진 것은 함미를 인양하면서 바지선에 찍혀서 컷팅된 것이다'는 말은 인정해 준다고 하더라도 스크류가 이렇게 휘어진 것에 대한 군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스크류의 상태에 대해서 납득할만한 해명이 없다면 좌초설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합조단 조사결과 발표에서는 물기둥과 관련해서 또 다시 백령도 초병의 증언을 내세우고 있다. 사고 발생 초기에 백령도 초병이 물기둥을 목격했다는 언론 보도를 읽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통제되던 생존장병들의 기자회견에서는 물기둥을 봤다는 증언은 전혀 없었고, 대신에 버블제트는 물기둥을 수반하지 않고도 배를 두 동강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었다. 이렇게 백령도 초병의 증언을 배제하는듯하더니 이번에 또 다시 백령도 초병의 증언을 내세웠는데 승선했던 대부분의 장병들은 보지 못했다는데도 초병 한 명의 진술만으로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 현상과 일치했다'고 한다면 여기에 신빙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국회 천안함 진상조사 특위에서는 김태영 국방장관과 윤덕용 민군합동조사단장은 "물기둥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다른 결정적 증거가 있지 않느냐"라고 했다는데 나는 물기둥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양된 천안함 선체 곳곳에서 채취된 알루미늄산화물이 어뢰 부품에 묻어 있는 알루미늄산화물과 일치한다'는 합조단의 발표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기둥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알루미늄산화물이 어떻게 배의 상단부에 묻어 있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합조단의 조사결과가 결정적 증거가 되기 위해서라도 물기둥은 중요한 것이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합조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시점도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를 낮게 만들었다. 조사가 엄정하게 충분히 이루어졌고 거기에 대한 완전한 결론을 내린 때가 발표일이었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최종발표도 아니었고 중간발표 성격이었다는데 정확하게 지방선거 운동이 시작되는 날에 맞추어서 발표하는 바람에 그 의도에 대한 의구심만 갖게 하고 있다. 거기다가 청색으로 '1번'이라는 증거물은 상당히 코믹하게 보이기도 한다. '4호'와 '1번'이 어떻게 연관되기에 같다고 단정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필적감정도 안 된다고 하고 있으니 납득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표기한 잉크의 종류는 추후 정밀 분석을 통해 밝혀낼 수 있다고 했으니 이 부분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민군합동조사단 윤덕용 공동단장은 "이상의 증거들을 종합할 때 어뢰는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으로부터 발사되었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처럼 정황을 가지고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고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인양된 천안함 선체 곳곳에서 채취된 알루미늄산화물이 어뢰 부품에 묻어 있는 알루미늄산화물과 일치한다는 것'과 '천안함 선체와 어뢰 부품의 부식 정도도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으로 본다면 발견된 어뢰 부품이 조작된 것은 아니라는 증거는 될 수 있다. 또한 '프로펠러를 비롯, 추진모터와 조종장치 등이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어뢰 소개책자에 나와 있는 것과 똑같은 크기와 규격인 것'으로 확인되었다면 북한제 어뢰라는 증거는 될 수 있다. 이것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황증거는 되겠지만 단정해서 말하기에는 설득력이 불충분할 수도 있다.

국방부가 국회 추천 민간조사위원의 교체를 요구했었는데 그 사유가 '민군합동조사단의 공식결론에 반하는 개인의견을 언론매체 등에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조사에 참여한 조사위원이 다른 의견을 제기하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도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해당 조사 위원을 고소까지 했으며 이번엔 이정희 민노당 의원까지 고소했다는데 이렇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자꾸 고소하면서 억압하려는 것은 조사결과에 대한 객관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이다.

스웨덴의 경우는 어쩌면 마지못해 의무감으로 진상조사단에 포함시킨 reluctant partner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만큼 조사결과 발표와 관련해서 스웨덴의 태도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고 스웨덴의 태도가 조사결과의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사결과 발표와 관련해서 스웨덴이 마지못해 동의(reluctant agreement)한듯한 인상을 주었던 것도 역시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스웨덴도 조사결과에 동의했지만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는데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겠으나 조사결과에 대한 객관성은 어느 정도 훼손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조선일보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인간어뢰라는 소설까지 써대며 그 방향으로만 분위기를 몰아간 덕분에 민군합동조사단이 어떤 증거로 어떤 결과를 내놓아도 어느 한 쪽에서는 쉽게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만 조성되었다. 지금은 거의 전쟁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부적절하다. 조선일보의 이런 언동은 마치 외부의 적을 이용해 내부의 반대자들의 불만을 눌러버리려는듯한 대단히 비열한 전략이다.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는 경우에 대해 어떤 시나리오와 대비책을 준비해 놓고 있는지 조선일보에 물어보고 싶다.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만 놓고 본다면 북한이 개입되었다는 정황은 높은 것 같고 이를 뒷받침할 정황증거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이 개입되었다고 단정해서 말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100% 증거 없으면 안보리 논의를 반대'한다는 러시아의 반응은 여기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조사결과 발표 시점은 부적절했고 신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의문점들이 여전히 잔존함에도 불구하고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짜에 정확히 맞추어서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초당적 대처를 주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합조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마치 북한을 비호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는게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 여론몰이를 선도하고 있는 측이 파놓은 함정이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는 김 장관의 인식도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사결과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상당한 타당성을 갖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답변이 궁색한 경우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합하다. "잠수함이 기지를 이탈한 것은 식별했지만 설마 영해까지 침범해서 도발할지는 예상하지 못해서 대응하지 못했다"는 국방부 국방정보본부장의 말을 보면서 어떻게 조사결과를 온전히 신뢰하기를 바란다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오히려 이는 조사결과 뿐만 아니라 군에 대한 신뢰마저도 떨어뜨리게 만드는 군과 국방부의 언행들이었다.

이젠 국회 천안함 진상조사 특위에서 군사기밀인 경우에는 비공개로 하더라도 더 이상의 의문점이 생겨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주기를 기다려보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추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