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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한계상황, 해법은 예측불가능성

사상 최대의 인원이 참가한 '1박2일' 시청자투어 2편의 방송을 전후해서 '1박2일'이 한계상황에 다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한 '1박2일'의 남극행이 최종적으로 무산되던 즈음에 '1박2일'은 강화도편이 방송되었고 '무한도전'은 알래스카편이 방송되었는데 두 방송이 공교롭게 특별한 소재가 없었음에도 작위적으로 방송분량을 늘리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그래서 혹시 리얼을 표방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총체적으로 한계상황에 다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무한도전'의 경우는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컨셉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는 방송이므로 한계상황을 예상하는 것은 부적합할 수도 있겠으나 '1박2일'의 경우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1박2일'이 추진하던 대형 프로젝트인 남극행은 멤버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감수하고 강행하려던 것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천재지변으로 최종 무산되었다고 알고 있다. 또한 시청자투어 2편의 방송은 리얼을 줄이는 대신에 쇼에 대한 분량을 방송의 절반 가까이 할애했다. 시청자 투어에 참가한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 멤버들과는 어떻게 융화되었는지 등은 앞뒤 연결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불충분했던 반면에 쇼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이것은 '1박2일' 제작진도 리얼예능의 한계를 의식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1박2일'의 '코리안 루트-국토대장정'은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음을 보여 준 방송이었고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는 방송이었다. 특히 16일 방송은 여행이 주는 예측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의 묘미를 잘 보여주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예측가능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과 예측불가능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측불가능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행의 일정을 정하지 않고 사전 정보도 없이 의외적인 변수에 의존해서 떠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예측가능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여행이 주는 의외성의 묘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여행지에 대한 사전 정보 수집이나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하는데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게 귀찮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법은 그냥 누가 이끄는대로 남들 따라서 정해진 루트대로 정해진 시간내에 여행할 수 있는 패키지 여행이다.



삶이 그렇듯이 여행에서도 예측불가능성과 예측가능성 중에서 어느 쪽을 따르는게 좋은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바람따라 구름따라 정처없이 오로지 의외적인 변수에만 몸을 맡기도 길을 떠나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바쁜 일상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들의 로망이 아닐까.

'1박2일'의 '코리안 루트-국토대장정' 16일 방송에서 은지원팀과 김C팀 또는 강호동팀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여행을 했다. 여행비용을 갖고 떠난 은지원팀과 김C팀은 예측가능성을 따른 여행을 했다면 무전여행을 시작한 강호동팀은 예측불가능성을 따른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은지원팀과 김C팀은 도중에서 맞딱뜨리는 의외성을 받아들이고 즐김으로써 예측가능성 속에서도 의외성의 묘미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에 강호동팀은 부득이하게 완전히 예측불가능한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는데 그 의외적인 변수가 그 둘에게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전남 곡성군 죽곡면 하한리라는 곳이었고 거기서 마치 한 줄기 빛과 같았던 이장님 부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기댈 곳은 시골 인심뿐이라는 우연성에만 의존해서 오로지 전진을 외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예측불가능성이 주는 즐거움이다. '1박2일'의 촬영지로서 손색이 없고 감이 익을 무렵 다시 찾겠노라 약속했지만 그 때에는 예측불가능성이 주는 즐거움은 얻지 못할 것이다.

한편 스태프들까지 식사를 해결한 후 강호동 이승기는 이장님 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게 된다. 그런데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장면이었다. 물론 '1박2일'의 컨셉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이장님 부부는 밤새 마당에서 자는 강호동 이승기를 신경쓰며 불편했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가끔은 내가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호의를 베푸는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그의 뜻에 따라야 할 때가 있고 그렇게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정일 것이다.

어차피 우연하게 도착한 곳이었고 거기서 발생한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온전히 수용한다한들 변하는게 무엇이 있었을까 싶다. 그 둘이 야외취침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작방송이라 비난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설혹 어느 정도의 비난을 받는다한들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다. '1박2일'이 우연한 기회에 만난 분들과 서로 정을 교감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번처럼 우연한 기회에 발생한 예측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기계적으로 '1박2일'의 포맷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게 '1박2일'의 제작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한계상황에 대한 또 다른 해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