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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음변(音變)은 상징적인 의미의 설정

드라마 '동이' 이번 주 방송에선 음변 사건이 등장했는데 드라마속에서 이 사건은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사실은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설정으로 보이고 그런 측면에서 대단히 일리가 있는 설정이라고 생각된다. 작가의 이러한 상상은 대단히 긍정적이고 신선한 것 같다.

드라마속에서 대비와 서인세력은 재입궁하는 장옥정을 음해하고 축출하기 위한 음모인 음변 사건을 꾸미고 있다. 장옥정이 입궁하는 때에 은평군의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데 대비와 서인세력은 장옥정을 이 축하연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일 축하연에서 장악원 악공들이 잘 연주하던 악기의 음이 갑자기 흐트러지고 박자도 맞지 않게 되는 음변 사건을 연출한 것이다.

한편 숙종은 우연히 듣고 반했던 음악을 장옥정에게도 들려주고자 음악을 연주했던 악공을 찾지만 그것이 장악원 여비인 '동이'임을 알아내지는 못했는데 장옥정이 축하연에 초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따로 악공을 보내 장옥정을 위로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장악원 악공들의 악기는 모두 음이 맞지 않고 엉망이 되고 만다. 이렇게 갑자기 악기의 음이 맞지 않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동이'는 "혹시, 음변?"이라면서 놀란다.

이렇게 음변(音變) 사건을 획책한 서인세력들은 망국지음(亡國之音)이니 난세지음(亂世之音)이니 하면서 '음이 무너졌다. 이는 나라가 망할 징조다'라면서 장옥정의 재입궐과 연관지어서 장옥정을 공격하고 나선다.

이상의 내용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는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위한 설정이고 음변은 하나의 상징성을 갖는 의미 있는 설정이라고 생각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변(音變)에서 음(音)은 음(陰) 또는 음(淫)을 상징하려고 하는 것 같다. 보통 음양(陰陽)이라 하는데 이는 남녀의 성(性)에 관한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건곤(乾坤)이라고도 한다. 음은 여성을 양은 남성을 말하고 남성은 하늘이고 여성은 땅이라 했다. 음변에서 음(音)이 음(陰)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은 이 음(陰)이 바로 여성인 장옥정임을 지칭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보이기 때문이다. 음(音) 곧 음(陰)인 장옥정이 입궁하는 날에 음변(音變)이 일어나는 것은 곧 음(陰)인 장옥정이 나라에 재앙을 몰고 올 징조라고 상징적으로 몰아세우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음(音)이 음(淫)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은 서인세력들이 망국지음(亡國之音)이나 난세지음(亂世之音)을 들먹인데서 찾을 수 있다. 망국지음은 보통 '저속하고 난잡한 음악'을 일컫는 말로써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에서 찾을 수 있다. 사연(師延)이라는 악사가 신성백리(新聲百里)라는 음탕한 음악을 지어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에게 바쳤는데 주왕이 이 음악을 즐기며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지내다가 무왕에게 망했다해서 사람들은 이를 망국지음이라 했다고 한다.

드라마 '동이'에서도 위의 망국지음과 마찬가지로 장옥정을 나라를 망하게 할 음(淫)을 상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동이'에서 음변을 두고 '음이 무너졌으니 나라가 망할 징조다'라며 이를 망국지음(亡國之音)이라 지칭하는 것을 본다면 제작진들은 음(陰) 또는 음(淫)을 모두 상징하려고 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음(淫)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해볼만한게 있다. 남인 세력은 대비와 서인 세력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감지하고 장옥정과 대책을 의논하는데 장옥정은 '궁지에 몰리면 제 몸을 크게 부풀려 적을 위협하는 허세가 필요할듯 하다'면서 대비에게 비파를 선물한다. 음변(音變) 사건을 일으켜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세력에게 음(音)을 선물함으로써 맞선 것으로서 이는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히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비파에는 '동천연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만세의군아상지(萬世意君我相知)가 적혀 있다. 모든 건 나도 알고 있다는 일종의 블러핑으로서 대비의 의중을 가늠해보고자 함인 것으로 보인다. 뒤엣 구절은 출전을 잘 모르겠는데 앞의 동천연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은 조선조의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시구절 중에 나온다.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오동나무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며 항상 거문고 소리를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아니한다.
달이 천 번 이지러졌다 돌아온다 해도 그 근본은 남아 있고,
버들이 100번 이별을 겪는다 해도 그 가지는 또한 새 가지이다.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월도천휴여본질 유경백별우신지)는 백범 선생이 서거하기 4개월전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것으로 보이는 휘호가 발견되어서 뉴스가 되었던 적이 있다.

드라마속 장옥정은 대단한 기개와 배포를 가진 지략가로 보인다. 드라마 '동이'를 시청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장옥정이고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장옥정이 탄생될거라는 기대를 갖고 시청하고 있다. 그런 기대를 드라마 '동이'는 현재까지 외면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현재까지 여타 드라마들에 등장했었던 장옥정은 지나치게 그 포악하고 변덕스런 성격에만 집착했던 면이 있었는데 드라마 '동이'를 통해서 새롭게 시도되는 인간 장옥정은 계속 관심을 가질만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장옥정을 예상해보자면 드라마속에 등장했던 도인 김환의 대사에 힌트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장옥정이 '동이'를 의식하고 견제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장옥정으로 그려질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드라마 '동이'는 지나치게 무모한 설정들만 아니라면 볼거리가 많은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인 것 같다.